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 멈추는 법

세상 모든 불이 꺼지고 오직 나만 깨어있는 것 같은 깊은 밤. 오늘 하루 애썼던 몸을 뉘이고 이제는 정말 쉬고 싶다는 생각에 눈을 감아보지만, 그때부터 머릿속은 보란 듯이 더 시끄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낮에 동료에게 무심코 뱉었던 말 한마디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처리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생각나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5년 전의 창피한 기억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한 달 뒤의 걱정을 사서 하느라 심장이 쿵쾅거리기도 하죠. 생각을 멈춰야 잠들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애써 다른 생각을 해보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기차는 멈출 줄을 모릅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봐도, 돌아누워봐도 소용없습니다. 내 머릿속 스위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왜 나만 이렇게 피곤한 밤을 보내는 걸까요.

잠들지 못하는 내 머릿속, 사실은 아주 성실한 일꾼이에요

우리는 흔히 잠들기 전 떠오르는 생각들을 불청객처럼 여깁니다. 제발 좀 사라져 달라고,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원망하기도 하죠. 하지만 사실 그 생각들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루 종일 너무나 바빴던 우리를 위해, 우리 뇌가 뒤늦게 남아서 야근을 하고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낮 동안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고,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며 쉴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립니다. 그때 우리 뇌는 당장 눈앞의 일들을 처리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느라, 차마 돌보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쌓아둔 마음의 서류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깜빡 잊었던 약속,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감정, 해결하지 못한 고민거리 같은 것들이죠.

온 세상이 조용해지고, 더 이상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 밤이 되어서야 뇌는 비로소 여유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마치 성실한 직원이 퇴근 전 책상을 정리하듯, 낮 동안 쌓아두었던 서류들을 하나씩 꺼내어 살펴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유독 밤만 되면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은, 내 뇌가 게으르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 역할을 다하려는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랍니다.

시끄러운 생각들에게 잠시 자리를 내어주세요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를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생각과 싸우려 합니다. ‘이런 생각 하면 안 돼’, ‘제발 그만 좀 해’라고 외치며 생각의 목을 조르려고 하죠. 하지만 분홍색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온통 머릿속이 분홍색 코끼리로 가득 차는 것처럼, 생각을 억지로 누르려고 할수록 그 생각은 더 크고 선명하게 우리를 괴롭힙니다.

생각은 물과 같아서, 힘으로 막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거세게 저항하며 틈새를 비집고 터져 나옵니다. 차라리 댐의 수문을 아주 조금 열어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내쫓아야 할 적이 아니라, 잠시 우리 집에 머물다 가는 손님이라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 내일 발표할 걱정이 찾아왔구나’, ‘5년 전 일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었구나’ 하고 생각의 이름을 한 번 불러주고, 잠시 옆자리를 내어주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생각과 싸우기를 멈추고 그저 ‘왔구나’ 하고 알아차려주기만 해도, 생각은 제멋대로 날뛰던 힘을 조금씩 잃기 시작합니다. 마치 시위하던 아이가 엄마가 한번 안아주면 조용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머릿속 서랍을 비우는 가장 간단한 방법

생각이 머릿속에서만 맴돌 때, 우리는 그 크기와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안개처럼 뿌옇게 피어올라 온 마음을 뒤덮는 것 같고,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그 생각들을 머릿속이라는 무한한 공간에서, 눈에 보이는 유한한 공간으로 꺼내놓는 일입니다.

침대 옆에 작은 수첩과 펜 하나를 마련해 두세요. 그리고 잠 못 들게 하는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아주 작은 불만 켠 채로 수첩을 펼쳐보세요. 잘 쓰려고 애쓸 필요도, 순서를 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두서없이 적어 내려가는 겁니다.

‘내일 아침 팀장님께 보고할 자료 정리’, ‘가스 요금 내는 거 잊지 말기’, ‘오늘 친구가 했던 말, 왜 그렇게 서운했을까?’, ‘유튜브에서 봤던 고양이 영상 웃겼는데’ 와 같이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생각들을 글자로 옮겨 적는 행위는, 마치 어수선한 머릿속 서랍을 열어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 정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머릿속에 있을 땐 뒤죽박죽 엉켜 있던 생각들이, 종이 위에 놓이는 순간 훨씬 명확하고 별것 아닌 문제로 보이게 될 때가 많습니다. ‘이건 내일 아침에 생각하면 되는구나’, ‘이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구나’ 하고 구분이 되기 시작하죠. 뇌에게 ‘이제 내가 종이에 옮겨 적어놨으니, 넌 더 이상 기억하고 있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안심의 신호를 보내주는 겁니다.

쿵쾅거리는 마음을 발끝으로 보내는 연습

걱정과 불안은 우리 몸을 바짝 긴장하게 만듭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잔뜩 웅크려지고, 호흡은 얕고 빨라지며,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죠. 이럴 때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생각의 쳇바퀴에서 잠시 내려와, 우리 몸의 감각으로 주의를 돌리는 연습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불을 편안하게 덮고 누운 채로, 눈을 감고 아주 천천히 숨을 쉬어보세요. 그리고 의식을 온통 발끝으로 가져가 봅니다. 지금 내 발가락은 어떤 느낌인가요? 따뜻한가요, 차가운가요? 이불이 닿는 감촉은 어떤가요? 발가락 사이사이에 작은 공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껴보세요.

발끝의 감각이 충분히 느껴졌다면, 이번엔 아주 천천히 발바닥, 발목, 종아리로 의식을 옮겨봅니다. 마치 스캐너가 몸을 훑고 지나가듯, 무릎, 허벅지, 엉덩이, 허리, 배, 가슴으로 차근차근 올라오는 겁니다. 생각이 다시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으로 달려가려고 할 때마다, ‘괜찮아, 지금은 그냥 내 종아리의 느낌에만 집중해보자’ 하고 부드럽게 다시 몸으로 돌아오세요.

이 연습의 목표는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과열된 엔진을 잠시 식혀주듯, 머리에 잔뜩 쏠려있던 에너지를 몸의 다른 부분으로 부드럽게 분산시켜주는 것입니다. 쿵쾅거리던 심장의 에너지가 차분하게 발끝까지 전해지는 상상을 해보세요. 소용돌이치던 마음이 훨씬 더 잔잔하고 평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오늘 하루의 문을 조용히 닫아주는 시간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생각보다 ‘신호’에 익숙합니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들으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회사 건물에 들어서면 일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하루를 마감하고 휴식으로 들어가는 ‘잠’에 대해서는 특별한 신호를 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불을 끄는 것이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죠.

잠자리에 들기 전, 나만의 ‘하루 마감 의식’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이제 나는 오늘을 잘 마무리하고, 편안한 휴식으로 들어갑니다’ 라는 신호를 내 몸과 마음에 보내주는 아주 작은 행동이면 충분합니다. 이 시간만큼은 스마트폰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멀리 두는 것이 좋습니다.

따뜻한 허브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시거나, 좋아하는 향의 핸드크림을 바르며 손을 부드럽게 마사지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가볍게 몸을 스트레칭하거나, 재미없는 책 몇 페이지를 일부러 읽는 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밤 잠들기 전,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며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시간’이라는 명확한 경계선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 작은 의식은 쌩쌩 달리던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오늘 하루라는 집의 문을 조용히 닫고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고요한 밤,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은 나를 괴롭히는 유령이 아닙니다. 하루 동안 미처 돌보지 못했던 내 마음의 목소리이자, 보살핌이 필요한 감정의 조각들입니다. 그 목소리들을 억지로 잠재우려 애쓰기보다, ‘오늘 하루도 정말 애썼구나’ 하고 다정하게 귀 기울여주고, 차분히 종이 위에 내려놓아 주세요.

오늘 밤은 유독 시끄러운 머릿속과 너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폭풍우가 치는 바다 위에서 힘겹게 노를 젓는 대신, 잠시 노를 내려놓고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편안히 몸을 맡겨보세요. 모든 폭풍은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니까요. 괜찮아요, 아침은 반드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