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가을의 문턱에서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어떤 일을 끝마치고 나면, 마음속에서 조용히 스위치가 하나 켜지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을 거예요.
방금 끝낸 발표, 정성껏 써서 보낸 메일, 친구와 나눈 대화, 오늘 입고 나간 옷차림까지.
마치 성능 좋은 스캐너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훑어 내리듯, 나의 모든 것을 점검하기 시작하죠.
그런데 이상해요. 그 스캐너는 잘한 점은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아무 문제 없었던 수많은 순간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투명하게 통과시켜요.
스캐너의 렌즈는 오직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바로 ‘부족한 점’, ‘실수한 점’, ‘아쉬운 점’.
‘아,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밖에 못 했을까.’
‘다른 사람들은 다 저만큼 하는데,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일까.’
밤에 이불 속에 누워 오늘 하루를 되감기할 때면, 스캐너는 가장 높은 해상도로 가장 아팠던 순간만을 확대해서 보여줍니다.
잠들기 직전까지, 때로는 꿈속까지 그 장면을 반복 재생하죠.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감독이 되어,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실패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만 같아요.
그 스캐너의 서늘한 빛 아래에서 당신은 점점 작아집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구나.
자신감이라는 싹은 고개를 들기도 전에 스캐너의 빛에 타서 사라져 버립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스캐너의 전원을 잠시 내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지치게 하는 그 날카로운 빛을, 따뜻한 조명으로 바꾸는 방법에 대한 아주 작은 안내서입니다.
그 스캐너는 원래 당신을 지키려고 태어났어요
마음속 스캐너가 처음부터 당신을 괴롭히려고 만들어진 건 아니에요.
믿기 어렵겠지만, 그 시작은 당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아주 오래전, 우리가 아직 어렸을 때를 한번 떠올려 볼까요.
실수했을 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던 순간, 준비가 부족해서 창피를 당했던 기억, 혹은 누군가에게 비난받고 무시당했던 경험.
그런 경험들은 마음에 작은 상처를 남깁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다짐했을 거예요.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눈빛을 받고 싶지 않아.’
‘그러려면 내가 먼저 완벽해져야 해.’
그래서 마음속에 아주 엄격한 감독관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나에게 손가락질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검열하는 거죠.
나의 부족한 점을 세상이 발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내서 고치려는 방어기제였습니다.
그게 바로 당신 안의 스캐너가 처음 켜진 순간입니다.
스캐너는 당신을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지키는 갑옷 같은 역할을 하려고 했어요.
실패의 아픔을 다시 느끼지 않도록 미리 경고등을 켜주는 존재가 되려고 했죠.
‘이 부분은 부족해. 더 노력해야 해. 이대로 나가면 위험해.’
이런 신호들은 사실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갑옷이 너무 무거워져서 당신을 짓누르기 시작한 거죠.
경고음이 너무 커져서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거예요.
당신을 지키려던 마음은 어느새 당신을 가두는 감옥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 순간에도, 스캐너는 혼자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갑니다.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풀지 않아요.
원래의 목적은 잊어버린 채, 부족한 점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셈이죠.
그러니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는 그 목소리를 무작정 미워하지는 말아주세요.
그저 당신을 너무나 지키고 싶었던, 서툴고 겁 많았던 과거의 당신이 보낸 신호일 뿐이니까요.
우리가 할 일은 그 스캐너를 부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괜찮다고, 더 이상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안전하다고 다정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스캐너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비교’입니다
당신의 마음속 스캐너는 무엇을 먹고 그렇게 강력해졌을까요?
스캐너가 가장 좋아하는, 그래서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먹이가 있습니다. 바로 ‘비교’라는 음식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우리는 비교의 세상으로 들어섭니다.
SNS를 켜면 반짝이는 다른 사람들의 삶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나보다 더 멋진 곳에 가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스캐너는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저장하며 속삭이죠. ‘봐, 너는 저렇게 못 살고 있잖아.’
회사에 가면 동료들의 뛰어난 성과가 눈에 들어옵니다.
나보다 발표를 더 잘하는 사람, 보고서를 더 깔끔하게 쓰는 사람, 인정을 더 많이 받는 사람.
스캐너는 그들의 모습을 당신의 모습 옆에 나란히 세워두고 틀린 그림 찾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틀린 쪽은 당신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친구들을 만나도 비교는 멈추지 않아요.
누군가는 더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고, 누군가는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누군가는 더 확실한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스캐너는 당신의 삶에서 부족한 점들을 맹렬하게 검색합니다.
비교는 스캐너에게 최고의 에너지원입니다.
비교를 하면 할수록 스캐너의 렌즈는 더 밝아지고, 검색 속도는 더 빨라져요.
‘나’라는 기준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라는 기준점만이 남게 되죠.
그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하니, 나는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데 말이에요.
걸어온 길이 다르고, 가지고 태어난 것이 다르고, 원하는 삶의 모양도 다른데, 우리는 자꾸만 다른 사람의 시험지로 내 인생을 채점하려고 합니다.
당연히 정답일 리가 없죠.
스캐너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거예요. 비교를 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남들만큼은 해야 뒤처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교묘한 거짓말입니다.
건강한 자극을 주는 비교도 있겠지만, 지금 당신의 스캐너가 하는 비교는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가 아니라, 당신을 주저앉게 만드는 무거운 짐일 뿐입니다.
이제 스캐너에게 다른 음식을 줘야 할 시간이에요.
비교라는 자극적인 음식 대신, ‘나만의 속도’와 ‘나만의 길’이라는 담백한 음식을요.
세상의 수많은 길이 있지만, 그 길 위를 걷는 나의 두 발에 더 집중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스캐너의 목소리가 유독 커지는 밤
낮 동안은 정신없이 바빠서 스캐너의 존재를 잠시 잊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일에 집중하고, 무언가를 하느라 분주하니까요.
하지만 하루가 끝나고 세상이 조용해지는 시간이 오면, 어김없이 그 목소리는 다시 찾아옵니다.
혼자 방에 남아 불을 끄고 눕는 그 순간. 온갖 소음이 사라진 고요함 속에서, 스캐너의 목소리는 몇 배나 더 크게 울려 퍼집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 하루 동안 수집한 부족한 점 리스트를 하나씩 재생하기 시작하죠.
‘오늘 회의 때, 왜 그렇게 바보같이 대답했을까?’
‘아까 친구가 한 그 말, 혹시 나 때문에 기분 나빴던 건 아닐까?’
‘오늘도 운동 가기로 했는데 결국 못 갔네. 나는 정말 의지박약이야.’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하나의 작은 실수가 오늘의 실패로, 오늘의 실패가 내 인생 전체의 실패로 번져나갑니다.
스캐너는 과거의 비슷한 실수들까지 전부 데이터베이스에서 꺼내와 증거로 제시합니다.
‘봐, 넌 예전에도 똑같은 실수를 했잖아. 넌 변하지 않아.’
이 밤의 스캐너는 아주 유능한 검사 같아서, 당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하나도 주지 않습니다.
반박하려고 해도, 더 강력한 증거와 논리로 당신을 몰아세웁니다.
그 공격 앞에서 당신은 무력해지고, 결국 스캐너의 모든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맞아, 나는 정말 부족한 사람이구나.’
밤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감정적으로 취약해집니다.
낮 동안 우리를 지켜주던 이성의 힘이 약해지고, 감정의 파도가 더 거세게 밀려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밤에는 작은 걱정도 거대한 불안의 괴물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스캐너는 바로 이 시간을 노리는 겁니다.
밤은 원래 휴식의 시간인데, 당신에게는 또 다른 전쟁터가 되어버립니다.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하고, 수십 번씩 뒤척이며 나 자신과 싸워야 하죠.
그렇게 지친 채로 아침을 맞이하면,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가 남아있을 리 없습니다. 악순환은 그렇게 반복됩니다.
만약 당신의 밤이 이렇다면, 기억해주세요.
밤에 들려오는 스캐너의 목소리는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둠과 피로감이라는 필터를 거쳐 몇 배나 더 왜곡되고 과장된 소리일 뿐이에요.
그 목소리와 싸우려 하지 마세요. 싸울수록 더 또렷해질 뿐입니다.
대신, 그 목소리를 그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처럼 대해주세요.
‘아, 또 밤이 되니 스캐너가 시끄럽게 떠드는구나.’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내일 아침에 다시 생각해야지.’
밤에 드는 생각에게는 결론을 내릴 힘을 주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밤을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완벽주의
스캐너는 종종 ‘완벽’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고 나타납니다.
‘나는 기준이 높은 것뿐이야.’
‘더 잘하고 싶어서,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이유를 더 나은 나를 위한 열정이나 책임감으로 포장하죠.
하지만 그 완벽주의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완벽주의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준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능하게 보면 어떡하지?’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면 나를 우습게 알 거야.’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어.’
이 완벽주의의 뿌리에는 깊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부족한 나의 본모습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이 나를 떠나가고 외면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래서 우리는 완벽이라는 단단한 성벽을 쌓고 그 안에 나를 숨깁니다.
털끝만큼의 흠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면서요.
이런 완벽주의는 우리를 끊임없이 긴장하게 만듭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했을 때의 실망감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걱정하게 돼요.
과정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오직 ‘완벽한 결과’라는 압박감만 남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예 시작조차 못 하고 미루는 경우도 많아지죠.
설령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기쁨은 아주 잠깐입니다.
스캐너는 곧바로 그 결과물 속에서 아주 작은 흠집을 찾아냅니다.
100점 만점에 99점을 맞아도, 왜 1점을 더 맞지 못했는지를 파고들죠. ‘이 부분은 조금 아쉬웠어. 다음에는 더 잘해야 해.’
스스로를 칭찬하고 만족할 기회를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나를 성장시키는 건강한 욕심이 아닙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아요.
아무리 노력하고 성과를 내도, 마음속 허전함과 불안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더 높은 기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이제 그 슬픈 완벽주의와 작별할 시간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아니,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당신의 완벽한 모습 때문에 당신을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의 조금은 서툴고, 가끔은 실수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에 더 큰 매력을 느낄지 모릅니다.
나에게 조금의 틈을 허락해주세요.
실수해도 괜찮고,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 틈으로 새로운 가능성이 들어오고, 다른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가 스며들 공간이 생길 거예요.
스캐너의 전원을 끄는 첫 번째 버튼, ‘알아차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켜지는 스캐너. 이 스캐너를 멈추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스캐너가 지금 켜졌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스캐너의 목소리를 ‘나의 생각’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마음속에서 울리는 비난의 목소리를 그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죠. 그 목소리와 나를 분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라는 생각이 들 때, 이것이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내 안의 스캐너가 또 작동하기 시작했구나’ 라고 알아차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마치 집안에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릴 때, ‘아, 경보음이 울리는구나’ 하고 인지하는 것과 같아요.
경보음이 울린다고 해서 바로 불이 난 것은 아닐 수 있잖아요.
이 ‘알아차림’은 나와 내 안의 비판적인 목소리 사이에 아주 작은 공간을 만들어줍니다.
그 목소리에 휩쓸려가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죠. 마치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상태에서, 잠시 튜브를 잡고 숨을 고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일을 마친 후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해질 때, 과거의 실수가 자꾸만 떠오르며 나를 자책하게 될 때,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우울한 기분이 들 때.
바로 그 순간,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해보세요.
‘아, 스캐너가 켜졌네.’
‘비판 스위치가 또 눌렸구나.’
‘나를 혼내는 목소리가 또 시작됐군.’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당신 안의 비판자에게 ‘김대리’나 ‘깐깐한 박부장’ 같은 별명을 붙여주는 거예요.
‘어, 깐깐한 박부장님 또 등판하셨네.’
이렇게 유머를 섞어 이름을 불러주면, 그 목소리의 힘이 조금은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심각한 진실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저 반복되는 레퍼토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변합니다.
자동으로 나를 공격하던 생각의 흐름을 잠시 멈출 수 있게 됩니다. 그 목소리가 ‘나’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스캐너의 지배에서 벗어날 첫 단추를 꿰는 셈입니다.
매일 연습해보세요. 오늘 하루, 스캐너가 몇 번이나 켜지는지 세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처음에는 알아차리는 것조차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반복하다 보면, 스캐너가 켜지는 바로 그 찰나를 포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 순간이 바로, 당신이 당신 마음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시작점입니다.
당신의 마음에도 ‘증거 보관소’가 필요합니다
스캐너는 아주 교묘한 거짓말쟁이입니다.
당신이 부족하고 못났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오직 실패의 증거들만 수집하고 보여주죠.
성공했던 기억, 잘해냈던 순간들은 철저히 외면하거나 ‘그건 운이 좋았을 뿐이야’ 라며 가치를 깎아내립니다.
이런 편파적인 증거들만 계속해서 보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그 주장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스캐너가 무시하고 버리는 증거들을 따로 모아두는 ‘긍정 증거 보관소’를 마음속에 만드는 거예요.
스캐너의 주장이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지를 깨닫게 해줄 반대 증거들을 모으는 거죠.
거창한 성공이나 대단한 성취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더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스캐너의 날카로운 레이더망을 피해 갈 수 있는 작고 소중한 순간들이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 오늘 아침,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것.
- 늦을 뻔했는데, 부지런히 걸어서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한 것.
- 동료가 어려워하는 일을 먼저 나서서 도와준 것.
- 점심을 먹고 꾸벅꾸벅 졸렸지만, 맡은 일을 시간 안에 끝마친 것.
-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준 것.
- 자기 전에 5분이라도 책을 읽은 것.
이런 순간들은 스캐너에게는 너무나 하찮아 보여서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성공들이야말로 우리가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소중한 증거입니다.
이 증거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기록해보세요.
스마트폰 메모장도 좋고, 작은 수첩도 좋습니다.
‘오늘 내가 잘한 일’ 또는 ‘오늘 나에게 고마운 일’ 이라는 제목으로 하루에 세 가지만 적어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세 가지를 채우는 것조차 어색하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스캐너가 옆에서 계속 방해할지도 몰라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꿋꿋하게 나만의 증거를 쌓아나가세요.
이 기록이 쌓이면 쌓일수록, 당신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어라? 나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이잖아?’
‘나, 매일매일 이렇게 애쓰며 잘 살아내고 있었구나.’
스캐너가 ‘너는 늘 실패만 하잖아’ 라고 공격해올 때, 당신은 이제 당당하게 증거 보관소를 열어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아닌데? 내가 어제는 이런 것도 해냈고, 그저께는 이런 칭찬도 들었는데?’
구체적인 증거 앞에서는 스캐너도 힘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주입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미 존재했지만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제대로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의 반대편에 작은 추를 하나씩 올려놓는 것처럼, 균형을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나에게 가장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연습
만약 당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힘들어하며 스스로를 탓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아마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게, 네가 더 잘했어야지. 그것밖에 못 하니?’
‘정신 차려.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데 너는 왜 그래?’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대신, 우리는 이렇게 말해줄 겁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너무 속상해하지 마.’
‘결과가 어떻든, 너 정말 애썼잖아. 나는 다 알아.’
‘네 잘못이 아니야. 힘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나 다정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넬 줄 압니다.
그런데 왜 유독 나 자신에게만큼은 그렇게 인색하고 차가운 걸까요?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재판관이 되어, 사소한 실수 하나도 용납하지 않으려 합니다.
가장 큰 힘이 되어주어야 할 나 자신이, 오히려 나를 가장 아프게 공격하는 적이 되어버린 셈이죠.
이제 그 역할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내 안의 비판적인 스캐너 목소리의 볼륨을 줄이고, 다정한 친구 목소리의 볼륨을 키우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스캐너가 작동을 시작하고, 나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세요.
‘만약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지금 나와 똑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뭐라고 말해줄까?’
그리고 그 말을, 나 자신에게 그대로 들려주는 겁니다.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면 더 좋습니다.
‘괜찮아, 지혜야. 이 정도면 정말 잘한 거야.’
‘애썼다, 민준아. 오늘은 이만하고 푹 쉬자.’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하고 낯간지러울 수 있어요.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색함은 우리가 그동안 나 자신을 얼마나 함부로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지 못했던 미안함의 표현일지도 몰라요.
이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동적으로 나를 탓하던 생각의 회로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비난과 자책이 있던 자리에, 이해와 위로가 들어설 공간이 생겨요.
실패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꺼내줄 동아줄이 내 안에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누군가의 위로도 물론 큰 힘이 되지만, 결국 나를 온전히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의 목소리입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등진다고 해도, 나만큼은 끝까지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나의 친구가 되어주는 연습을 시작해보세요.
‘해야 한다’는 감옥에서 ‘하고 싶다’는 놀이터로
스캐너는 우리를 ‘해야 한다(must)’는 말의 감옥에 가둡니다.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
‘더 부지런해야 한다.’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한다.’
이 ‘해야 한다’는 목록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를 해내면, 또 다른 ‘해야 할 일’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우리의 삶은 마치 숙제를 해치우는 것처럼 빡빡하고 의무감으로 가득 차게 되죠.
그 안에는 즐거움이나 설렘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 ‘해야 한다’는 말들은 사실 누가 우리에게 시킨 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규칙과 기준으로, 나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거죠.
그 기준에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면, 스캐너는 곧바로 경고등을 켜고 우리를 죄인처럼 다룹니다. ‘너는 왜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못하니?’
이제 이 단단한 감옥의 벽에 작은 문을 하나 낼 시간입니다.
‘해야 한다’는 세상에서, ‘하고 싶다(want to)’ 또는 ‘하면 좋겠다(would like to)’는 세상으로 조금씩 걸어 나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운동을 해야만 해’ 라는 생각이 당신을 짓누르고 있다면, 이렇게 한번 바꿔보는 거예요.
‘가볍게 산책이라도 하면 기분이 상쾌해지겠다.’ 또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10분만 걸어볼까?’
‘보고서를 완벽하게 써야 해’ 라는 압박감에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렇게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일단 내가 생각나는 것부터 편안하게 적어보자.’ 또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오늘 목표는 딱 한 문단만 완성하는 걸로.’
말 한두 개를 바꿨을 뿐인데, 마음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지나요?
‘해야 한다’는 우리를 억압하고 통제하지만, ‘하고 싶다’나 ‘하면 좋겠다’는 우리의 선택과 자율성을 존중해줍니다.
의무감이 있던 자리에, 작은 호기심과 즐거움이 싹트기 시작해요.
물론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안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을 ‘해야만 하는’ 무거운 의무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뜻이에요.
그 일 속에서 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부분을 찾아내거나, 그 일을 해냈을 때의 긍정적인 결과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이 일을 끝내고 나면, 시원한 맥주 한잔 마셔야지.’
‘이것만 마치면,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마음껏 볼 수 있어.’
스스로에게 작은 보상을 약속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해야 한다’의 목록을 줄여나가세요. 그리고 그 자리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로 채워나가세요.
삶이 의무로 가득한 감옥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가 될 때, 스캐너는 더 이상 당신을 날카롭게 감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예요.
부족한 점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말해주기
스캐너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정답’이 있다고 말합니다.
성격은 활발하고 긍정적이어야 하고, 일 처리는 빠르고 빈틈없어야 하며, 인간관계는 넓고 원만해야 한다는 식의 보이지 않는 정답지.
그리고 우리는 그 정답지와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일 때마다, 스스로에게 ‘틀렸다’거나 ‘부족하다’는 딱지를 붙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말을 유창하게 잘하지 못해요. 스캐너는 이것을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진단합니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스캐너는 이것을 ‘예민하고 소심하다’고 평가합니다.
나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해요. 스캐너는 이것을 ‘능력이 없다’고 결론 내립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말을 잘하지 못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말을 깊이 있게 들어주는 재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적응이 느린 대신, 한번 마음을 연 관계는 누구보다 진득하게 이어가는 힘이 있을 수 있어요.
멀티태스킹에 약한 대신, 한 가지 일에 놀라울 정도로 깊이 파고드는 집중력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함께 존재합니다.
우리의 성격이나 기질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상황에서는 단점으로 보였던 것이, 다른 상황에서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가시를 가졌고, 해바라기는 한 곳만 바라보지만 그 우직함이 매력적입니다.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스캐너가 ‘부족한 점’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당신의 모습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세요.
그리고 그 딱지를 떼어내고, ‘다를 뿐’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붙여주세요.
‘나는 내성적인 게 아니야. 그냥 나만의 방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뿐이야.’
‘나는 결단력이 없는 게 아니야. 여러 가능성을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뿐이야.’
‘나는 게으른 게 아니야. 나에게는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야.’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나를 짓누르던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나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나만이 가진 고유한 색깔이고 특별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억지로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죠.
세상이라는 정원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꽃이 피어납니다. 모든 꽃이 장미처럼 화려할 필요는 없어요.
작고 소박한 들꽃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가지고 정원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당신은 당신이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꽃입니다.
다른 꽃과 비교하며 나의 색이 왜 다른지, 나의 향기가 왜 다른지 자책하지 마세요.
그저 당신만의 모습으로, 당신만의 속도로, 당신만의 향기를 피워내면 됩니다.
그 ‘다름’이 바로 당신을 당신답게 만드는 가장 소중한 가치이니까요.
스캐너의 볼륨을 낮추고, 세상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스캐너의 목소리에만 너무 오래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우리는 세상의 다른 소리들을 놓치게 됩니다.
내 안의 비판에만 집중하느라, 나를 향한 세상의 따뜻한 신호들을 듣지 못하는 거죠.
스스로 ‘오늘 발표는 정말 엉망이었어’ 라고 자책하고 있을 때, 사실 동료는 옆에서 ‘오늘 발표 정말 인상 깊었어요. 많이 배웠습니다.’ 라고 진심으로 말해주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스캐너의 소리가 너무 커서, 그 칭찬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아니야, 빈말일 거야. 나를 위로해주려고 하는 말이겠지.’ 라며 그 진심을 왜곡해서 받아들입니다.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 ‘이 부분은 부족하고, 저 부분은 아쉬워’ 라며 흠을 찾고 있을 때, 누군가는 그 결과물을 보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정말 대단해요.’ 라고 감탄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감탄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스캐너가 ‘아니, 저 사람은 잘 몰라서 그래. 진짜 전문가는 이게 얼마나 부족한지 알걸?’ 이라고 속삭이니까요.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와 애정을 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신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스캐너가 들려주는 부정적인 이야기만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이제 의식적으로 스캐너의 볼륨을 조금만 낮춰보세요.
그리고 그 자리에, 나를 향한 세상의 진짜 목소리가 들어올 수 있도록 아주 작은 틈을 열어주는 겁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칭찬이나 격려의 말을 건넨다면, 일단 멈춰서 그 말을 그대로 한번 들어보세요.
‘아니에요’ 라고 반사적으로 부정하거나, 그 의미를 깎아내리려 하지 말고요.
그저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네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라고 답하며 그 마음을 받아들여 보세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스캐너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에요.
당신은 충분히 사랑받고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은 당신의 작은 실수나 부족한 점에 전혀 관심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당신의 장점과 당신이 가진 따뜻함을 더 많이 보고 있을 거예요.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적대적이지 않습니다.
내 안의 소리에만 갇혀 있지 마세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고, 귀를 열어 세상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당신을 아끼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당신 안의 스캐너 소리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예요.
그 따뜻한 목소리들이 당신의 진짜 모습을 되찾아줄 겁니다.
그 스캐너를 완전히 없애버릴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평생 함께 가야 할 마음의 습관 같은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그 스캐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스캐너가 당신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스캐너를 다룰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당신의 손에 아주 작은 조절기가 하나 쥐어져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스캐너의 날카로운 탐조등 빛을, 은은하고 따뜻한 무드등으로 바꿀 수 있는 조절기. 목소리의 볼륨을 시끄러운 경고음에서 나지막한 배경음악 정도로 줄일 수 있는 조절기.
그 조절기를 돌리는 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아, 또 시작이네’ 하고 알아차려주고,
나를 너무 몰아세운다 싶을 때, ‘괜찮아, 이만하면 잘했어’ 라고 다정한 말을 건네주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힘들어질 때, ‘나는 나만의 속도가 있을 뿐이야’ 라고 되뇌어주는 것.
이 모든 작은 행동이 조절기를 조금씩 돌리는 일입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거예요.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습관이라, 자꾸만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할 겁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넘어지면, 그냥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아, 내가 또 그랬구나. 괜찮아, 지금부터 다시 해보면 되지.’
그렇게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것 또한 중요한 연습입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애쓰며 잘 살아왔습니다.
더 이상 스스로를 혹독한 심판대 위에 세우지 마세요.
당신은 심판받아야 할 죄인이 아니라, 보살핌과 따뜻한 격려를 받아야 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제 당신 안의 스캐너를 잠시 쉬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 자리에, 당신의 잘한 점과 아름다운 점을 찾아내는 따뜻한 시선을 놓아주세요.
당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일을 더 이상 미루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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