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출근길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운 날이 있습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어색하고, 회사 건물 입구에서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이 터져 나올 때가 있죠.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문을 통과하며, 마치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 되러 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사무실 문을 열기 전, 아주 잠깐이지만 ‘오늘 하루도 제발 무사히’ 하고 작은 기도를 하게 되는 그런 날 말이에요.
자리에 앉아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는 그 짧은 순간, 머릿속은 벌써 오늘 마주칠 사람들과의 관계를 미리 그려보느라 복잡합니다. 어제 나에게 쌀쌀맞게 굴었던 그 사람에게 오늘은 어떤 표정으로 인사를 해야 할까. 누군가의 가시 돋친 농담을 또 어떻게 받아쳐야 상처받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넘길 수 있을까. 변덕스러운 팀장의 기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내 마음을 얼마나 더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할까.
애써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무심한 표정으로 모니터만 바라보지만 귓가에는 온갖 소리가 파편처럼 부딪힙니다. 나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소곤거림. 칭찬인지 비난인지 헷갈리는 묘한 말투로 던지는 한 마디. 업무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참견과 거절하기 애매한 무례한 부탁들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내려앉고, 얼굴은 괜찮은 척 웃고 있지만 속에서는 차가운 불길이 일렁입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도 그 감정의 잔상들은 쉬이 사라지지 않죠.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을 영화처럼 몇 번이고 되감기하며,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왜 나는 바보같이 가만히 있었을까’ 끝없는 후회와 자책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뒤척입니다.
마치 내 마음이 모두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내는 쓰레기통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 내 감정은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모든 사람의 감정을 살피고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지, 끝 모를 억울함에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만약 이 모든 이야기가 마치 내 일기장을 훔쳐본 것처럼 느껴진다면, 오늘 이 글은 바로 그런 당신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내 마음에도 굳은살이 필요해요
손으로 궂은일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굳은살이 박여서 웬만한 상처에는 끄떡없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도 그런 보호막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관계의 자갈밭에서 더 이상 맨발로 아파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 말입니다.
마음의 굳은살이란, 모든 감정을 차단하는 두껍고 차가운 갑옷이 아닙니다. 그런 갑옷은 외부의 상처뿐만 아니라, 기쁨이나 행복 같은 긍정적인 감정까지 막아버려 나를 고립시킬 뿐입니다.
오히려 마음의 굳은살은 작은 생채기에 일일이 피 흘리지 않고, 정말 중요한 일에 내 마음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드러운 쿠션과 같습니다. 날카로운 말이 날아올 때, 그것이 심장에 박히기 전에 부드럽게 튕겨내 주는 탄성 좋은 보호막 같은 것이죠.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온종일 마음이 쓰이고,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밤잠을 설치던 날들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의 표정 하나, 말투의 미세한 떨림 하나에 온갖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결국 ‘내 탓이구나’ 하고 결론 내리지는 않았나요?
마치 맨살로 거칠고 뾰족한 자갈밭을 걷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감정과 말이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럽게 느껴졌을 겁니다. 이제는 그만 아파해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유별나게 예민해서도, 남들보다 약해서도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이 너무 부드럽고 따뜻해서, 다른 사람의 차가움을 더 깊고 아프게 느꼈을 뿐입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읽는다는 것은 훌륭한 재능이지만, 그 재능이 나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굳은살을 만든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이 되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문제 때문에 내 소중한 하루와 감정을 망치지 않겠다는, 나 자신을 향한 가장 다정한 약속입니다.
어떤 말이 스쳐 지나갈 때, 예전처럼 그 말을 붙잡고 깊숙이 파고들게 두지 마세요. 그냥 ‘아,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스쳐 가게 두는 연습입니다. 그 말이 나를 향해 정교하게 조준된 칼날이 아니라, 그저 허공에 떠도는 의미 없는 소리의 파동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물론 처음에는 잘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맨살로 모든 것을 예민하게 느껴왔기 때문에, 아주 작은 자극에도 깜짝 놀라고 움츠러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하루에 한 번, 딱 한 번만이라도 의식적으로 시도해보세요. 나를 아프게 한 말을 곱씹는 대신, ‘이건 그 사람의 감정이고, 그 사람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야’ 하고 속으로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겁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나를 지키는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가장 연하고 상처받기 쉬운 부분에 아주 얇고 투명한 막이 생기기 시작할 거예요. 이 굳은살은 당신을 둔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을 더 현명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고 눈치를 보느라 썼던 그 막대한 에너지를, 이제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게 됩니다. 나의 진짜 감정은 무엇인지, 내가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를 진심으로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더 깊이 귀 기울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이제부터는 나를 지키는 연습을 시작해봐요. 조금 서툴러도 괜찮고, 어제는 성공했는데 오늘은 또 실패하는 것 같아도 괜찮습니다. 나를 지키려는 그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첫걸음이니까요. 당신의 마음은 상처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세요.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일 뿐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행동을 마주했을 때, 그 이유를 나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나한테만 저렇게 차갑게 말할까?’, ‘내가 그때 그 말을 해서 기분이 상했나?’, ‘내 보고서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 하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검열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조금만 더 넓게 보면, 우리가 가진 상식과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은 당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거울일 뿐이에요.
비가 오는 날, 내가 우산 없이 길을 나섰다가 흠뻑 비를 맞는 것은 내가 비를 오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죠. 그저 그날의 날씨가 ‘비가 오는 날씨’였을 뿐입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습관적으로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은 당신에게 상처받을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법밖에 배우지 못한 사람일 뿐이에요.
그의 말과 행동을 내 마음의 필터로 하나하나 거르며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마세요. 그 노력은 결국 당신만 지치게 만듭니다. 그의 언어는 당신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내면에 쌓인 불안, 결핍, 질투, 열등감을 드러내는 방식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마치 겁을 먹으면 온몸의 가시를 잔뜩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다른 사람을 찌르고 공격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연약함을 방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가시에 찔렸다고 해서 ‘내가 고슴도치를 화나게 했어!’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슴도치는 원래 그렇게 자신을 방어하는 동물일 뿐이니까요.
그 사람의 날카로운 말을 내 마음에 오랫동안 담아두는 것은, 길에 떨어진 뾰족하고 더러운 돌멩이를 굳이 내 주머니에 소중히 넣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돌멩이는 나를 계속 찌르고 불편하게 만들 뿐,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아, 저기 돌멩이가 있네’ 하고 인지하고, 굳이 줍지 않고 지나치면 그만입니다.
‘그 사람은 원래 저런 방식으로 말하는구나’, ‘저 사람의 세상은 저런 모습이구나’ 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마치 다큐멘터리 속 동물을 관찰하듯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무례함을 용서하거나 이해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그 사람의 문제와 나의 문제를 명확하게 분리해서, 더 이상 그의 미성숙한 문제에 내 소중한 감정 에너지를 단 1그램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입니다.
당신은 그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줄 의무가 없습니다. 그가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굳이 다 받아주고 정화시켜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 그렇군요’ 하고 영혼 없이 무심하게 반응하거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조용히 그 자리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응입니다.
당신의 소중한 에너지는 훨씬 더 가치 있고 생산적인 곳에 쓰여야 합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나를 성장시키는 일,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따뜻한 시간에 아낌없이 사용하세요.
그 사람을 바꾸려고 애쓰는 것은 가장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사람은 정말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사람의 행동에 반응하는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것만이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오늘도, 내일도, 아마 1년 뒤에도 비슷한 모습일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의 행동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강물처럼 흘려보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그 힘이 당신을 불필요한 상처와 감정 소모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연습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바로 ‘거리두기’입니다. 너무 멀어지면 외롭고 고립되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상처를 주게 되죠. 특히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직장에서는 이 ‘심리적 거리’를 능숙하게 조절하는 것이 내 마음을 지키는 핵심 기술이 됩니다.
마음속에 나만의 ‘보이지 않는 선’을 하나 그어보는 겁니다. 이 선은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배척하는 차가운 벽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가 나의 소중한 공간입니다’라고 알려주는 부드럽고 유연한 울타리입니다.
누군가 이 선을 함부로 넘어와 나의 감정이나 사생활, 가치관을 함부로 휘저으려고 할 때,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알려주는 신호 같은 것이죠. ‘더 이상은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하고요.
예를 들어, 원치 않는 사적인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주말에 뭘 했는지, 애인은 있는지, 집은 어디인지 등. 예전 같았으면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당황하면서도 꾸역꾸역 대답하며 불편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 그건 좀 개인적인 이야기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네요. 하하.’ 하고 웃으며 부드럽게 선을 그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무례하거나 쌀쌀맞은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존중하는 가장 건강하고 성숙한 태도입니다.
또는 누군가 자신의 힘든 감정이나 불평불만을 당신에게 끝도 없이 쏟아낼 때가 있습니다. 당신의 공감 능력을 알고 찾아온 것이겠지만, 모든 것을 다 들어주고 공감해주다 보면 어느새 나의 에너지는 완전히 바닥나고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에 전염되어 버립니다.
이럴 때 ‘지금 많이 힘드시군요. 제가 들어드리고 싶지만,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업무가 있어서요. 이따가 잠시 이야기할까요?’ 라고 정중하게 상황을 마무리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에너지를 보호하고 내 업무를 책임지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입니다.
이 선을 긋는 연습은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혹시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나를 이기적이고 정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건강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당신의 선을 존중해 줄 겁니다. 오히려 자신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지킬 줄 아는 사람을 더 신뢰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정중하게 그은 선에 대고 불쾌해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차피 당신의 삶에 없어도 될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나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선은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거리에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합니다. 옆자리 동료의 불안이나 우울에 너무 깊이 동화되지 않도록 하세요. 그의 감정은 그의 것이고, 나의 감정은 나의 것입니다. 둘은 별개입니다.
마음속으로 ‘이건 저 사람의 감정이지, 내 감정이 아니야’ 하고 분리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는 겁니다. 공감은 하되, 그 감정의 늪에 함께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 무작정 함께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뭍에서 튜브를 던져주는 것처럼요. 함께 빠져버리면 누구도 구할 수 없습니다.
이 선은 하루아침에 튼튼하고 견고하게 세워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람마다 상황마다 나에게 맞는 적절한 거리를 찾아가는 길고 섬세한 과정입니다. 오늘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세요. 내일 다시 그어보면 됩니다. 나를 지키려는 이 작은 연습들이 매일 쌓이고 쌓여, 당신의 마음을 어떤 외부의 침범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성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마음의 창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요
당신의 마음을 하나의 집이라고 상상해보세요. 그 집에는 세상을 향해 나 있는 여러 개의 창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창문을 활짝 열어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함께 나누고 싶을 거예요. 내 집의 가장 아늑한 공간까지 보여주고 싶을 만큼 신뢰가 가는 사람이죠.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틈만 열어두는 것이, 혹은 커튼을 단단히 쳐두는 것이 나를 위해 더 현명하고 안전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직장 동료는 가족이나 수십 년을 함께한 친구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업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만난 관계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중에는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여 평생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작부터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힐 필요는 없습니다.
지나치게 솔직하게 나의 약점이나 가정사, 경제적인 어려움 같은 개인사를 털어놓는 것은, 때로는 내가 던진 부메랑이 되어 날아와 뒤통수를 치는 화살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순수한 선의와 솔직함이 상대방에게는 이용하기 좋은 약점으로 비칠 수 있고, 불필요한 오해나 뒷말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착하고 솔직하며 모든 것을 터놓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을 조금만 내려놓아 보세요. 약간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사람, 적당히 거리를 두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오히려 나를 보호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해도 괜찮을까?’ 하고 입을 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겁니다. 특히 나의 약점이나 단점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이 때로는 상대방에게 ‘나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나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를 굳이 모두에게 설명하고 이해받으려 애쓰지 마세요. 오늘 기분이 좋지 않다면, 그냥 조금 조용히, 말수를 줄이고 지내면 됩니다. 누군가 왜 그러냐고 굳이 물어보면 ‘그냥 조금 피곤해서요’ 혹은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하고 가볍게 넘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내 마음의 모든 날씨를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생중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의 창문을 조절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불신하고 의심하며 높은 벽을 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의 소중하고 연약한 내면을 스스로 보호하고, 관계의 깊이와 거리를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조절하겠다는 성숙한 다짐입니다.
이 사람과는 업무 이야기만 하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 저 사람과는 가벼운 일상 이야기 정도는 나눌 수 있겠다, 또 다른 이에게는 내 고민을 조금은 털어놓아도 되겠다. 이런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죠.
우리의 마음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마치 스마트폰 배터리처럼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에너지와 진심을 쏟다 보면 정말 소중한 관계에 써야 할 에너지가 방전되어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내가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소수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주세요. 그곳에서 위로받고 에너지를 충전하세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관계에서는, 창문을 아주 조금만, 환기가 될 정도로만 열어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적당한 햇살과 바람만으로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의 가장 깊고 부드러운 속마음은,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보여주세요. 그것이 나를 지키고, 결국에는 더 건강하고 깊이 있는 관계를 오랫동안 만들어가는 현명한 방법입니다.
칭찬도 비난도 3초만 담아두기
우리의 기분은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의 평가에 좌우됩니다. 칭찬 한마디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가도, 비난이나 지적 한마디에 땅 끝까지 꺼지는 것 같은 깊은 좌절감을 느끼죠. 마치 내 기분의 조종 리모컨을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넘겨준 것처럼 말이에요.
이제 그 주도권을 다시 나에게로 단호하게 가져올 시간입니다.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비난을 내 마음에 3초 이상 머물게 하지 않는 ‘3초 룰’을 연습해 보는 겁니다.
누군가 당신의 일 처리나 성과를 칭찬할 때, 물론 기분 좋게 받아들이세요.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힘이 나네요’ 하고 미소 지으면 됩니다. 하지만 그 칭찬에 너무 도취되어 ‘나는 역시 대단해’, 혹은 ‘나는 칭찬받아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에 깊이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칭찬은 그 순간의 달콤한 사탕과 같습니다. 맛있게 즐기되, 그것이 나의 주식이 되게 해서는 안 돼요. 칭찬에 중독되면, 다음 칭찬을 받기 위해 내 소신과 상관없는 행동을 하게 되고, 칭찬이 없을 때 극심한 불안감과 무가치함을 느끼게 됩니다. 칭찬은 감사히 받되, 3초 뒤에는 가볍게 흘려보내고 다시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누군가 당신을 비난하거나 날카롭게 지적할 때, 순간적으로 기분이 상하고 마음이 아픈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 감정 자체를 억누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루 종일, 혹은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되새김질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세요.
그 비난 역시 3초만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훌훌 털어버리는 겁니다. 마치 옷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툭툭 털어내는 것처럼 아주 가볍고 무심하게 말이죠.
그 비난 속에 혹시 내가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유용한 정보나 피드백이 있다면, 그 정보만 쏙 빼내고 나머지 감정적인 껍데기는 미련 없이 버리면 됩니다.
예를 들어 ‘이 보고서는 오타도 너무 많고 논점도 불분명하네요. 완전 엉망이에요’ 라는 감정이 섞인 지적을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고 일도 못 할까’ 라는 자책감과 모욕감이라는 감정의 쓰레기는 즉시 버려야 합니다. 대신 ‘아, 다음부터는 제출 전에 오타를 여러 번 확인하고, 두괄식으로 핵심 논점을 먼저 제시해야겠다’ 라는 유용한 정보만 쏙 빼내어 내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그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 가치관, 그날의 기분이 뒤섞인 복합적인 산물일 뿐, 당신이라는 사람의 가치를 완벽하게 정의하는 절대적인 진리가 결코 아닙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거울이 있고, 각각의 거울은 제멋대로의 모습으로 당신을 비춥니다. 어떤 거울은 당신을 실제보다 뚱뚱하게 비추고, 어떤 거울은 홀쭉하게, 어떤 거울은 우스꽝스럽게 찌그러진 모습으로 비출 거예요. 그 모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다 진짜 나라고 믿을 건가요? 아니죠.
우리에게는 나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비추는 나만의 거울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확신’과 ‘자기 존중감’이라는 가장 깨끗하고 왜곡 없는 거울입니다. 이 거울을 매일 닦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비난은 그저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 정도로 여기세요. 시원한 바람이 불면 ‘아, 시원하다’ 하고 잠시 즐기고, 차가운 바람이 불면 ‘아, 춥네’ 하고 옷깃을 여미면 그만입니다. 그 바람의 방향에 따라 내 인생이라는 배의 항로를 바꿀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온전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칭찬받지 않아도, 때로는 비난받아도, 그 존재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되새겨주세요. 그러면 칭찬에도 쉽게 우쭐해지지 않고, 비난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의 중심을 갖게 될 거예요. 그 중심이 당신을 어떤 평가의 파도에도 휩쓸리지 않는 든든한 등대처럼 굳건히 지켜줄 것입니다.
나를 위한 작은 대피소 만들기
하루 종일 팽팽한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일하다 보면, 잠시라도 모든 것을 잊고 숨을 돌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절실해집니다. 회사 안에 물리적인 ‘나만의 방’을 가질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한 ‘심리적 대피소’를 마음 한편에 미리 마련해두는 겁니다.
업무에 압도당하거나,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 언제든 달려가 잠시 쉴 수 있는 그런 비밀스러운 아지트 말이에요. 이 대피소는 결코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 가장 강력한 대피소가 됩니다.
예를 들어,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 몰려올 때 잠시 자리를 피할 수 있는 ‘물리적 대피소’가 있습니다. 붐비는 사무실을 벗어나 조용한 비상계단에 잠시 서서 창밖을 보는 것, 화장실 칸에 들어가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3분, 탕비실에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1분. 이 짧은 공간적, 시간적 분리가 감정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감각적 대피소’를 만들어 볼 수도 있습니다. 아주 부드러운 손수건이나 작은 인형, 매끈한 조약돌처럼 만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을 서랍에 넣어두고 힘들 때마다 몰래 만져보는 겁니다. 좋아하는 향의 핸드크림을 바르며 향기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각, 촉각, 후각 등 감각을 이용해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끊고 현재로 돌아오는 훈련입니다.
복잡한 상황에 압도될 것 같을 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가보세요. 따뜻한 허브티 한 잔을 천천히 내리면서, 컵에서 올라오는 온기와 향기, 찻물의 색깔에만 온전히 집중해 보는 겁니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은 5분 뒤에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오직 이 순간의 감각에만 머물러 보세요. 이것은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파도를 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가장 ‘전략적인 휴식’입니다.
점심시간에는 억지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소진하기보다, 가끔은 의식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훌륭한 대피소가 됩니다. 회사 근처의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햇볕을 쬐거나, 조용한 카페 구석에서 좋아하는 책을 몇 페이지 읽는 시간은 오후의 에너지를 완전히 새롭게 충전해 주는 귀한 보약이 될 수 있습니다.
컴퓨터 바탕화면이나 스마트폰 배경화면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진으로 바꿔보는 것도 효과적인 시각적 대피소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반려동물의 웃는 얼굴, 평화로운 여행지의 풍경, 드넓은 밤하늘의 사진은 모니터를 켤 때마다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는 작은 위로가 됩니다.
퇴근 후의 시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온전히 나를 위한 대피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회사에서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을 굳이 집까지 가방에 담아와 곱씹지 마세요. 현관문을 닫는 순간, 회사에서의 나는 잠시 스위치를 끄는 겁니다. 옷을 갈아입는 행위를 통해 ‘직장인 모드’에서 ‘나 자신 모드’로 전환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도 좋습니다.
이 작은 대피소들은 스트레스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올 때, 당신이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가지 않도록 든든하게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작은 섬이 되어 줄 겁니다. 힘들 때마다 이 섬으로 잠시 피해서 숨을 고르고 재정비하세요.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겁니다. 당신은 하루 종일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스스로에게 기꺼이 쉬어갈 틈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나를 가장 지혜롭게 사랑하고 오래도록 지켜내는 방법입니다.
억지로 웃지 않을 용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감정 노동’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내 진짜 기분과 상관없이, 상황에 맞는 표정을 연기해야 하는 것. 속으로는 분노와 서운함이 들끓어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웃어야 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위계질서가 분명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한 직장에서는, 내 진짜 감정을 깊숙이 숨기고 ‘유능하고 싹싹한 직장인’이라는 사회적인 가면을 쓰는 일이 거의 일상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억지로 만들어낸 미소는 내 영혼을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갉아먹습니다. 진심이 전혀 담기지 않은 웃음은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감정 에너지를 소모시키기 때문이에요. 내면의 감정과 외부의 표현이 불일치할 때 오는 인지 부조화는 우리를 극심한 피로와 무기력에 빠뜨립니다.
이제는 억지로 웃지 않을 용기를 아주 조금씩 내어볼 때입니다. 이것은 퉁명스럽고 무례하며 부정적인 사람이 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모든 순간에 완벽한 배우처럼 연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너그럽게 허락해 주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굳이 입꼬리를 경련이 일도록 끌어올려 웃으려 애쓰지 마세요. 그냥 담담하고 차분한,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으로 있어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현재 상태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얼굴입니다.
상사의 재미없는 아재 개그에 억지로 박장대소하며 웃어줄 필요도 없습니다. 가벼운 미소나, ‘아, 그러시군요’ 정도의 반응으로도 충분합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존재하는 광대가 아닙니다.
물론 처음에는 불편하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내가 웃지 않으면 이 어색한 침묵을 어떻게 감당하지? 나를 사교성 없고 부정적인 사람으로 볼까 봐 걱정될 수 있죠.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표정 하나하나에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각자 자기 자신에게 가장 관심이 많기 때문이죠.
오히려 항상 방글방글 웃고 있던 사람이 조금 차분하게 있으면, ‘오늘은 무슨 일 있나 보다’ 혹은 ‘피곤한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더 이상 건드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늘 웃어주는 사람에게는 더 무례한 농담을 던지기 쉽지만, 감정 표현이 담백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진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무례함이 아니라 ‘솔직함’과 ‘자기 존중’의 영역입니다. 물론 화가 난다고 해서 사무실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슬프다고 해서 책상에 엎드려 펑펑 울 수는 없겠죠. 사회적인 맥락을 고려한 감정 조절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부장님, 그 농담은 조금 불편하게 들리네요’ 혹은 ‘지금은 제가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주시면 안 될까요?’ 와 같이, 자신의 상태와 경계를 차분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매우 건강한 소통 방식입니다.
억지로 웃는 것을 멈추면, 역설적으로 진짜 웃음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될 거예요. 정말로 즐겁고 행복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진짜 웃음을 웃게 될 겁니다. 그 진실된 웃음이야말로 나에게 진짜 힘을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꾸며낸 미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거예요.
당신의 모든 감정은 소중합니다. 기쁨과 행복뿐만 아니라 슬픔, 분노, 짜증 같은 소위 ‘부정적인’ 감정들도 모두 당신의 일부이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당신에게 찾아온 자연스러운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억지로 웃음이라는 덮개로 황급히 덮어두지 마세요. 오늘부터 거울을 보고 억지로 웃는 연습 대신, 나의 진짜 표정을 가만히 마주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조금은 지쳐 보이고, 조금은 슬퍼 보이는 내 얼굴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며 ‘오늘 하루도 정말 애썼다’ 하고 다정하게 다독여주세요.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지친 마음은 세상 가장 큰 위로를 받을 겁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어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고,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으며,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무리에 속하고 싶은 안정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마음이 너무 커져서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면, 우리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교묘하고 질긴 덫에 걸리게 됩니다. 싫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부당한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며, 내 감정과 욕구는 억누른 채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는 삶. 그렇게 살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어 지쳐버린 나와, 나를 ‘거절하지 못하는 편한 사람’으로 여기며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뿐입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럴 필요도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상식적이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도, 당신이 아무리 노력하고 배려해도,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부족하거나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과 당신의 가치관, 성향, 에너지의 결이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유 없는 미움도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마치 세상에 수많은 맛있는 음식이 있지만, 내가 특별한 이유 없이 오이를 싫어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특별한 이유 없이 나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모든 사람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 존재하지 않듯, 모든 사람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단 한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대신, 나를 이미 좋아하고 지지해 주는 아홉 사람에게 그 에너지를 쓰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명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리려는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습니다. 그 노력은 나를 지치게 하고 자존감을 갉아먹을 뿐,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는 저 사람에게까지 사랑받을 필요는 없어. 저 사람은 내 인생의 중요한 관객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훨씬 더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비현실적인 욕심을 버리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현실적이고 건강한 목표를 세워보세요. 나의 가족, 나의 진짜 친구들, 그리고 직장에서도 나를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동료들. 이들에게만 나의 진심과 에너지를 집중해도 우리의 삶은 충분히 풍요롭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거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감당할 수 없는 부당하거나 무리한 부탁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내 자신과 내 업무에 대한 책임감 있는 행동입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제가 맡은 일이 많아서 그건 좀 도와드리기 어렵겠네요.’ ‘제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제가 하는 것보다 더 잘하는 다른 분께 부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는 용기가, 당신을 불필요한 셔틀과 짐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진정으로 당신을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합리적인 거절을 이해하고 존중해 줄 거예요. 만약 당신의 거절에 화를 내거나 서운해한다면, 그 사람은 당신을 동등한 동료가 아닌 자신의 편의를 위한 도구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은 이미,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충분히 좋은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인정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나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나를 아껴주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세요. 그것이 수많은 관계의 소음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 나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고 바로 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고마워할 거예요
지금 당장 관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새로운 행동을 하는 것은, 때로는 무척 귀찮고 두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부당한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무례한 말에 선을 긋는 것도, 억지로 웃지 않고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다 어색하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종종 변화의 문턱에서 망설이며 ‘그냥 이번 한 번만 참자’, ‘좋은 게 좋은 거지. 괜히 시끄럽게 만들 필요 없어’ 하며 익숙하고 편한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당장의 불편함을 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오늘 당신이 나를 지키기 위해 내는 그 작은 용기 하나하나가 벽돌처럼 쌓여, 내일의 당신을 훨씬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만들어 줄 튼튼한 집이 될 겁니다.
마치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처럼, 처음에는 온몸에 근육통이 시달리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포기하고 싶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힘든 과정을 참고 꾸준히 해나가면, 어느새 체력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예전에는 힘들었던 동작도 거뜬히 해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것도 이와 똑같습니다. 오늘 불편함을 감수하고 나의 경계를 지키는 연습을 한 번 하면, 내일은 그것이 아주 조금 더 쉬워집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이 쌓이면,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단단하고 유연한 마음의 근력을 갖게 될 거예요.
오늘 부당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끙끙 앓으며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있다면, 내일의 당신은 똑같은 상황에서 또다시 힘들어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오늘의 침묵이 내일의 고통을 예약하는 셈이죠.
하지만 오늘 큰 용기를 내어 ‘죄송하지만 그건 제 업무 범위가 아닌 것 같습니다’ 라고 분명하게 말했다면, 내일의 당신은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정시에 퇴근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상대방도 다음부터는 당신에게 함부로 일을 떠넘기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겁니다.
지금의 작은 변화가 미래의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불편함을 감수하고 뿌린 씨앗이, 내일의 당신을 지켜줄 울창한 숲이 되는 것처럼요.
그러니 힘들고 두려운 마음이 들 때마다, 1년 후의 나, 혹은 3년 후의 나를 떠올려보세요.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자신의 일에 온전히 집중하며 동료들에게 존중받고 당당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내일의 나. 사람들의 사소한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굳건히 믿으며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미래의 나.
그 멋진 모습은 다른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용기를 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완벽할 필요는 없어요. 때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 참고 넘어가거나, 상처받고 밤새 뒤척이는 날도 있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돼요.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나를 지키는 방향으로 비틀거리더라도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는 그 의지 자체입니다.
오늘 당신이 흘리는 땀과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두려움은 결코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당신 안에 차곡차곡 쌓여, 미래의 당신을 어떤 공격으로부터도 지켜주는 가장 튼튼한 방패이자, 어떤 상황에서도 기댈 수 있는 가장 아늑한 안식처가 되어줄 거예요.
그러니 스스로를 믿고, 오늘의 용기 없는 나를 자책하기보다 작은 시도를 한 나를 조금만 더 응원해주세요. 내일의 당신은 분명, 오늘의 용기 있는 선택을 한 당신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할 테니까요.
당신의 세상은 회사보다 훨씬 커요
우리는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기 때문에, 종종 회사가 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회사에서의 평가가 곧 나라는 인간 전체에 대한 평가이고, 회사에서의 인간관계가 내 인생 인간관계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파동에도 온 마음이 휘청거리죠.
하지만 아주 잠시만 숨을 고르고, 회사라는 건물 밖으로 한 걸음만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보면, 회사는 우리의 거대하고 다채로운 삶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의 세상은 그 좁은 사무실 공간과 답답한 모니터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넓고 아름답습니다. 퇴근 후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 하며 당신을 따뜻하게 반겨주는 가족이 있고, 전화 한 통에 한밤중이라도 달려와 줄 오랜 친구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취미가 있고,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은 가슴 설레는 꿈이 있습니다. 주말에 훌쩍 떠날 수 있는 푸른 숲과 드넓은 바다가 있고, 당신의 지친 마음을 가만히 위로해 줄 좋은 책과 영화와 음악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세상을 이루는 소중하고 반짝이는 조각들입니다. 회사에서의 힘든 일 때문에, 이 모든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지는 않았나요?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잠시 시선을 돌려보세요. 회사 밖에는 당신을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합니다.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들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회사에서의 관계에 조금 더 초연하고 대담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인정받지 못하면 내 인생은 끝이야’ 라는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세요. 당신은 회사라는 작은 연못에 잠시 머물고 있는 고래와 같습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더 넓고 깊은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예요. 지금의 회사가 당신의 모든 가치를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좁은 어항일지도 모릅니다.
일과 나를 의식적으로 분리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퇴근하는 순간, 회사에서 입고 있던 ‘김 대리’, ‘박 사원’이라는 옷을 현관문 밖에 벗어 던지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업무용 메신저 알림은 퇴근과 동시에 꺼두고, 주말에는 의식적으로 일 생각을 완전히 차단하세요.
그리고 그 시간에 당신의 진짜 세상을 정성껏 가꾸는 데 집중하세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언어나 악기를 배우고, 땀 흘려 운동하며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는 겁니다.
나의 세상이 단단하고 풍요로워질수록, 회사라는 작은 세계에서 부는 사소한 바람에 덜 흔들리게 됩니다. 회사에서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괜찮아, 이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나에겐 나를 지지해주는 다른 세상이 있으니까’ 하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즉 ‘대안’이 생깁니다.
그 여유가 당신을 더 이상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연연하지 않는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예요. 기억하세요. 당신은 누군가의 부하직원이나 동료, 상사이기 이전에, 이 우주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입니다. 회사라는 무대에서 잠시 ‘직장인’이라는 역할을 맡아 연기하고 있을 뿐, 당신의 진짜 삶과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더 크고 위대합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어떤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도 당신의 존엄성과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퇴근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세요. 수많은 별들이 아득하게 반짝이고 있을 겁니다. 회사라는 작은 빌딩의 불빛에 가려져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인 당신의 진짜 세상이, 저 밤하늘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다는 것을.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당신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저 고요하고 영원한 별빛들이 말해주고 있을 거예요. 당신이라는 작은 배가 직장이라는 바다를 항해할 때, 때로는 거친 파도에 심하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당신 안에는 어떤 폭풍우에도 길을 잃지 않게 해줄 단단한 나침반이 있고,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나 자신’이라는 가장 아늑하고 안전한 항구가 있다는 것을요. 그 항구에 머물며 스스로를 돌보고 정비하는 시간을 절대로 아끼지 마세요. 그렇게 충분한 힘을 얻은 당신은, 내일 아침 다시 한번 씩씩하게 닻을 올리고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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