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나를 잠식할 때

2025년 9월, 우리는 가을의 문턱에서 서성입니다. 선선한 바람이 뺨을 스치지만, 마음속에는 계절을 알 수 없는 안개가 자욱합니다.

고요한 밤, 방안에 홀로 누워 희미한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 세상을 봅니다. 이제는 잠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크롤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화면 속에는 타인의 행복과 성공 이야기가 빼곡합니다. 그 이야기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작은 섬처럼 홀로 남겨두고 멀어져 갑니다.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고 답답한데, 이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슬픔이라고 하기엔 눈물이 나지 않고, 분노라고 하기엔 화낼 대상이 없습니다.

그저 거대한 솜뭉치가 명치를 꾹 누르는 듯한 먹먹함. 세상의 모든 소음이 갑자기 차단된 진공 속에 나 혼자 둥둥 떠 있는 기분입니다.

‘무언가 해야 하는데.’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데.’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 목록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그 목록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는 기분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길을 잃어버린 걸까요? 분명 열심히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사방이 안개로 뒤덮인 낯선 곳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조차 가늠할 수 없습니다.

안갯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

마치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숲길을 홀로 걷는 기분일 겁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발을 내디뎌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 한 걸음 아래가 낭떠러지일지, 깊은 늪일지 몰라 두렵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멈춰 서는 쪽을 택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더 위험해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내가 멈춰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나를 비껴 무심하게 흘러갑니다.

귓가에는 다른 사람들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가는 발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 소리는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듭니다.

왜 나만 이 안개에 갇혀버린 걸까.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확신에 차서 걸어 나가는 걸까.

안개는 내 눈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축축하게 적십니다.

자신감이라는 옷은 눅눅하게 젖어 몸에 무겁게 달라붙습니다.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는 축축한 공기 속에서 힘을 잃고 사그라듭니다.

가끔 바람이 불어 안개가 아주 잠시 걷힐 때가 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언뜻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뒷모습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면 안도감보다는 더 깊은 절망감이 밀려옵니다.

‘이미 너무 멀어졌구나. 이제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

이 안개는 대체 언제쯤 걷히게 될까요.

아니, 걷히기는 하는 걸까요.

어쩌면 이 안개는 나에게만 주어진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 선택해서,

내가 남들보다 부족해서,

이 끝 모를 안갯속을 헤매게 된 것이라고 스스로를 탓하게 됩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만 간절해집니다.

나만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 같을 때

SNS를 켜면, 시간은 몇 배나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친구의 결혼 소식, 동료의 승진 소식, 한참 어린 후배의 창업 소식까지.

모두가 자신의 시간 속에서 착실하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축하해야 할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압니다. 하지만 마음 한쪽이 시큰거립니다.

진심으로 기뻐해 주지 못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 나 자신이 한심하고 밉게 느껴집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작년과, 재작년과 비교해서 달라진 것이 있나.

아무리 돌아봐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뒷걸음질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달리기 경주에서, 나만 출발선에 그대로 남겨진 기분.

출발 신호는 이미 오래전에 울렸고, 다른 선수들은 모두 저 멀리 달려가 보이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나만 아직 신발 끈을 어떻게 묶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해 봅니다.

하지만 그 다짐은 타인의 속도와 내 속도를 비교하는 순간,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져 내립니다.

나의 시간과 타인의 시간을 자꾸만 같은 저울 위에 올려놓습니다.

당연히 저울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그 기울어진 무게만큼 내 마음도 함께 가라앉습니다.

이런 마음을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어렵습니다.

“너도 잘하고 있어.”

“사람마다 속도가 다른 거야.”

이런 따뜻한 위로의 말들이 오히려 공허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내 불안의 깊이는 알지 못한 채 건네는, 영혼 없는 인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점점 더 입을 닫게 됩니다.

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열등감과 불안감을 애써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웃어 보입니다.

하지만 혼자가 되는 순간, 애써 눌러두었던 감정들은 몇 배로 커져 나를 집어삼킵니다.

나는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영원히 이 자리에서 멈춰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정답이 없는 시험지를 받은 마음

우리의 삶은 마치 정답이 없는 시험지를 받아 든 것과 같습니다.

어릴 때는 정답이 명확해 보였습니다.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

그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 성공이라는 이름의 동그라미를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세상은 셀 수 없이 많은 갈림길과 선택지로 가득합니다.

어떤 길이 정답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입니다.

이 길이 맞을까? 저 길로 갔어야 했나?

하나의 선택을 하고 나서도, 가보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이 끊임없이 고개를 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만의 답을 척척 찾아내는 것 같은데, 왜 내 시험지만 유독 백지로 남아있는 것 같을까요.

무엇이든 써 내려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아무거나 급하게 적어 넣었다가, 이내 불안해져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는 동안 시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틀려도 괜찮아’라는 말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선택 하나가 앞으로의 십 년, 혹은 평생을 좌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너무나 큽니다.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클수록 오히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결정 장애’라는 말로 쉽게 불리는 마음의 상태일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우유부단한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완벽한 정답을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에 가깝습니다.

정답을 찾을 수 없으니, 차라리 문제를 풀기를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이 시험지를 그냥 찢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기에, 백지 시험지를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질 뿐입니다.

투명한 벽에 갇혀버린 나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지.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지.
미뤄뒀던 책을 읽어야지.

머릿속으로는 이미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멋지게 해내는 내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몸이 좀처럼 따라주질 않습니다.

마치 나와 세상 사이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벽 너머의 세상은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는데, 나는 이쪽 편에 갇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습니다.

벽을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차갑고 단단한 감촉만이 절망적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게으르다’거나 ‘의지가 부족하다’고 쉽게 말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나 자신조차도 매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할까?’

‘남들은 다 하는데, 나는 왜 못할까?’

스스로를 계속해서 다그치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해내고 싶은 마음, 너무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도리어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족쇄가 된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져 버려서, 시작할 용기조차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마음의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자동차처럼 그저 멈춰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속 페달을 밟아도,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날 뿐 바퀴는 한 치도 굴러가지 않습니다.

이 투명한 벽은 누가 만든 것일까요.

결국 그 벽을 세운 것은 나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는 해야 해’라는 높은 기준.

‘실수하면 안 돼’라는 완벽주의.

‘남들에게 멋지게 보여야 해’라는 타인의 시선.

이런 생각들이 모여 단단하고 투명한 벽을 만들어, 나를 그 안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벽이 투명하기에, 나는 바깥세상을 생생히 볼 수 있고, 바깥세상도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고통스럽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력한 상황이 말입니다.

내 마음의 날씨는 계속 흐림

폭풍우가 몰아치거나 번개가 내리치는 격정적인 슬픔이 아닙니다.

그저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는, 잔뜩 찌푸린 회색 하늘 같은 상태.

마음의 날씨가 언제나 ‘흐림’에 머물러 있습니다.

기쁜 일이 생겨도 잠시 웃을 뿐, 마음은 금세 원래의 흐린 상태로 돌아옵니다.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날에도, 내 마음속에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나를 즐겁게 했던 것들이 더 이상 흥미롭지 않습니다.

좋아하던 음악을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재미있게 보던 영화나 드라마에도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의욕 자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감정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무뎌집니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내 마음과 나 사이에 얇은 막이 하나 생긴 것처럼, 모든 감정이 현실감 없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이것은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리는 일종의 ‘셧다운’ 조치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상처받거나 지치지 않기 위해, 감정의 스위치를 잠시 꺼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상태가 길어지면, 나는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잿빛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밥을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잠을 자도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늘 약간의 피로감과 무기력함이 안개처럼 온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점점 피하게 됩니다. 억지로 웃으며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거대한 에너지 소모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지만, 그 깊어지는 고립감은 다시 마음을 흐리게 만듭니다.

이 흐린 날씨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든 점입니다.

일기예보에도 없는, 나에게만 계속되는 이 장마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맑게 갠 하늘을 본 지가 언제인지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괜찮다’는 말이 가장 아픈 이유

힘든 마음을 아주 어렵게 꺼내놓았을 때,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마 “괜찮아”일 겁니다.

“다 괜찮아질 거야.”

“너는 괜찮아, 잘 해낼 수 있어.”

분명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으면, 마음이 더 외로워지고 닫히곤 합니다.

마치 내 깊은 불안과 고통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내가 겪고 있는 이 막막함이 별거 아닌 문제로 축소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금 나는 전혀 괜찮지 않은데, 자꾸만 괜찮다고 하니, 괜찮지 않은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물 밖에서 “괜찮아, 그냥 헤엄쳐서 나오면 돼!”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지금 나에게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자신의 힘듦을 말하지 않게 됩니다.

어설픈 위로를 받느니, 차라리 혼자 삭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은, 섣부른 해결책이나 근거 없는 긍정의 말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한마디.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게 당연해. 나라도 그랬을 거야.”

나의 감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유별나지 않음을,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해 주는 말이 더 간절했을 겁니다.

깊은 공감의 말 한마디가,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연대의 메시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괜찮다’는 말에 위로받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의 마음이 그만큼 깊고 복잡하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섣부른 긍정보다, 지금의 힘듦을 그저 함께 바라봐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쥐어보는 용기

미래라는 거대한 안갯속에서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안개를 한 번에 걷어낼 신비한 방법은 없습니다. 막막한 미래를 단숨에 명확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럴 때는 시선을 저 멀리 안개 낀 곳이 아닌, 바로 내 발밑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 하나를 쥐어보는 겁니다.

그 돌멩이의 차가운 감촉, 매끄럽거나 거친 표면, 손바닥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를 온전히 느껴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연습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우리의 마음이 ‘지금’이 아닌 ‘미래’라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가 있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하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현재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생각을 멈추고, 감각을 깨우는 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물 한 잔의 시원함.

창문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의 따스함.

좋아하는 음악의 익숙하고 편안한 멜로디.

이런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감각들이, 미래로 흩어져 있던 나의 의식을 ‘지금, 여기’로 안전하게 데려와 줍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10년 뒤에 무엇이 될까?’를 고민하는 대신, ‘오늘 점심은 뭘 먹으면 기분이 좋을까?’를 생각하는 겁니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거대한 질문 대신, ‘지금 당장 방바닥에 널브러진 양말을 치울까?’라는 작은 행동을 하는 겁니다.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이런 작은 행동들이 바로 내가 내 삶의 통제권을 다시 쥐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아줍니다.

내가 직접 만지고, 느끼고, 바꿀 수 있는 작은 것들에 집중할 때, 거대한 불안감은 잠시나마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미래를 바꾸려 애쓰지 마세요.

그저 지금 내 손에 쥔 작은 돌멩이의 감촉에만 온전히 집중해 보세요. 그것이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첫걸음입니다.

내 시간의 속도를 되찾는 법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마다 고유한 리듬과 속도를 가진 자신만의 시계를 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시계는 빨리 가고, 어떤 사람의 시계는 천천히 갑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꾸만 다른 사람의 시계에 내 시간을 맞추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친구가 나보다 앞서 나가는 것 같으면, 내 시계의 태엽을 억지로 빨리 감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숨이 차고, 넘어지고, 결국 시계는 망가져 버립니다.

이제 다른 사람의 시계에서 눈을 떼고, 오롯이 나의 시계에만 집중할 시간입니다.

나의 시계는 지금 몇 시를 가리키고 있나요? 어떤 속도로 움직이고 있나요?

어쩌면 지금은 빨리 달려야 할 때가 아니라, 잠시 멈춰서 시계에 기름칠을 하고 정비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먼지가 쌓여 있다면, 부드러운 헝겊으로 닦아주어야 할 때일 수도 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단호하게 외쳐주세요.

“이것은 나의 시간이고, 나의 속도다.”

서른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사람도 있고, 쉰이 넘어 첫 열매를 맺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찍 피었다고 해서 더 아름다운 꽃이 아니고, 늦게 열렸다고 해서 덜 달콤한 열매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계절에 맞춰 온전히 피고 열매 맺는 것입니다.

조급함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듭니다.

오직 앞서가는 사람의 뒷모습만 보게 하고,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모두 놓치게 합니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들꽃, 파란 하늘, 그리고 묵묵히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일 겁니다.

당신의 인생은 정해진 트랙을 도는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자신만의 풍경을 감상하며 만들어가는 긴 산책입니다.

옆 사람이 빨리 걷는다고 해서, 덩달아 뛸 필요 없습니다. 나만의 보폭으로, 나만의 리듬에 맞춰 한 걸음씩 나아가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당신만의 아름다운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불빛을 켜는 일

마음이 캄캄한 어둠에 갇혔을 때, 우리는 거대한 서치라이트를 터뜨려 단번에 어둠을 몰아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가장 작은 불빛 하나를 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성냥개비 하나를 조심스럽게 켜는 정도의 아주 작은 불빛.

그 불빛은 방 전체의 어둠을 몰아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 발밑이 어디인지, 내 손이 어디에 있는지는 비춰줍니다.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우리 삶에서 이 작은 불빛은 바로 ‘작은 성취감’에서 옵니다.

거창한 목표가 아닌,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성공의 경험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네모반듯하게 정리하는 것.

설거지를 미루지 않고 식사 후에 바로 하는 것.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

잠들기 전, 오늘 감사했던 일 한 가지를 떠올려보는 것.

이런 지극히 작은 성공들이 모여, ‘나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희미한 믿음을 만들어줍니다.

이 믿음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소중한 불빛이 됩니다.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그 불안에 온전히 휩쓸려 가는 대신, 의식적으로 나의 작은 불빛을 찾아보세요.

오늘 내가 잘한 일은 무엇이었지? 오늘 나를 잠시라도 기분 좋게 했던 순간은 언제였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오늘 아침에 마신 커피가 유난히 향긋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이런 작은 기쁨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마음에 저장하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이것은 마음속에 ‘긍정 회로’를 훈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부정적인 것에 더 쉽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어둡고 불안한 쪽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둠 속에서 애써 불빛을 찾아내려는 작은 노력. 그 노력이 반복될 때, 우리의 마음 근육은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하나의 작은 불빛이 켜지면, 그 빛에 의지해 다른 불빛을 켤 용기가 생깁니다. 그렇게 하나둘씩 불을 밝혀나가다 보면, 어느새 주변이 온기로 환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아주 조금씩, 나를 다시 믿어주는 연습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을 다그치며 살아왔습니다.

‘더 잘해야 해.’

‘이것밖에 못해?’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스스로에게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재판관이 되어, 끊임없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제 그 냉혹한 재판을 멈추고, 나 자신에게 따뜻한 변호인이 되어줄 시간입니다.

나를 믿어주는 연습은 거창한 다짐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부드럽게 안아주는 데서 시작됩니다.

불안해하는 나를 향해 “불안해하지 마!”라고 소리치는 대신, “많이 불안하구나. 그럴 수 있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주는 겁니다.

넘어져 있는 나를 보고 “왜 그것밖에 못해서 넘어졌어!”라고 질책하는 대신, “넘어졌네. 아프겠다. 괜찮아, 잠시 쉬었다 가자.”라고 손을 내밀어 주는 겁니다.

나의 모든 감정은 틀린 것이 아니라, 타당한 것입니다. 불안한 것도, 무기력한 것도, 심지어 누군가를 질투하는 마음도,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신호입니다.

그 감정들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억지로 억누르려고 할수록, 그것들은 더 큰 괴물이 되어 우리를 삼켜버립니다.

그저 지친 아이를 돌보듯, 나의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이름 붙여주고, 왜 찾아왔는지 귀 기울여 들어주세요.

“아, 지금 내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서 마음이 이렇게 힘든 거구나.”

“미래가 너무 불확실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구나.”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거친 파도는 절반으로 잦아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어떻게든 버텨온 자신을 칭찬해주세요.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어도 괜찮습니다. 안갯속에서 길을 잃고, 투명한 벽에 갇힌 채로도, 당신은 오늘 하루를 살아냈습니다.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잠을 자면서, 소중한 생명을 이어왔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대단하고, 칭찬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완벽하고 강한 내가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실수하더라도, 결국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아주 조금씩, 하루에 한 번이라도 괜찮으니, 스스로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고 작은 성공을 칭찬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주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 작은 연습들이 쌓여, 당신 안에 세상 그 무엇보다 단단한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할 겁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가을비가 내리는 2025년의 어느 날. 우리는 여전히 안갯속을 걷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안개는 평생 완전히 걷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본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길을 걸어가는 여정일 테니까요.

하지만 이제 우리 손에는 작은 등불 하나가 들려 있습니다. 그 등불은 세상을 한 번에 환하게 비추지는 못하지만, 내 발밑을 비추고 내 손의 온기를 느끼게 해줍니다. 바로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최소한의 용기를 줍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안개 너머의 저 멀리 있는 어떤 대단한 목적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지금, 등불이 비추는 이 한 걸음의 땅을 단단히 딛고 서는 것.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한 걸음의 땅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는 것.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이 모여 당신만의 길이 되고, 당신만의 역사가 되며, 당신만의 지도가 되어줄 겁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길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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