고요한 밤, 모두가 잠든 시간.
세상에 홀로 깨어있는 건 당신과 희미한 천장 무늬, 그리고 머릿속을 헤집는 수많은 생각들뿐입니다.
분명히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 마음은 어째서인지 팽팽한 고무줄처럼 날카롭게 긴장한 채 잠들지 못합니다.
오늘 낮에 했던 사소한 말실수 하나가 무거운 바위가 되어 가슴을 짓누릅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일들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숨을 막히게 합니다.
‘생각을 멈춰야지. 이제 그만.’
스스로를 몇 번이고 다독여보지만, 생각의 꼬리는 또 다른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집니다.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원하지 않는 소음이 머릿속을 시끄럽게 가득 채웁니다.
웃고 떠들던 즐거운 순간에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불안감.
행복하다고 느끼는 찰나에도 ‘이 행복이 깨지면 어떡하지?’ 하는 어두운 그림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삭이는 그 마음의 무게를, 그 끝없는 소용돌이를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머릿속이 잠들지 못하는 밤
오늘도 어김없이, 그 밤이 찾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애써 괜찮은 척, 바쁜 척하며 꾹꾹 눌러두었던 마음의 소리들이 하나둘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이불을 끌어당겨 목 끝까지 덮어보지만, 불안감은 그 작은 틈을 비집고 차갑게 스며듭니다.
눈을 감으면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걱정의 얼굴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온갖 부정적인 미래의 모습들이 머릿속에서 번갈아 가며 상영됩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조각을 수십, 수백 번이고 다시 맞춰봅니다.
‘내일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답 없는 질문들을 던집니다.
사실 답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저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질 때까지, 이 지독한 불안이 잠잠해질 때까지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하지만 발버둥 칠수록 생각의 늪은 더 깊어지고, 몸은 점점 더 차갑게 식어갑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얕아지는 기분. 이 작은 방 안에, 이 작은 몸 안에 거대한 우주선이 길을 잃고 표류하는 것만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합니다. 새벽 두 시.
세상은 이토록 고요한데, 나만 이렇게 시끄러운 것 같아 서러운 외로움이 밀려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또 잠을 설칩니다.
피곤할 내일의 내가 걱정되어, 지금의 내가 더 불안해지는 이상한 고리에 갇혀버렸습니다.
어쩌면 걱정이 많다는 건, 그만큼 모든 것을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무엇 하나 망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외침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외침이 너무 커져 버려서, 정작 가장 중요한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합니다.
‘쉬고 싶다’는 아주 작고 연약한 속삭임을 말이에요.
이 밤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당신만 그런 밤을 보내는 것은 아니니까요.
수많은 창문 너머, 당신과 똑같은 마음으로 뒤척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요.
어쩌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채, 각자의 밤을 외롭게 견디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이 밤도 결국엔 지나갈 테니까요.
그저 ‘지금 내 마음이 많이 지쳐있구나’ 하고 알아주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보이지 않는 돌멩이를 품고 걷는 기분
아침 해가 뜨고,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합니다.
밤새 나를 괴롭혔던 걱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차갑고 단단한 돌멩이가 되어 마음주머니에 담깁니다.
사람들을 만나 웃고, 일에 집중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걸어갑니다.
하지만 나만 아는 그 돌멩이의 존재감. 걸을 때마다 달그락거리며 온 신경을 건드립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평온해 보이겠죠. 어쩌면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외로워집니다.
내 안의 이 무거운 돌멩이를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아니, 어쩌면 말해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더 클지도 모르겠습니다.
‘뭘 그런 걸 다 걱정해?’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런 말을 듣게 될까 봐, 상처받을까 봐 입을 꾹 다물게 됩니다.
마음속 돌멩이는 점점 더 커지고 무거워지는 것만 같습니다.
어쩔 땐 그 무게 때문에 발걸음을 떼기조차 힘겹게 느껴집니다.
즐거운 영화를 보다가도,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도 문득 그 돌멩이의 차가운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면 모든 감각이 순식간에 무뎌지고, 세상이 잠시 흑백으로 변하는 기분입니다.
이 돌멩이를 꺼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나 사실 이렇게 무거운 걸 품고, 아무렇지 않은 척 걸어가고 있었어.’ 하고 털어놓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이 돌멩이는 오롯이 나만의 몫인 것만 같아서요.
모두들 자기만의 돌멩이를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요?
그렇다면 왜 나만 유독 이렇게 힘든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이 질문은 또 다른 돌멩이가 되어 마음주머니에 더해집니다.
점점 더 무거워져서, 이제는 허리를 펴기도 어렵습니다.
어깨가 굽고,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수가 줄어듭니다.
사람들은 내가 변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변한 게 아니라, 그저 무거워졌을 뿐입니다.
이 돌멩이를 잠시 내려놓고 쉴 곳이 필요합니다.
아무런 판단 없이, 그저 ‘정말 무거웠겠구나’ 하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곳을, 그런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혼자가 됩니다.
돌멩이를 품은 채, 괜찮은 척 웃으며, 우리는 오늘 하루도 힘겹게 걸어갑니다.
그 발걸음이 얼마나 고단한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의 마음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고생 많았어요. 그 무거운 걸 품고도 이만큼이나 걸어왔으니까요.
걱정은 나를 지키려는 작은 신호등
우리는 흔히 걱정을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어서 빨리 없애버려야 할 마음의 불순물처럼 여기죠.
하지만 잠시만 다르게 생각해 볼까요?
걱정은 사실, 나를 지키기 위해 켜진 작은 신호등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기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해.’
‘이걸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곤란해질 거야.’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면 말을 아껴야 해.’
걱정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다가올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돕는 아주 오래된 생존 장치인 셈이죠.
길을 건널 때 차가 오는지 살피는 것도 걱정 덕분이고, 시험공부를 미리 하는 것도,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 서두르는 것도 모두 걱정의 긍정적인 역할입니다.
진짜 문제는 이 신호등이 고장 나 버렸을 때입니다.
위험하지 않은데도 빨간불이 계속 켜져 있고, 모든 교차로에서 멈춰 서라고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려댑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곧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끔찍한 공포를 느끼게 하죠.
우리의 마음속 신호등은 왜 고장 나게 된 걸까요?
아마도 너무 오랫동안 혼자서 모든 위험을 감당해왔기 때문일 겁니다.
과거에 크게 다쳤던 경험, 예기치 못한 실패의 기억. 그런 상처들이 마음속에 남아 신호등을 더욱 예민하고 불안하게 만든 것이죠.
‘그때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믿을 수 없어.’ 마음이 이렇게 속삭이는 겁니다.
그러니 걱정이 많은 당신은 게으르거나 나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모든 것을 잘해내고 싶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그 착한 마음이, 신호등을 쉬지 않고 깜빡이게 만드는 것이죠.
이제 우리는 걱정을 없애려고 싸우는 대신, 고장 난 신호등을 다정하게 고쳐주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알아, 네가 나를 지켜주려는 거. 정말 고마워.’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빨간불을 잠시 꺼도 돼.’
이렇게 스스로에게 부드럽게 말을 걸어주는 겁니다.
걱정이라는 감정을 적으로만 보지 마세요.
조금 서툴고 과격한 방식이지만, 사실은 나를 가장 아끼는 내 안의 목소리일지도 모르니까요.
그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가만히 들어주는 것. 거기서부터 모든 변화는 시작됩니다.
마음의 서랍이 뒤죽박죽 엉켜버렸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수많은 서랍이 있습니다.
기쁨 서랍, 슬픔 서랍, 화남 서랍, 그리고 유독 꽉 찬 걱정 서랍.
평소에는 이 서랍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필요한 감정을 꺼내 쓰고 다시 넣어두곤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마음이 너무 지치고 힘들면 이 서랍들이 한꺼번에 열리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버립니다.
걱정 서랍에 있던 것들이 기쁨 서랍으로 넘어가고, 슬픔 서랍에 있던 기억이 불쑥 튀어나와 현재를 괴롭힙니다.
어떤 감정이 진짜 내 감정인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든지조차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죠.
머릿속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찬 방과 같아집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어지럽고, 어디서부터 치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이것저것 주워 담아보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먼지뿐이고, 오히려 더 엉망이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바로 그런 상태일 겁니다. 수많은 걱정, 불안, 후회, 예측들이 한데 엉켜 거대한 실타래처럼 변해버린 것이죠.
이 실타래는 풀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단단하게 얽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해요.
엉켜버린 실타래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실의 첫 시작점을 찾아 조심스럽게 당겨보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엉킨 생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거대한 덩어리를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가장 먼저 손에 잡히는 생각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보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글로 쓰는 행위’입니다.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던 추상적인 생각들을,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글자로 바꾸는 작업이죠.
이것은 어지러운 방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어, ‘이건 옷, 이건 책, 이건 쓰레기’ 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름이 붙여진 것들은 더 이상 정체 모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내가 다룰 수 있고, 정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무언가가 됩니다.
마음의 서랍을 정리하는 일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우리는 오늘 딱 하나만 꺼내 보기로 약속했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거대한 어둠 속에서 작은 촛불 하나를 켜는 것과 같으니까요.
하얀 종이는 가장 안전한 대나무숲
옛날이야기에,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알게 된 이발사가 있었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때문에 속병이 난 그는, 결국 대나무숲에 들어가 마음껏 외쳤다고 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우리에게도 그런 대나무숲이 필요합니다. 어떤 비난이나 판단도 없이, 내 안의 모든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 말이에요.
하얀 종이 한 장과 손에 익은 펜 한 자루.
그것이 바로 당신만을 위한 가장 완벽하고 안전한 대나무숲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종이는 당신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돼’, ‘그건 네가 잘못한 거야’ 같은 차가운 말을 절대 하지 않죠.
종이는 당신의 말을 가로막거나, 서둘러 결론 내리려 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그저 묵묵히 모든 것을 받아줍니다.
아무리 어둡고 못난 생각이라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부끄러운 이야기라도 괜찮습니다.
종이는 그 모든 것을 그저 받아 적을 뿐입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깊은 우물처럼, 당신이 쏟아내는 모든 감정을 말없이 품어줍니다.
비밀을 지켜줄까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원한다면 언제든 찢어버리거나 태워버릴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이 말을 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모습을 보이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항상 나를 포장하고, 진짜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하얀 종이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가장 솔직한 당신의 모습으로, 가장 정직한 당신의 언어로 마음을 꺼내놓아도 괜찮습니다.
울고 싶으면 ‘슬프다’고 쓰고, 화가 나면 거친 말을 그대로 적어도 좋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오직 당신 자신을 위한 글입니다.
마음속에만 담아두었을 때, 걱정은 안개처럼 형태 없이 우리를 잠식합니다.
하지만 종이 위에 적히는 순간, 그것은 그저 몇 개의 글자 뭉치가 될 뿐입니다.
대나무숲에 외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처럼, 종이 위에 마음을 쏟아내고 나면, 가슴을 짓누르던 돌멩이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만의 대나무숲을 펼쳐보세요.
그곳에서는 당신이 세상의 유일한 왕입니다.
이름을 붙여주면 괴물은 힘을 잃어요
어릴 적,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를 기억하나요?
옷걸이에 걸린 옷이 꼭 귀신처럼 보이고, 작은 소리 하나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던 그 기분 말이에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장 큰 공포를 만듭니다. 우리의 걱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불안해.’
‘뭔가 잘못될 것 같아.’
이렇게 막연하고 형태 없는 걱정은, 어두운 방 안의 괴물처럼 우리를 순식간에 집어삼킵니다.
하지만 불을 켜고 그것이 귀신이 아니라 아빠의 양복이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공포는 눈 녹듯 사라집니다. 정체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글쓰기는 마음의 방에 불을 켜는 행위와 같습니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막연한 불안감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그냥 불안하다’고 뭉뚱그려 생각하는 대신, 종이에 이렇게 적어보는 겁니다.
‘나는 내일 있을 발표 때문에 불안하다.’
‘발표를 망쳐서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까 봐 두렵다.’
‘열심히 준비한 자료에 실수가 있을까 봐 걱정된다.’
어떤가요? ‘막연한 불안’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발표 걱정’,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실수에 대한 염려’라는 작고 구체적인 문제들로 바뀌었습니다.
이름이 붙여진 걱정은 더 이상 우리를 압도하는 거대한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다룰 수 있고, 해결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 작은 과제가 됩니다.
‘발표 연습을 한 번 더 해볼까?’
‘자료를 자기 전에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해야겠다.’
‘사람들의 시선은 너무 의식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하자.’
이렇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작은 힘이 생깁니다.
물론 글을 쓴다고 해서 걱정이 마법처럼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그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불안감의 절반을 덜어낼 수 있습니다.
뒤죽박죽 엉켜 있던 생각들이 글자가 되어 정리되는 순간, 우리는 문제와 나 자신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내가 곧 걱정’이 아니라, ‘나에게 걱정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고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마치 의사가 환자의 아픈 부위를 정확히 찾아내 이름을 붙여주는 것처럼, 당신도 스스로의 마음 의사가 되어, 아픈 곳에 정확한 진단명을 내려주세요.
이름을 붙여주세요. 그러면 정체 모를 괴물은 힘을 잃고, 당신은 다시 마음의 주도권을 되찾게 될 겁니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글을 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담부터 느낍니다.
‘무엇을 써야 하지?’, ‘나는 글재주가 없는데.’,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어.’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려는 글쓰기는, 학교 작문 시간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맞춤법이나 문장의 구조, 논리적인 흐름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잘 쓰기 위한 글이 아니라, 그저 쏟아내기 위한 글이니까요.
아무도 채점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규칙과 부담감을 잠시 내려놓으세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딱 세 가지입니다. 종이, 펜, 그리고 당신의 마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적어보세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라고 시작해도 좋습니다.
‘글을 쓰는 게 너무 어색하다.’, ‘이게 정말 도움이 될까?’ 하는 의심을 그대로 써도 괜찮습니다.
아무런 의미 없는 말들을 그저 나열해도 좋습니다.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겁니다.
마치 오랫동안 잠겨 있던 수도꼭지를 처음 틀었을 때, 녹물이 한참 쏟아져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두서없고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겁니다.
괜찮습니다. 그 녹물이 다 빠져나와야 맑은 물이 흐를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진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누군가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 꾹꾹 눌러 담았던 억울함. 스스로도 외면하고 싶었던 부끄러운 감정.
그 모든 것들을 검열 없이, 필터링 없이 날것 그대로 종이 위에 옮겨보세요.
욕을 써도 좋고, 그림을 그려도 좋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요. 온전히 당신만의 공간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생각’하려 하지 않고, 그저 ‘느끼는’ 대로 쓰는 것입니다.
머리로 쓰지 말고, 가슴으로, 손끝으로 쓴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것은 논리적인 분석 과정이 아니라, 꽉 막혀 있던 감정의 물꼬를 트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잘 쓰려는 마음을 버리는 순간, 오히려 가장 솔직하고 강력한 글이 써지기 시작할 겁니다.
10분을 쓰든, 한 시간을 쓰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이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 때까지, 펜을 놓지 마세요.
손이 조금 아파올 때쯤, 당신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을 겁니다. 이것은 마법이 아니라, 아주 과학적인 마음의 환기 과정입니다.
아무도 채점하지 않는 나만의 시험지
우리는 평생을 시험 보며 살아갑니다.
정답을 맞혀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요.
회사에서는 유능한 직원이라는 정답을, 관계에서는 좋은 사람이라는 정답을, 스스로에게는 완벽한 나라는 정답을 강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하나의 시험처럼 느껴집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나?’, ‘이 감정은 틀린 것 같아.’ 스스로의 마음에까지 빨간 펜으로 가혹하게 점수를 매기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 당신 앞에 놓인 하얀 종이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무도 채점하지 않는 당신만의 시험지입니다.
이곳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습니다.
100점짜리 감정도, 0점짜리 생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대로가 유일한 정답입니다.
‘나는 지금 질투를 느껴.’ – 정답입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 정답입니다.
‘사실 그 사람이 너무 미워.’ – 그것 또한 틀림없는 정답입니다.
사회적인 시선, 도덕적인 잣대, 다른 사람의 평가. 그 모든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우리는 늘 ‘착한 아이 증후군’에 시달립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나쁜 것이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배워왔으니까요.
하지만 억지로 누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안에서 곪아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이 시험지 위에서는 마음껏 ‘나쁜 아이’가 되어도 괜찮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못되고, 옹졸한 사람이 되어도 아무도 당신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솔직하게 모든 감정을 인정하고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아, 내 안에 이런 마음도 있었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그 상황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어.’
스스로를 판단하는 대신, 그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자기 자신과 나누는 가장 솔직한 대화입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며낼 필요도 없고, 스스로를 속일 필요도 없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그러니 마음껏 틀려도 괜찮습니다. 마음껏 당신의 답을 적어 내려가세요.
이 시험지의 유일한 채점관은 당신이며, 당신이 쓰는 모든 것은 무조건 만점이니까요.
이 안전한 공간 안에서, 당신의 마음이 마음껏 숨 쉴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와 선물입니다.
글자와 나 사이에 작은 틈이 생길 때
머릿속에서 걱정이 맴돌 때는, 마치 내가 걱정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걱정과 나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죠.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 안에 있던 생각들이 밖으로 나와, 종이 위의 ‘글자’라는 객관적인 형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 순간, 나와 걱정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생깁니다.
숨 쉴 공간, 잠시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가 확보되는 것이죠.
이전까지는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갇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면, 이제는 안전한 곳에서 창밖으로 태풍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된 것과 같습니다.
종이 위에 적힌 글자들을 가만히 읽어보세요.
‘아,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구나.’
‘이 단어를 유독 많이 썼네. 지금 이 감정이 가장 컸나 보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내 마음을 한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거리 두기’라고 합니다.
이 작은 거리감은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줍니다. 걱정에 압도당하고 지배당하는 대신, 그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하고 다룰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요.
‘이 걱정은 내일 아침이면 조금 작아질 거야.’
‘이 문제는 내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네. 일단 내려놓자.’
이렇게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힘이 생깁니다.
또한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도 몰랐던 마음의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유독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하는구나.’
‘칭찬을 들어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네.’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내 마음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어디에 위험한 웅덩이가 있고, 어디에 편히 쉴 수 있는 나무 그늘이 있는지 알게 되는 겁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나를 지킬 힘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취약한지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을 더 효과적으로 찾아낼 수 있게 됩니다.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글쓰기는 아주 튼튼한 방파제가 되어줍니다.
파도를 없앨 수는 없지만, 내가 휩쓸려가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죠.
나와 걱정 사이에 생긴 그 작은 틈. 그 틈 사이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할 겁니다.
이제 그만, 하고 펜을 놓아도 괜찮아요
마음속 이야기를 쏟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이 격해지기도 합니다.
잊고 있던 상처가 떠올라 눈물이 나기도 하고, 분노에 휩싸여 손이 떨리기도 하죠.
괜찮습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막혀있던 감정의 댐이 터지면서, 그동안 쌓여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 나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억지로 끝까지 파고들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그만.’
스스로에게 멈춤 신호를 보내고, 조용히 펜을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이것은 끝내야만 하는 숙제가 아니니까요.
우리의 목표는 걱정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마음의 압력을 조금 낮춰주고, 환기를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마치 방 청소를 하다가 너무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 내일 다시 할 수 있는 것처럼요.
오늘 다 쏟아내지 못한 이야기는, 내일 다시 종이를 펼쳐 이어가면 됩니다.
글쓰기가 또 다른 스트레스나 의무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오직 당신을 위한, 당신의 편안함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어떤 날은 한 페이지만 써도 마음이 후련해지고, 어떤 날은 몇 장을 써도 여전히 답답할 수 있습니다.
그날그날의 마음 상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그저 내버려 두세요.
다 쓴 종이는 어떻게 할까요? 선택은 온전히 당신의 몫입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면, 잘게 찢어서 버리거나, 안전한 곳에서 태워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글자가 불꽃 속에서 재로 변하는 것을 보며, 내 마음의 무거운 감정들도 함께 날아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하나의 의식처럼, 마음의 정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혹은, 그 기록들을 차곡차곡 모아두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어보며 ‘아, 내가 이때 이런 일로 힘들어했구나. 그래도 잘 이겨냈네.’ 하고 스스로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펼쳐볼 수 없는, 나만의 비밀 일기장이 되는 셈이죠.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의 주도권은 당신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쓰고 싶을 때 쓰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원하는 대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이 완전한 통제감은, 통제할 수 없는 걱정들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던 당신에게 작은 안정감을 선물할 겁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세요. 당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딱 그만큼만.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오늘, 스스로를 돌보는 아주 위대한 일을 해낸 것입니다.
이제 하얀 종이와 펜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당신의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들로 여전히 복잡했을지 모릅니다.
그 생각들을 더 이상 머릿속에 가두어두지 마세요.
그것들은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저 밖으로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뿐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거창한 행위가 아닙니다.
그저 내 마음의 소리를 내가 직접 들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경청의 시간입니다.
모든 걱정을 한 번에 해결해 주는 마법 지팡이는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발밑을 비춰주는 작은 손전등은 분명히 되어줄 겁니다.
다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용기.
적어도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 수 있는 안도감.
그 작은 빛 하나가 우리를 다시 앞으로 걸어가게 만듭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담길 하얀 종이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이 될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제 당신의 손이, 그리고 당신의 마음이 움직일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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