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떠질 때가 있습니다. 잠을 설친 탓에 몸은 천근만근 무거운데, 머릿속은 벌써 오늘 일어날지도 모를 온갖 걱정으로 시끄럽습니다.
간밤에 온 메시지 하나에 심장이 쿵 내려앉기도 합니다. 혹시 내가 뭔가 실수한 건 아닐까, 밤새 뒤척였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출근길,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나를 향한 낯섦과 거부감을 읽어냅니다. 사무실에선 동료의 작은 한숨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분명 나 때문에 쉬는 한숨인 것만 같습니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도 문득 불안이 고개를 듭니다. ‘내가 너무 들떠서 말을 많이 했나? 혹시 눈치 없는 사람으로 보였을까?’ 했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세상은 나름의 질서대로 잘 흘러가는 것 같은데, 유독 나만 혼자 폭풍우가 몰아치는 작은 배에 올라탄 기분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에도, 마음속에서는 수십 번씩 최악의 상황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그 목소리는 금세 불안이라는 거대한 소음에 묻혀버리고 맙니다.
마치 나만 뿌연 안경을 쓴 채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선명하게 보고 있는 풍경이, 나에게만은 온통 흐릿하고 위협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안경을 벗어 던지고 싶은데, 언제부터 쓰고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세상이 원래부터 흐릿했던 건 아니에요
우리가 처음 세상을 만났을 때를 떠올려볼까요. 아주 아기였을 때,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배고프면 울고, 기분이 좋으면 웃었습니다.
내일의 해가 뜨지 않으면 어쩌나, 방금 마신 우유가 상한 것이면 어쩌나 미리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그저 호기심과 신비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합니다. 넘어지면 아프다는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받기도 하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조심성’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 조심성은 우리를 지키기 위한 아주 자연스럽고 소중한 마음의 방어막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 방어막이 너무 두꺼워지고 단단해져서, 세상의 모든 것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불안’이라는 안경을 쓰게 되는 것이죠.
나도 모르게 쓰고 있던 불안이라는 안경
이 안경은 아주 교묘해서, 내가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듭니다. 그저 세상이 원래 이렇게 위험하고, 사람들은 믿을 수 없으며, 나는 늘 부족한 존재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만들죠.
이 안경을 쓰면, 친구의 따뜻한 조언은 나의 단점을 지적하는 비난처럼 왜곡되어 들립니다.
새로운 기회는 설렘보다는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으로 먼저 다가옵니다.
맑은 날씨를 보면서도, ‘곧 비가 올지 모르니 우산을 챙겨야 해’ 라는 걱정부터 떠올립니다.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입니다. 세상의 색깔은 원래보다 채도가 낮아지고, 사람들의 표정은 미세한 찡그림까지 확대되어 보입니다. 나의 작은 실수는 회복 불가능한 실패처럼 느껴지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는 이미 정해진 끔찍한 결말처럼 다가옵니다.
이것이 바로 불안이라는 안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 안경은 언제부터 쓰게 된 걸까요?
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안경을 써왔을지도 모릅니다.
늘 긴장하고 계셔야 했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세상을 조심해야 할 곳으로 먼저 배웠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믿었던 친구에게 큰 상처를 받은 그날, 다시는 상처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안경을 꺼내 들었을 수도 있죠.
큰 실패를 경험한 뒤, 다시는 그런 끔찍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안경을 쓰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원인은 저마다 다를 겁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 시작이 무엇이었든, 그 안경은 당시의 나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약하고 여렸던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다시는 아프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는 그 안경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 안경을 쓰고 있는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아, 그동안 나를 지키느라 정말 애썼구나. 이 안경을 쓰고 버티느라 고생 많았어’ 하고 스스로를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만약에’라는 단어가 세상을 가리는 순간
불안이라는 안경의 렌즈는 ‘만약에’라는 단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발표를 망치면 어떡하지?’
‘만약에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만약에 끔찍한 병에 걸리면 어떡하지?’
이 ‘만약에’라는 질문이 한번 시작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집니다. 단 하나의 작은 걱정 씨앗이,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거대한 재앙의 숲을 이룹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수많은 미래의 가능성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맙니다.
이 생각의 소용돌이는 너무나 생생해서, 마치 실제로 겪고 있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심장은 더 빨리 뛰고, 손에는 땀이 나고, 숨이 가빠옵니다.
우리의 뇌와 몸은 상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라는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온통 위험과 함정으로 가득 찬 곳이 되어버립니다.
온몸으로 느끼는 마음의 비상벨
불안은 단순히 머릿속 생각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 몸은 마음에 울리는 비상벨 소리를 온몸으로 듣고 반응합니다.
이유 없이 소화가 안 되고, 목과 어깨가 돌처럼 굳어있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때로는 숨 쉬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우리 몸이 보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신호입니다. 마음이 위험을 감지했으니, ‘싸우거나 도망칠 준비를 하라’고 온몸의 근육과 신경에 비상 명령을 내리는 것이죠.
문제는, 실제 위험이 없는데도 비상벨이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크게 울린다는 점입니다.
늘 비상 대기 상태로 있다 보니, 우리의 몸과 마음은 서서히 지쳐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가 끝나면 녹초가 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쉴 새 없이 불안과 싸우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안전해지려고 썼지만, 더 불안해지는 이유
우리가 불안이라는 안경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더 안전해지고 싶어서입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해서, 상처받거나 실패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안경은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듭니다.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볼수록, 우리는 피해야 할 것들만 찾게 됩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 약속을 피하고,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도전을 망설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세상은 점점 더 좁아집니다. 안전지대라고 믿었던 작은 공간 안에 스스로를 가두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진짜 세상은 그 작은 방 밖에 있습니다. 위험을 피하려다 보니, 우리는 삶의 즐거움과 기쁨, 새로운 가능성까지 함께 피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고립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립감은 불안을 더욱더 크게 키우는 자양분이 됩니다.
아주 잠깐, 안경을 살짝 들어보는 연습
오랫동안 써온 안경을 단번에 벗어 던지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안경 없는 맨눈이 오히려 어색하고 두렵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괜찮습니다. 처음부터 완전히 벗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아주 잠깐, 안경을 코끝으로 살짝 내려 쓰거나, 한쪽 손으로 살짝 들어보는 연습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있는 것을 ‘불안’이라는 필터 없이 잠시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실 때 ‘이 커피를 마시고 속이 쓰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대신, 그저 커피의 따뜻한 온도에 집중해봅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 코끝을 맴도는 향기에만 잠시 머물러보는 겁니다.
10초도 좋고, 5초도 좋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감각을 느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만나는 첫걸음
안경을 살짝 들어 올리는 연습이 익숙해지면, 우리는 세상의 진짜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됩니다.
늘 나를 비난할 거라고 생각했던 동료가, 사실은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매일 걷던 길가에 이렇게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시끄럽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리는 편안한 음악처럼 들릴 수도 있죠.
이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억지 노력과는 다릅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안경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세상은 원래 좋고 나쁨이 뒤섞여 있고, 아름다움과 소음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그저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맨눈으로 세상을 만나는 첫걸음입니다.
안경을 다시 쓰게 되더라도 괜찮아요
분명, 우리도 모르게 다시 안경을 고쳐 쓰는 날이 올 겁니다. 스트레스가 심한 날, 몸이 피곤한 날에는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다시 세상을 흐릿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절대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또 실패했어’, ‘나는 역시 안 되나 봐’라고 자책하는 순간, 우리는 안경을 더 단단히 붙잡게 됩니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해주세요. ‘아, 내가 지금 많이 힘들구나. 그래서 다시 안경이 필요했구나.’
다시 안경을 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입니다. 예전에는 내가 안경을 썼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까요.
알아차렸다는 것은, 언제든 다시 안경을 살짝 들어 올릴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증거입니다. 넘어지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면 그만입니다.
선명해진 세상 속, 작은 빛들을 발견하는 기쁨
불안이라는 안경을 벗는 연습은, 세상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모든 위험을 없애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세상은 원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예측할 수 없기에, 우리는 예상치 못한 기쁨을 만나고 소소한 행운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안경을 벗고 선명해진 세상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곳은 아닐 겁니다. 여전히 그곳에는 슬픔도 있고, 어려움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그 세상에는 불안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수많은 작은 빛들, 따뜻한 순간들, 그리고 사소한 기쁨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 작은 빛들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기쁨이,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할 겁니다.
불안이라는 안경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이 안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필요할 때 잠시 꺼내 썼다가 다시 집어넣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그 안경이 내 얼굴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안경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안경을 쓸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는 작은 힘을 되찾는 것입니다.
이제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느껴보세요. 지금까지는 불안이라는 안경 유리를 통해 굴절된 바람을 느꼈다면, 이제는 맨얼굴로 바람의 결을, 온도를, 그 안에 섞인 풀냄새를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은 당신을 해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불안이라는 안경 너머, 당신의 세상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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