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생겨도 온전히 기뻐할 수 없는 마음

오래 기다렸던 합격 소식이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모두가 축하한다며, 정말 잘됐다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습니다.

입꼬리는 억지로 올라가 있는데, 마음 한구석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기분입니다.

애써 준비했던 발표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팀원들은 당신 덕분이라며 등을 두드려 줍니다.

분명 뿌듯해야 할 순간인데, 어쩐지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합니다.

이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합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참 좋은 사람이라며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넵니다.

고맙다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아니에요, 당신이 저를 잘 몰라서 그래요’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기쁨보다는 당혹감과 불안함이 먼저 밀려옵니다.

햇살 좋은 가을 오후, 모든 것이 평화로운데 문득 불안이 스며듭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곧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좋은 일이 생기면, 그 행복의 크기만큼 반대급부로 불행이 찾아올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처음부터 너무 기뻐하지 않는 쪽을 택해버립니다.

이 마음을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어렵습니다.

좋은 일이 생겼는데 기쁘지 않다는 말을 누가 이해해 줄까요.

그저 배부른 소리 한다며 타박을 듣거나, 유난 떤다는 오해를 살까 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괜찮은 척, 기쁜 척 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웃어 보입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혼자 남은 방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뒤척입니다.

분명 내게 일어난 좋은 일인데, 왜 내 마음은 잔칫날 부엌 구석에 혼자 쭈그려 앉은 아이처럼 외롭고 서러울까요.

왜 나는 나에게 온 행운을 두 팔 벌려 환영해주지 못하는 걸까요.

그 마음, 결코 당신이 이상하거나 못나서가 아닙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마음입니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한 당신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보통 환하게 웃으며 기쁨을 만끽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마치 정해진 공식처럼 말이죠.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수학 공식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좋은 소식 앞에서도 마음의 온도는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은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어떤 마음은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기도 합니다.

또 어떤 마음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미지근한 온도를 띄기도 하죠.

당신이 느끼는 그 서늘함은 잘못된 감정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이 보내는 또 다른 신호일 뿐입니다.

마치 맑은 날에도 그늘이 존재하듯, 기쁜 순간에도 서늘한 감정의 그늘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그늘을 억지로 없애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늘이 있다는 건, 그만큼 밝은 빛이 당신에게 비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그 서늘함은, 갑자기 쏟아진 햇살에 눈이 부셔 잠시 눈을 가늘게 뜬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마음은 익숙한 것을 편안하게 느낍니다.

만약 당신이 오랫동안 걱정과 불안이라는 그늘 아래 머물렀다면,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행복의 햇살이 오히려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낯섦이 바로 당신이 느끼는 서늘함의 정체일 수 있습니다.

‘나는 왜 기뻐하지 못할까?’라며 스스로를 다그치지 마세요.

대신 이렇게 부드럽게 속삭여주는 겁니다.

‘아, 내 마음이 이 새로운 빛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거구나.’

마음에도 시차 적응이 필요합니다.

오랫동안 어두운 밤을 지나왔다면, 갑자기 밝아진 아침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틀린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입니다.

스스로를 탓하는 대신, 그저 ‘지금 내 마음은 서늘하구나’ 하고 알아차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서늘함 속에서 당신은 오히려 더 차분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들뜬 마음에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것일 수도 있죠.

그러니 죄책감을 느끼지 마세요.

기쁨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당신에게 온 행운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당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이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그 서늘함마저도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세요.

마치 서늘한 아침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해주듯, 그 감정이 당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기쁨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손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기쁨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과 같습니다. 딩동, 하고 초인종을 누르죠.

그런데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도 선뜻 문을 열어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혹시 문을 열었는데, 내가 기대했던 손님이 아니면 어떡하지?

혹시 반갑지 않은 다른 손님을 잔뜩 데려왔으면 어떡하지?

혹시 이 손님이 우리 집을 온통 어지럽히고 금방 떠나버리면, 남겨진 뒷정리는 전부 내 몫이 될 텐데.

이런저런 걱정에 사로잡혀, 우리는 문구멍으로 밖을 빼꼼히 들여다볼 뿐입니다.

기쁨이라는 손님은 문밖에서 하염없이 서성이고 있는데 말이죠.

마음의 집이 아직 손님 맞을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은 아직 어둡고 지저분한데, 이렇게 환한 손님을 들여도 될까?’

‘나는 이 귀한 손님을 대접할 만한 자격이 없는데.’

스스로를 부족하고 자격 없는 주인이라 여기며, 우리는 문을 걸어 잠급니다.

하지만 기쁨이라는 손님은 당신의 마음이 완벽하게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이 문을 아주 조금이라도 열어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문을 활짝 열지 못하겠다면, 아주 살짝만 열어보는 건 어떨까요?

‘어서 오세요’라고 환하게 인사하지 못하겠다면, ‘누구세요?’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기쁨은 당신을 평가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잠시 당신 곁에 머물며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고 싶을 뿐입니다.

혹시 예전에 반갑지 않은 손님에게 크게 데인 경험이 있나요?

진심으로 환대해주었더니 무례하게 굴거나, 소중한 것을 망가뜨리고 떠나버린 기억이 있나요?

그 아픈 기억이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두렵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지금 문밖에 서 있는 손님은 과거의 그 손님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손님입니다.

모든 손님이 똑같지 않듯, 모든 기쁨의 모습도 저마다 다릅니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현재의 기쁨을 놓쳐버린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문을 열기가 두렵다면, 그저 문고리를 잡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손끝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껴보는 겁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해보세요.

당신은 이 문을 열지, 열지 않을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인입니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문을 열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손님이 가져온 선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어보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겠죠.

기쁨이라는 손님을 너무 오래 문밖에 세워두지 마세요.

혹시 이 행복이 날아갈까 봐

우리는 손에 쥔 모래알처럼, 행복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처음부터 손을 꽉 쥐지 않으려고 합니다.

행복을 꽉 쥐었다가 놓쳐버렸을 때의 상실감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을 때의 허전함보다 훨씬 더 크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막과 같습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어.’

‘너무 좋아하지 않으면, 잃어버려도 많이 슬프지 않을 거야.’

마음속으로 이런 주문을 되뇌며, 다가오는 행복과 일부러 거리를 둡니다.

마치 아름다운 비눗방울을 보는 아이처럼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을 알기에, 만지기보다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합니다.

하지만 비눗방울은 언젠가 터지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영원히 공중에 떠 있는 비눗방울은 더 이상 비눗방울이 아닐 겁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은 영원히 지속되는 상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왔다가 가고, 피었다가 지는 꽃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꽃이 언젠가 시들 것을 알기에, 그 아름다움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들 것을 알기에, 지금 피어있는 순간의 향기와 색깔을 더 깊이 음미하려 노력합니다.

행복이 날아갈까 봐 두려운 마음은, 그만큼 지금의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마음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두려움이 현재의 행복을 즐기는 것마저 방해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행복을 잃을까 봐 불안해하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슬픔을 현재로 미리 당겨와 겪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의 기쁨을 누릴 권리를 스스로 빼앗는 셈이죠.

마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이걸 다 먹고 나면 배가 꺼질 텐데’라는 걱정 때문에 한 입도 베어 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음식은 먹기 위해 존재하고, 행복은 느끼기 위해 존재합니다.

언젠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지금 내 앞에 있다는 사실에 집중해 보세요.

‘아, 지금 내 앞에 행복이 있구나.’

‘지금 나는 이 행복을 마음껏 맛볼 수 있구나.’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미래의 불안 대신,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입니다.

새로 산 옷이 닳을까 봐 옷장에만 고이 모셔두면, 그 옷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합니다.

닳고 해질지언정, 그 옷을 입고 나섰을 때의 설렘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그 옷의 진짜 가치를 찾는 길입니다.

당신에게 찾아온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라질까 봐 마음속 깊은 곳에만 가둬두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 마음껏 느끼고 표현하고 즐겨야 합니다.

그렇게 현재의 행복을 충만하게 느끼는 경험들이 쌓일 때, 우리의 마음에는 새로운 믿음이 자랍니다.

‘행복은 사라져도, 또다시 나를 찾아올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그 믿음이야말로,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튼튼한 방패가 되어줄 것입니다.

행복에도 자격이 필요하다고 믿는 마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착한 일을 해야 선물을 받는다’,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대학에 간다’는 식의 조건부 보상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우리도 모르게 마음속에 하나의 단단한 믿음이 자리 잡게 됩니다.

‘나는 무언가 특별한 자격을 갖춰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서 막상 행복이 문을 두드렸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과연 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나?’

‘나는 이만한 성공을 거둘 만큼 대단한 사람인가?’

‘나는 이토록 좋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나?’

마치 행복 자격 심사관이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를 엄격한 잣대로 심판하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격 미달’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맙니다.

‘나는 아직 부족해.’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야.’

이러한 ‘자격 미달’의 느낌은 행복이라는 선물을 온전히 받아들지 못하게 만듭니다.

선물을 받고도 마음 한편이 불편하고, 마치 훔친 물건을 들고 있는 것처럼 좌불안석이 됩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세요. 길가에 핀 꽃이 피어날 자격을 스스로에게 묻던가요?

맑게 갠 하늘의 햇살이 세상을 비출 자격이 필요하던가요?

꽃은 그저 피어나고, 햇살은 그저 비출 뿐입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은 우리가 어떤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주어지는 상이나 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우리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입니다.

당신은 무언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행복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완벽한 사람이기 때문에 칭찬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당신 자신조차도 그 자격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자격 미달’ 판정을 내리는 것을 이제 멈추세요.

당신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이미 ‘최종 합격’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이미 행복할 자격을 부여받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자격이 있나?’라고 묻는 대신, 이렇게 한번 속삭여 보세요.

‘이 행복은 온전히 나의 것이구나.’

‘나는 이 기쁨을 온전히 누려도 괜찮구나.’

처음에는 어색하고 입에 잘 붙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꾸 되뇌다 보면, 이 새로운 믿음이 당신의 마음속에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겁니다.

행복에는 그 어떤 자격증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자격증입니다.

낯선 감정 앞에서 멈춰 서는 연습

혹시 당신은 오랫동안 슬픔, 불안, 걱정, 무기력함과 같은 감정들과 더 친하게 지내오지 않았나요?

이런 감정들은 분명 불편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함께해서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이런 감정들이 찾아오는지, 이 감정들이 찾아오면 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쁨, 설렘, 평온함, 만족감과 같은 감정들은 어떤가요?

마치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먼 친척처럼,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나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지는 않나요?

우리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을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비록 그것이 고통스러운 감정일지라도, 익숙한 감정의 영역 안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행복이나 기쁨과 같은 낯선 감정이 찾아오면, 마음은 경고 신호를 보냅니다.

‘어, 이건 뭐지? 평소와 다른데? 혹시 위험한 거 아냐?’

이것은 마치 평생 어두운 동굴 속에서만 살던 사람이 갑자기 밝은 햇빛 아래로 나왔을 때와 같습니다.

눈이 부시고 어지러워, 자기도 모르게 다시 어두운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죠.

당신이 기쁨 앞에서 멈칫하고 주저하는 것은, 당신이 나약하거나 이상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이 낯선 환경에 놀라 잠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럴 때는 마음을 다그치지 말고, 부드럽게 안심시켜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괜찮아, 놀라지 마. 이건 위험한 게 아니야. 그냥 조금 낯설 뿐이야.’

마치 낯선 강아지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냄새를 맡게 하듯, 낯선 감정에게도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겁니다.

‘아, 이게 기쁨이라는 감정이구나.’

‘심장이 이렇게 뛰고,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구나.’

‘세상이 평소보다 조금 더 다정하게 느껴지는구나.’

그 감정을 분석하거나 평가하려 하지 마세요. 그저 어린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탐색하듯,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해 보세요.

낯선 감정과 천천히 친해지는 연습입니다.

처음에는 서먹하고 어색하겠지만, 자꾸 만나고 겪다 보면 어느새 그 감정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됩니다.

불안이나 슬픔처럼, 기쁨과 행복도 내 마음의 집에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익숙한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낯섦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잠시 멈춰 서서 그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봐 줄 용기, 그것 하나뿐입니다.

마음의 궂은 날씨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우리 마음에도 날씨가 있습니다.

어떤 날은 햇살이 눈부시게 화창하고, 어떤 날은 구름이 잔뜩 끼고, 또 어떤 날은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합니다.

만약 당신이 오랫동안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의 연속을 겪었다면 어떨까요?

아마 당신의 마음은 외출할 때마다 항상 우산을 챙기고, 젖어도 괜찮은 어두운 색의 옷을 입는 것에 익숙해졌을 겁니다.

비 오는 날의 축축함과 으슬으슬한 기운이 어느새 당신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러다 문득 해가 쨍하고 나타나면, 오히려 당황하게 됩니다.

‘갑자기 날씨가 왜 이렇지? 눈부셔서 적응이 안 되네.’

‘우산은 괜히 들고 나왔나? 좀 더 밝은 옷을 입고 나올 걸 그랬나?’

화창한 날씨를 즐기기보다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이 더 커집니다.

심지어는 ‘이러다 또 금방 비가 오겠지’라며, 맑게 갠 하늘 저편에서 먹구름을 찾으려고 애쓰기까지 합니다.

좋은 일이 생겨도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이와 참 비슷합니다.

오랫동안 걱정, 실패, 좌절과 같은 마음의 궂은 날씨를 겪어온 사람에게, 성공이나 칭찬, 행운과 같은 ‘화창한 날’은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마음이 이미 ‘궂은 날씨 모드’에 완전히 적응해버렸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라는 눈부신 햇살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햇살 아래에서는 우산을 접어도 되고, 두꺼운 외투를 벗어도 되는데 말이죠.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비 올 때의 차림 그대로 뻣뻣하게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궂은 날씨를 견뎌내기 위해, 당신의 마음이 최선을 다해 적응한 결과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동안의 궂은 날씨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겨주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날씨에 적응하는 연습을 조금씩 시작해 보면 됩니다.

갑자기 우산을 버리고 옷을 전부 갈아입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햇살이 비치는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얼굴에 와 닿는 햇살의 따스함을 가만히 느껴보는 거죠.

‘아, 따뜻하구나.’ ‘조금 눈이 부시네.’

그저 그 감각 자체에만 집중해 보세요. ‘이 햇살이 언제까지 갈까?’, ‘또 비가 오면 어떡하지?’ 와 같은 생각은 잠시 옆으로 밀어두고요.

그런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화창한 날씨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궂은 날씨가 오면 그에 맞게 대처하고, 화창한 날이 오면 그 햇살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유연함이 생깁니다.

당신의 마음속 날씨가 영원히 궂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 하늘에 해가 떴다면, 아주 잠시라도 그 햇살을 느껴볼 용기를 내어보세요.

아주 작은 기쁨부터 안아주는 연습

우리는 ‘행복’이라고 하면 아주 거창하고 특별한 것만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꿈에 그리던 집을 사거나, 모두가 부러워하는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이런 큰 행복이 아니면, 행복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쉽게 지나쳐 버립니다.

하지만 근육을 키우기 위해 처음부터 무거운 역기를 들 수 없듯이, 행복을 느끼는 마음의 근육도 아주 가벼운 것부터 들어 올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마음의 행복 근육이 약해져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근육이 굳어버리는 것처럼, 기쁨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진 것이죠.

이 근육을 다시 말랑말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기쁨부터 의식적으로 발견하고 안아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며 ‘아, 좋다’ 하고 느껴보는 겁니다.

점심시간에 기대했던 메뉴가 맛있었을 때, 그 맛을 음미하며 ‘음, 맛있네’ 하고 속으로 말해보는 겁니다.

퇴근길에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그 순간의 반가움을 충분히 즐기는 겁니다.

길가에 핀 작은 들꽃의 예쁨,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마침 켜진 초록불, 누군가 무심코 건넨 작은 친절.

이런 것들은 너무나 사소해서 그냥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의식적으로 발견하고 느껴주려고 노력하면 분명한 기쁨의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뭐라고 기뻐해’ 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마세요.

작은 기쁨을 기쁨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큰 기쁨이 왔을 때도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작은 촛불 하나를 켤 수 있는 사람이, 나중에 큰 모닥불도 피울 수 있는 법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일상 속에 숨어있는 작은 기쁨들을 한번 찾아보세요.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이 말이죠.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을 때, 마음속으로 그것을 꼭 안아주세요.

‘고마워, 내게 와줘서.’

이 연습은 돈이 들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무뎌졌던 당신의 행복 센서가 다시 예민하게 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렇게 작은 기쁨들을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마음은 제법 큰 행복이 찾아왔을 때도 그것을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튼튼해져 있을 것입니다.

괜찮아, 불안해도 괜찮아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불안은 함께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요.

그래서 기쁨을 느끼는 순간에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이러면 안 되는데’ 라며 그 불안을 억지로 억누르려고 합니다.

불안을 완전히 없애야만 순도 100%의 완벽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기쁜 순간에도 얼마든지 불안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순간에도 두려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의 작용입니다.

특히 중요한 성공을 거두었거나, 큰 행운이 찾아왔을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해야 할 텐데’ 라는 부담감.

‘이 행운을 지키지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실망시킬 텐데’ 라는 두려움.

기쁨이 클수록, 그 이면에 있는 책임감과 부담감의 그림자도 함께 짙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기쁜 순간에 불안이 찾아온다고 해서, 스스로를 ‘프로불편러’나 ‘행복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으로 낙인찍지 마세요.

그 불안은 당신이 지금의 상황을 얼마나 진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일 뿐입니다.

그만큼 당신이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불안을 억지로 없애려고 싸우지 마세요. 싸우려고 할수록 불안은 더 크고 무서운 괴물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대신, 불안의 존재를 그냥 인정해주세요.

마치 기쁨이라는 손님과 함께 예고 없이 찾아온, 조금은 껄끄러운 친구처럼 말이죠.

‘아, 불안이 너도 같이 왔구나. 그래, 저기 옆자리에 잠시 앉아 있어.’

불안을 내쫓으려 하지 않고, 그저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을 허락해 주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불안과 싸우기를 멈추고 그 존재를 인정해 주는 순간, 불안은 점차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나를 없애려고 하지 않는구나’ 라는 안도감에, 오히려 얌전해지고 작아지는 것이죠.

기쁨과 불안은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그림자처럼 말이죠.

불안하다고 해서 당신의 기쁨이 가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불안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 나는 지금 기쁘면서 동시에 불안하구나.’

이 두 가지 감정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으면서 현재의 기쁨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내 마음의 온도를 1도 올리는 시간

꽁꽁 얼어붙은 손을 녹이기 위해 우리는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쥡니다.

찻잔의 온기가 손으로 서서히 전해지면서, 굳어있던 손가락이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죠.

좋은 일이 생겨도 서늘하기만 한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뜨거운 불을 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찻잔을 감싸 쥐듯, 내 마음의 온도를 아주 조금씩, 1도씩만 올려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의 온도를 1도 올릴 수 있을까요?

아주 거창하고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온도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거나, 포근한 담요를 덮고 잠시 누워있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좋아하는 향의 차를 한 잔 우려내어, 그 김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시는 것도 좋습니다.

햇살 좋은 날, 잠시 밖으로 나가 따스한 햇볕을 쬐는 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이런 행동들은 그 자체로도 몸의 긴장을 풀어주지만,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나는 따뜻함을 누릴 자격이 있어’ 라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차가움과 긴장에 익숙했던 내 몸과 마음에, 따뜻함과 이완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럴 수 있지’ 라고 말해주는 사람.

나의 성공을 시기하거나 부담을 주는 대신, 그저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고 진심으로 안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의 따뜻한 목소리와 눈빛은, 그 어떤 난로보다도 더 강력하게 우리의 마음을 덥혀줍니다.

만약 당장 그런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면,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나를 즐겁게 하고, 위로해 주는 것들과의 연결을 통해, 우리는 굳어있던 마음을 조금씩 녹일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기뻐해야 해!’ 라며 스스로를 조급하게 몰아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듯,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데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좋습니다. 의식적으로 내 마음의 온도를 1도 올리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렇게 매일 조금씩 쌓인 온기는, 어느새 당신의 마음 전체를 훈훈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따뜻해진 마음은, 자연스럽게 기쁨이라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은 파랑새가 아니라 곁에 있는 작은 숨결

우리는 종종 행복을 저 멀리 있는 파랑새처럼 생각합니다.

언젠가 반드시 잡아야 할 신비롭고 특별한 존재.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은 하찮게 여기고, 오직 그 파랑새만을 쫓아 숨 가쁘게 달려갑니다.

하지만 많은 동화가 그렇듯, 파랑새는 결국 아주 가까운 곳, 바로 우리 집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은 미래의 어느 날, 내가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지금, 여기에, 우리 곁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속에 행복이 숨 쉬고 있습니다.

아침에 건강하게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있다는 것, 지친 몸을 누일 집이 있다는 것.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쁨, 맑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는 감사함.

이런 것들은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서,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잊고 살아갑니다.

좋은 일이 생겨도 온전히 기뻐할 수 없는 마음의 뿌리에는, 어쩌면 ‘이 정도로는 부족해’ 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건 내가 꿈꾸던 완벽한 행복이 아니야.’

‘더 큰 성공, 더 대단한 인정이 필요해.’

더 멀리 있는 파랑새를 쫓느라, 이미 내 어깨 위에 앉아 노래하고 있는 작은 새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 있습니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환희뿐만 아니라, 정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과정 속의 땀방울과 숨결에도 행복이 깃들어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눈부신 결과물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면,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당신이 쏟아부었던 시간과 노력을 가만히 떠올려 보세요.

밤을 새워 고민했던 순간들, 포기하고 싶었지만 다시 일어섰던 용기, 함께했던 동료들과의 작은 웃음들.

그 모든 과정이 바로 당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의 조각들입니다.

결과는 그저 그 과정들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점일 뿐입니다.

결과 앞에서 온전히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이미 당신은 그 결과를 만들어오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행복을 경험했을 테니까요.

이제부터 행복의 기준을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요?

저 멀리 날아가는 파랑새에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작은 숨결로.

거창한 성공에서,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나 자신에 대한 대견함으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잠시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어 보세요.

들숨과 날숨 사이, 그 고요한 순간에 집중해 보세요.

살아있다는 감각,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그 느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근원적이고도 소중한 행복일지 모릅니다.

당신은 이미 행복합니다. 이미 충분합니다. 그 사실을 부디 잊지 마세요.


기쁨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마음, 애써 웃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을 당신의 시간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괜찮습니다. 그 모든 감정은 당신이 그동안 얼마나 애쓰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니까요.

이제는 완벽하게 기뻐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기쁨 옆에 불안이 나란히 앉아 있어도 괜찮고, 행복의 햇살이 낯설어 잠시 눈을 찡그려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모든 감정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행복은 텅 빈 잔을 한 번에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비어있는 잔에 아주 작은 물방울 하나를 떨어뜨리는 것.

오늘, 당신의 작은 숨결을 가만히 느껴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 행복과 따뜻하게 손잡는 첫걸음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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