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울리는 메시지 알림 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은 적 있나요?
혹시 나쁜 소식은 아닐까,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죠.
기분 좋은 칭찬을 들어도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습니다.
이 칭찬 뒤에 숨겨진 더 큰 기대감, 그걸 채우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을 먼저 상상하게 되니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의 끝, 잠자리에 누우면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영하는 영화가 시작됩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수십 가지 걱정들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입니다.
행복한 순간에도 온전히 웃지 못합니다.
이 행복이 곧 끝날 것만 같아서, 이 좋은 시간 뒤에 분명 나쁜 일이 찾아올 것만 같아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느라 지금의 소중한 순간을 놓쳐버립니다.
어쩌면 당신의 마음은,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유능한 위기관리팀장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단 한순간의 방심도 없이, 365일 24시간 내내 비상근무를 서고 있는 것이죠.
마음속에 비상등이 꺼지지 않는 당신에게
당신의 마음속에는 아주 예민한 화재경보기가 달려있는 것 같아요. 아주 작은 연기, 사소한 불씨 하나에도 요란하게 경보를 울려대죠.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칠 법한 작은 일에도 당신의 마음은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 평소와 조금 다른 말투 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섭니다.
‘혹시 내가 실수했나? 저 사람이 나 때문에 화가 났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즐거운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떡하지, 여행지에서 소매치기를 당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들을 한가득 짊어지고 떠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설렘보다는,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과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래서 첫걸음을 떼기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집니다.
당신의 하루는 ‘만약에’라는 가정으로 시작해서 ‘역시 안 될 거야’라는 체념으로 끝나는 날이 많았을 거예요.
이 끊임없는 걱정의 소음 속에서 당신은 얼마나 지쳐있을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이미 큰일을 수십 번도 더 치른 것처럼 온몸의 에너지가 방전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세상은 고요한데, 당신의 마음속만은 늘 전쟁터처럼 시끄럽습니다.
편안하게 쉬어야 할 순간에도 마음은 여전히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혹시 모를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못하는 것이죠.
이런 마음을 가진 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 싸움인지, 아마 당신 말고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걱정이 너무 많아’, ‘예민하게 굴지 마’라고 쉽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마음의 자동 반응 같은 것이었겠죠.
원해서 걱정을 만드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저 걱정이 당신을 놓아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원치 않는 걱정의 주파수에 고정되어 버린 채로요.
즐거운 음악이 나오는 다른 채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지직거리는 소음만 계속해서 듣고 있어야 하는 답답함을 느꼈을 겁니다.
이런 당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겠죠.
그래서 더 답답하고, 이런 자기 자신이 미워지기도 했을 테고요.
‘왜 나는 사소한 일에도 이렇게 흔들릴까?’, ‘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할까?’ 자책도 많이 했을 겁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정말 애 많이 썼어요. 그 시끄러운 경보기 소리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 그 경보기의 볼륨을 조금만 줄여보는 연습을 함께 시작해봐요.
완전히 꺼버리자는 게 아니에요. 그저, 당신의 귀가 조금 쉴 수 있을 만큼만요.
그것은 당신을 지키려는 마음의 오랜 습관입니다
당신이 최악의 상황부터 상상하는 그 습관은, 사실 당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생긴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은 어떻게든 당신을 ‘지켜내기 위해’ 만들어진, 마음의 오래된 방어 전략 같은 것입니다.
아마 아주 오래전, 당신이 약하고 무력했을 때, 예상치 못한 상처를 크게 받은 경험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받은 실망, 갑작스러운 실패의 경험, 혹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같은 것들이요.
그때 당신의 마음은 이렇게 결심했을 거예요.
‘다시는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당하지 않겠어. 미리 대비하고, 최악을 생각해두면, 실제로 나쁜 일이 닥쳤을 때 덜 아플 거야.’
마치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덴 아이가, 다음부터는 모든 주전자를 일단 뜨거울 것이라 가정하고 조심하는 것처럼요.
이것은 당신의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찾아낸,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거예요. 당신을 더 큰 상처로부터 지켜주는 꽤 훌륭한 전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이제는 더 이상 그때처럼 위험한 상황이 아닌데도, 마음이 여전히 옛날 방식 그대로 비상경계 태세를 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수십 년째 홀로 참호를 지키고 있는 늙은 군인처럼요.
세상은 변했고 당신도 성장했는데, 마음의 방어 시스템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멈춰 서 있는 것이죠.
그래서 행복이나 행운 같은 낯선 손님이 찾아오면, 혹시 적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경계부터 하고 보는 겁니다.
좋은 일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나중에 그것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너무 클까 봐 두려운 마음.
미리부터 불행을 예상하고 있으면, 적어도 충격은 덜 받을 거라는 계산.
이 모든 것이 당신을 아프지 않게 하려는, 서툴지만 애틋한 마음의 노력입니다.
그러니 ‘나는 왜 이렇게 부정적일까?’ 하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그 습관은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악당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을 너무나 아낀 나머지, 과잉보호를 하고 있는 어설픈 수호천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이제 그 수호천사에게 다정하게 말해줄 시간입니다.
‘그동안 나를 지켜주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네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 조금은 경계를 풀어도 돼.’
당신의 마음을 적으로 만들지 마세요. 가장 오랜 시간 당신 곁을 지켜준 친구로 따뜻하게 맞아주세요.
그 마음과 손을 잡고, 이제는 새로운 방어 전략을 함께 배워나가면 되는 거니까요.
아직 오지 않은 불행에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히지 마세요
최악을 상상하는 습관이 주는 가장 큰 대가는, 바로 ‘현재’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늘 미래의 재앙을 대비하느라 바빠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작은 행복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이따가 배탈이 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 때문에 한 입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과 같아요.
햇살 좋은 오후,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다가도 문득 불안이 고개를 듭니다.
‘이렇게 한가해도 되나? 곧 해결해야 할 어려운 일이 닥칠 텐데.’
결국 커피는 향기를 잃고, 햇살은 따스함을 잃어버립니다. 당신의 마음이 이미 미래의 전쟁터에 가 있기 때문이죠.
아직 오지도 않은 불행을 위해, 지금 확실하게 존재하는 행복을 담보로 맡기는 셈입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90% 이상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당신은 일어나지도 않을 90%의 불행 때문에, 100%의 현재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상상 속에서 우리는 수없이 실패하고, 거절당하고, 상처받습니다.
그 상상 속의 고통은 너무나 생생해서, 우리의 뇌와 몸은 마치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난 것처럼 반응합니다.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나고, 온몸이 긴장하죠.
결국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오늘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립니다.
정작 진짜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맞서 싸울 힘이 남아있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상상 속의 괴물과 싸우느라, 현실의 용사를 지치게 만드는 일은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
오늘 웃을 수 있는 일을 내일의 걱정 때문에 미루지 마세요.
오늘 주어진 작은 기쁨들을, 미래의 불확실한 불안과 맞바꾸지 마세요.
행복은 재산처럼 쌓아두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맛보고, 느끼고, 즐기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아이스크림과 같아요.
당신의 손에 들린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걱정 때문에 녹아내리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
지금 한 입 베어 무는 그 달콤함에 집중해보세요.
미래의 불행은, 그때 가서 걱정해도 절대 늦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을 충분히 즐기고 행복의 에너지를 가득 채워둔 사람만이, 미래의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이겨낼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의 행복은 미래를 위한 가장 튼튼한 보험입니다.
생각의 폭풍우 속, 작은 틈을 발견하는 법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휘젓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생각의 폭풍우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들어갑니다.
그 생각을 멈추려고 애를 쓸수록, 생각은 더 거세게 저항하며 우리를 집어삼킵니다.
‘이런 생각 하지 마!’라고 외치는 것은, 마치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럴 때는 생각을 억지로 멈추려 하거나, 그 생각과 싸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신, 그 생각의 폭풍우 속에서 아주 작은 ‘틈’을 발견하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그 틈은 바로 ‘알아차림’이라는 공간입니다.
‘아, 내가 지금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있구나. 내 마음속에 걱정이라는 손님이 또 찾아왔네.’
이렇게 내 생각과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
‘나’는 ‘걱정’이 아니라, ‘걱정’을 알아차리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죠.
나는 걱정 그 자체가 아니라, 걱정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마치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다고 해서, 하늘 자체가 먹구름은 아닌 것처럼요.
구름은 잠시 머물다 흘러갈 뿐, 푸른 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걱정이라는 먹구름이 당신의 마음을 잠시 뒤덮고 있을 뿐, 당신의 본질이 걱정 덩어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걱정을 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그 순간, 당신은 이미 생각의 폭풍우에서 반쯤 빠져나온 것입니다.
생각에 완전히 빠져 허우적대는 대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안전한 등대 위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시점을 갖게 되는 것이죠.
이 작은 틈, 이 작은 거리두기만으로도 우리는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를 여유를 얻게 됩니다.
이것은 생각을 없애는 기술이 아닙니다. 생각이 와도 괜찮고, 가도 괜찮다고, 그저 생각의 흐름을 강물처럼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는 순간, 다시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부드럽게 알아차림을 시도하면 됩니다.
‘아, 또 생각에 빠졌었네. 괜찮아. 지금 다시 알아차렸으면 됐어.’
이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생각과 나 사이에 안전한 공간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거예요.
그 공간 안에서 당신은 비로소 평온함을 되찾고, 생각의 주도권을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만약 잘된다면? 이라는 질문을 마음에 심어보세요
우리의 마음은 익숙한 길로만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최악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많이 다녀서,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고속도로 같죠.
아주 작은 사건 하나만 생겨도, 우리의 생각은 자동 항법 장치처럼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이 자동 항법 장치를 끄고, 새로운 길을 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 새로운 길의 입구에 서 있는 팻말이 바로 ‘만약 잘된다면?’이라는 질문입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실패해서 망신당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르나요?
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알아차린 뒤, 의식적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는 겁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엄청나게 성공해서, 모두에게 인정받으면 어떨까?’
어색하고, 닭살 돋고,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은 원래 낯설고 불편한 법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런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마음에 살짝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마치 꽁꽁 얼어붙은 땅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은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의 씨앗은 당신의 마음속에서 아주 조금씩, 다른 가능성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겁니다.
‘만약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준다면?’, ‘만약 시험에 합격한다면?’, ‘만약 여행이 아주 즐겁기만 하다면?’
최악을 상상하는 데 쏟았던 에너지의 아주 작은 부분만이라도, ‘잘될 경우’를 상상하는 데 써보는 겁니다.
이것은 억지로 긍정적인 척하는 위선이 아닙니다. 동전의 한쪽 면만 보던 습관에서 벗어나, 동전의 다른 쪽 면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연습입니다.
세상은 최악의 가능성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최선의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저울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만약 잘된다면?’이라는 질문은, 그 기울어진 저울에 작은 추 하나를 올려놓아 균형을 맞추는 첫걸음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시작해보세요.
자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작은 속삭임이 최악을 향해 달려가던 자동 항법 장치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날이 올 겁니다.
불안이 온몸을 덮칠 때, 지금 여기에 닻을 내리는 연습
걱정과 불안은 우리를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공포 속으로 순식간에 데려가는 시간 여행자와 같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우리의 몸은 ‘현재’에 있지만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상태가 되죠.
이 시간 여행자에게서 마음의 조종간을 되찾아오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바로 우리의 몸 감각을 이용해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닻 내리기(anchoring)’라고 부릅니다. 폭풍우 속 배가 휩쓸려가지 않도록 닻을 내리듯, 생각의 폭풍우 속에서 마음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현재에 단단히 고정하는 것이죠.
최악의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숨이 가빠져 올 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이 연습을 해보세요.
먼저, 발바닥에 모든 의식을 집중해보세요.
의자에 앉아 있다면, 발바닥이 바닥에 단단히 닿아있는 느낌을 느껴보세요. 신발 속 발가락의 느낌, 양말의 감촉, 바닥의 단단함을 느껴보는 겁니다.
서 있다면, 땅이 당신의 몸무게를 얼마나 굳건하게 지탱해주고 있는지 느껴보세요.
이것만으로도 당신의 마음은 아득한 미래의 걱정에서부터, 지금 당신의 몸이 있는 현실의 공간으로 조금은 돌아오게 됩니다.
다음은,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 다섯 가지를 아주 천천히, 마음속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책상 위 파란색 펜.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잎. 벽에 걸린 시계. 내 손톱. 컴퓨터 모니터의 불빛.’
이때 중요한 것은 ‘파란색 펜이 예쁘다’와 같은 판단을 더하지 않고, 그저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이름 붙여주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당신의 귀에 들리는 소리 네 가지에 집중해보세요.
시계의 초침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내 숨소리.
그리고 당신의 몸에 닿는 느낌 세 가지를 느껴보세요.
등받이에 기댄 등의 느낌, 옷이 피부에 닿는 감촉, 손가락 끝의 온도.
마지막으로, 지금 맡을 수 있는 냄새 한 가지와,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 한 가지를 찾아보세요.
이 모든 과정은 당신의 마음을 상상의 세계에서 붙잡아, 지금 이 순간의 현실로 안전하게 데려오는 역할을 합니다.
불안은 ‘지금’이 아닌 곳에 있을 때 가장 커집니다.
당신의 몸과 감각을 이용해 지금 여기에 단단히 닻을 내릴 때, 미래를 향해 요동치던 불안의 파도는 잠잠해지기 시작할 겁니다.
그래서 뭐? 라고 말해줄 용기
우리가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일이 닥쳤을 때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거야’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고통, 거절의 상처, 상실의 슬픔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깊은 불신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죠.
그래서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오만가지 걱정의 성벽을 쌓아 올리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 최악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해도, ‘그래서 뭐? 그래도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것은 막연한 허세나 근거 없는 긍정이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연습입니다.
당신이 걱정하는 그 최악의 시나리오를 한번 끝까지 따라가 보세요.
예를 들어, 중요한 발표를 망치는 것이 걱정된다고 해봅시다.
발표를 망치면 어떻게 되죠? →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무능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사람들이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죠? → 회사에서 내 평판이 나빠지고, 승진에서 누락될지도 몰라요.
승진에서 누락되면 어떻게 되죠? → 내 인생은 실패한 게 되는 거예요.
자, 이제 이 마지막 결론, ‘내 인생은 실패한 게 된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요?
발표 한 번 망쳤다고 인생 전체가 실패작이 되는 걸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조금 창피하고, 속상하고, 며칠간 기분이 안 좋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걸로 당신의 인생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이때 스스로에게 던져주는 질문이 바로 ‘그래서 뭐?(So what?)’입니다.
‘그래, 발표를 망칠 수도 있어. 그래서 뭐? 좀 창피하겠지. 하지만 죽는 건 아니잖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 수도 있어. 그래서 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겠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어.’
이 ‘그래서 뭐?’라는 질문은, 잔뜩 부풀려진 재앙의 풍선에 작은 바늘구멍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막연한 공포의 덩어리로 두지 않고 구체적으로 직면하게 함으로써, 사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끔찍한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나는 어떻게든 다시 일어설 힘이 있어’라는 자기 신뢰가 깔려 있습니다.
물론, 이 용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걱정거리부터 ‘그래서 뭐?’라고 응수해보는 연습을 시작해보세요.
걱정의 크기를 100에서 10으로 줄여주는 이 마법 같은 질문은, 당신의 마음을 훨씬 더 단단하고 용감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걱정의 대부분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들
당신의 마음은 훌륭한 검사가 되어서,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위험에 대한 유죄 증거들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냅니다.
과거의 작은 실수 하나,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말 한마디를 가지고 와서, ‘봐, 너는 결국 실패하게 될 거야’라는 논리를 완성하죠.
이제부터는 반대로, 당신 스스로가 유능한 변호사가 되어보는 겁니다.
그동안 당신을 괴롭혀왔던 수많은 걱정들이 ‘사실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무죄 증거들을 모아보는 것이죠.
지난 일주일, 혹은 한 달 동안 당신을 잠 못 들게 했던 걱정들을 떠올려보세요.
그 걱정들 중에서 실제로, 당신이 상상했던 최악의 모습 그대로 일어난 일이 몇 가지나 되나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어쩌면 단 하나도 없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았을 때는 ‘휴, 다행이다’ 하고 안도하며 금방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걱정거리가 생기면 그것이 마치 100% 일어날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죠.
이것은 우리의 뇌가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사건에 더 강하게 반응하도록 편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편향을 바로잡기 위해, 의식적으로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은 경험’들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수첩이나 메모 앱을 ‘걱정 일기장’으로 만들어보세요.
왼쪽에는 당신을 불안하게 하는 걱정을 적고, 오른쪽에는 그 일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결과를 적는 겁니다.
예: (걱정) 오늘 부장님께 보고하는데, 엄청 깨질 것 같다. → (결과) 별말씀 없으셨다. 오히려 칭찬 한마디를 들었다.
예: (걱정) 친구가 내 메시지에 한 시간째 답이 없다. 나한테 화가 난 게 틀림없다. → (결과) 회의 중이어서 답을 못했다고,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왔다.
이 기록이 쌓이면 쌓일수록, 당신은 아주 강력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손에 쥐게 됩니다.
바로 ‘내 걱정은 대부분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 말입니다.
다음에 또다시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덮쳐올 때, 이 일기장을 펼쳐보세요.
과거의 데이터가 당신에게 말해줄 겁니다. ‘이 걱정도 예전의 그 걱정들처럼, 그저 너의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폭풍우일 가능성이 높아.’
이것은 당신의 불안한 마음에 맞서 싸울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무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당신의 경험이, 당신의 역사가, 당신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증인이 되어줄 테니까요.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서는 마음의 근육 키우기
최악을 상상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엄청나게 용감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사용해 온 마음의 운영체제를 바꾸는 것과 같은, 아주 크고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예전의 습관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어제는 ‘만약 잘된다면?’이라는 질문도 던져보고, 현재에 닻을 내리는 연습도 잘 해냈는데,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또다시 걱정의 늪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자신을 비난합니다.
‘역시 나는 안 돼. 나는 변할 수 없나 봐.’
하지만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 수백 번 넘어지는 것을 실패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그 모든 넘어짐은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과정의 일부일 뿐입니다.
당신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 습관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습관을 익히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연습’의 일부입니다.
넘어졌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넘어진 자신을 향해 채찍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입니다.
‘아, 또 옛날 습관이 나왔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오랫동안 그랬으니까 당연하지. 다시 한번 시도해보면 돼.’
이렇게 스스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최고의 영양제가 됩니다.
자책은 우리를 넘어진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게 만들지만, 자기 연민과 격려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을 줍니다.
오늘 하루, 걱정에 흠뻑 빠져 지냈다고 해서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마치 운동을 하루 쉬었다고 해서, 그동안 키워온 근육이 전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내일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넘어진 횟수를 세지 말고, 다시 일어선 횟수를 기억해주세요.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며 ‘벗어나고 싶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당신의 마음 근육은 이미 조금 더 단단해졌습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세요. 스스로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마세요.
한 걸음 나아갔다가 반 걸음 물러서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주 조금이라도 어제보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니까요.
그 서툴고 비틀거리는 걸음 하나하나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세요.
최악 대신, 어쩌면 일어날지 모를 좋은 일들을 상상하며
그동안 당신의 상상력은 주로 ‘재앙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데 사용되었을 겁니다.
아주 뛰어난 성능으로, 생생하고 구체적인 불행들을 그려냈죠.
그 탁월한 상상력을 이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사용하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최악의 시나리오 대신,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작고 기분 좋은 일들’을 상상하는 데 쓰는 겁니다.
이것은 ‘최고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라는 부담스러운 주문이 아닙니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하루아침에 인생 역전을 하는 거창한 상상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아주 사소하고 현실적인 ‘좋은 가능성’에 마음의 창문을 조금 열어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일 아침 출근길을 상상할 때, ‘지각해서 혼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대신,
‘어쩌면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올지도 몰라.’
‘어쩌면 신호등이 한 번도 안 걸리고 회사에 도착할 수도 있겠네.’
‘어쩌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도 있겠다.’
처럼, 아주 작고 소박한 긍정의 장면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런 상상이 어색하고, 심지어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상상들이 모여, 우리의 뇌에 새로운 신경 회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늘 다니던 ‘불안으로 가는 길’ 옆에, 작지만 예쁜 ‘기분 좋은 가능성으로 가는 오솔길’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자주 다니면 다닐수록, 그 오솔길은 점점 더 넓고 편안한 길이 될 겁니다.
이 연습의 가장 좋은 점은, 설령 상상한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아무런 손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당신의 하루는 예상치 못한 작은 기쁨으로 채워지게 되겠죠.
최악을 상상하는 습관은, 아직 오지 않은 고통을 미리 당겨와 현재를 괴롭히는 일입니다.
반대로, 좋은 일을 상상하는 습관은, 아직 오지 않은 기쁨을 미리 당겨와 현재를 따뜻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어차피 둘 다 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면, 이왕이면 지금의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상상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이득 아닐까요?
잠자리에 누워 걱정의 영화를 상영하는 대신, 내일 아침 마실 따뜻한 커피의 향기, 창문으로 들어올 햇살, 기분 좋게 나를 반겨줄 동료의 미소 같은 것들을 떠올려보세요.
당신의 뛰어난 상상력은, 당신을 괴롭히는 도구가 아니라, 당신의 하루를 더 빛나게 만드는 멋진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선물을 제대로 한번 사용해볼 시간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그동안 궂은 비가 내릴까 봐, 화창한 날에도 무거운 우산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팔이 아프고 어깨가 뻐근해도, 혹시 모를 비에 흠뻑 젖는 것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죠.
이제 그 무거운 우산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우산을 아예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햇살이 좋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잠시 옆에 내려놓고, 따스한 햇볕을 온몸으로 느껴보자는 겁니다.
그러다 비가 오면, 그때 다시 우산을 펼쳐 들면 됩니다. 당신은 이미 우산을 쓰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예전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빗속을 헤쳐 나갈 힘도 생겼을지 모릅니다.
세상에는 비 오는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부시게 해가 비추는 날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도 있습니다.
마음의 우산을 잠시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다채로운 날씨를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은, 당신의 삶에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눈부시게 화창한 날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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