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은 그만

잠 못 드는 밤이 많아졌을 겁니다.
천장에 달라붙은 희미한 무늬를 세고 또 세다가, 결국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 들지요. 어쩌면 나에게 상처를 줬던 그 사람의 SNS를, 어쩌면 아직 답이 오지 않은 메신저 창을, 어쩌면 세상의 불안한 소식들을 하염없이 새로고침 하면서 말입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고, 머릿속은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분명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걸 알면서도, 뇌는 멈추지 않고 ‘만약에’라는 질문을 수없이 만들어냅니다.

만약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만약 그 일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만약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그 끝없는 걱정의 꼬리를 물다 보면, 어느새 심장은 더 빨리 뛰고 숨은 얕아집니다.
세상에 나 혼자만 이 거대한 불안의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섬처럼 느껴지기도 할 거예요.
괜찮다고, 다 잘 될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그 목소리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에 묻혀버리기 일쑤입니다.

선선한 가을 공기가 창틈으로 스며드는 이 새벽, 당신의 마음도 꼭 그런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늘함과 무거운 공기에 짓눌려, 그저 뒤척이기만 하는 밤들을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 생각

하루에도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씩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지는 않나요?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원하지 않아도 같은 멜로디가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만 생각하고 싶다고 아무리 외쳐봐도, 그 생각은 끈질기게 당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한 장면이,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어떤 순간이 당신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당신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이지요.
밥을 먹을 때도, 친구와 웃고 떠들 때도, 심지어 가장 편안해야 할 잠자리에 누워서도 머릿속 한편에서는 그 ‘생각’이 계속해서 영화처럼 상영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유난히 예민하거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원래 해결되지 않은 문제나 불확실한 미래를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에요.
어떻게든 답을 찾고 위험을 피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의 본능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그 본능이 너무 강해져 버리면, 마치 집을 지켜야 할 경보기가 작은 바람 소리에도 시끄럽게 울려대는 것처럼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어깨를 누르는 보이지 않는 짐

걱정은 생각에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어느새 온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하지요.
특별히 무거운 것을 든 것도 아닌데 늘 양쪽 어깨가 돌덩이처럼 굳어있고, 뒷목이 뻣뻣하게 당겨오는 것을 느낄 겁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거나, 이를 꽉 깨물고 있을 때도 많을 거예요.

이것은 마음이 짊어진 걱정의 무게가 몸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신호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걱정 꾸러미를 24시간 내내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 안에는 다른 사람의 기분에 대한 걱정, 나의 실수에 대한 자책,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이 가득 담겨 있지요.

이 짐은 너무나 투명해서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외로워지는지도 모릅니다.
“너 무슨 일 있어?”라는 질문에 “아니, 괜찮아”라고 대답하지만, 속으로는 ‘내 어깨에 이 무거운 짐이 보이지 않느냐’고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거예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마세요. 당신의 몸은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잠시만 그 짐을 내려놓고 쉬어가자고 간절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에’라는 늪

걱정의 가장 친한 친구는 아마 ‘만약에’일 겁니다.
‘만약에’라는 말은 우리를 순식간에 현실이 아닌, 수만 가지의 끔찍한 상상 속으로 데려가는 주문과도 같아요.
‘만약 내가 시험에 떨어지면?’, ‘만약 그 사람이 나를 떠나가면?’, ‘만약 건강이 나빠지면?’

하나의 ‘만약’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만약’을 낳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연못 같았던 걱정이, ‘만약’이라는 비를 맞으며 순식간에 발이 푹푹 빠지는 거대한 늪으로 변해버리지요.
그 늪에 한번 빠지면,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 ‘만약’의 세상 속에서는 늘 최악의 시나리오만이 펼쳐집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 가장 피하고 싶은 결말만이 선명한 영상처럼 생생하게 그려지지요.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요.
당신은 지금 현실이 아닌, 당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상상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입니다.

내일의 비를 오늘 맞고 있나요

일기예보에서 내일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부터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우리는 비가 올 때 우산을 쓰지, 비가 올 것을 걱정하며 미리부터 비에 젖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있어서는 종종 이런 실수를 하곤 합니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걱정,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를 불행을 미리 끌어당겨 와서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흠뻑 적시고 맙니다.
내일 내릴 비를 오늘 다 맞아버리는 셈이지요.

정작 내일이 되어 비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필요 없는 걱정으로 소중한 오늘 하루를 몽땅 낭비한 것이 됩니다.
설령 내일 정말 비가 온다고 해도, 오늘 미리 비를 맞는다고 해서 내일 맞을 비의 양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지요.

오히려 오늘 젖은 몸으로 지쳐버려, 내일 쏟아지는 비를 피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오늘’이라는 시간은, 오지 않은 내일의 비를 맞는 데 쓰기에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손에 쥔 모래알처럼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다는 마음,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완벽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불확실한 상황을 확실하게 만들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마음이에요.
마치 손에 한 움큼 모래를 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단 한 톨도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요.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모래를 흘리지 않으려고 주먹을 꽉 쥐면 쥘수록,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더 빠르게 빠져나가 버립니다.
힘을 주면 줄수록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통제하려 애쓰는 많은 것들이 바로 이 손안의 모래와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 이미 내뱉어진 말, 세상의 평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이 모든 것을 내 손안에 꽉 쥐고 통제하려고 애쓸수록, 우리의 마음은 더 불안해지고 상황은 오히려 꼬여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통제하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감만을 안겨주는 셈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먹을 더 꽉 쥐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손에 힘을 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작은 정원 가꾸기

세상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숲과 같습니다.
어디서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올지, 어떤 동물이 나타날지 우리는 예측할 수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이 거대한 숲 전체를 내 마음대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우리를 금방 지치고 절망하게 만들 뿐입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각자 가꿀 수 있는 ‘작은 정원’이 하나씩 있습니다.
이 정원은 바로 내가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 즉 ‘통제 가능한 영역’을 의미해요.
오늘 내가 누구에게 친절한 말을 건넬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잠들기 전에 어떤 책을 읽을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기로 선택할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세상의 거대한 숲에서 눈을 돌려, 잠시 나의 작은 정원을 들여다보세요.
지금 내 정원에 잡초가 무성하다면 잡초를 뽑아주고, 땅이 메말라 있다면 물을 주는 일에 집중하는 겁니다.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동 하나. 바로 그것이 나의 정원을 가꾸는 일입니다.
온 세상을 바꾸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나의 작은 정원을 정성껏 가꾸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한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파도를 막을 수는 없지만

인생이라는 바다에는 예고 없이 크고 작은 파도가 밀려옵니다.
우리가 아무리 원하지 않아도, 파도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파도를 막기 위해 거대한 벽을 쌓으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파도는 결국 그 벽을 넘어오거나, 부서뜨려 버리지요.

걱정과 불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걱정스러운 일, 불안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들을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노력은 우리를 더 큰 무력감에 빠지게 할 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파도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서핑을 하는 사람처럼, 밀려오는 파도의 힘에 저항하는 대신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균형을 잡는 법을 익히는 것이지요.

불안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이런 마음이 들면 안 돼!’라고 맞서 싸우는 대신, ‘아, 지금 불안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구나. 잠시 이 파도 위에 떠 있어 보자’라고 부드럽게 받아들여 보세요.
파도는 언젠가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에도 쉼표가 필요해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생각의 수레바퀴를 잠시 멈출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강력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숨’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딱 1분만이라도 모든 것을 멈추고 의식적으로 숨을 쉬어보는 거예요.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차가운 공기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입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며 부풀었던 배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느껴봅니다.

이 간단한 과정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동안, 우리는 쉴 새 없이 미래와 과거를 오가던 생각의 열차에서 잠시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걱정을 없애는 마법이 아닙니다.

다만,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아주 작은 튜브 하나를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튜브에 의지해 잠시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고 다시 균형을 잡을 힘을 얻게 됩니다.
하루에 몇 번씩, 당신의 마음에 이런 짧은 쉼표를 찍어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조약돌

거대한 불안감에 휩싸이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마치 태산을 옮겨야 하는 것처럼, 문제의 크기가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태산을 한 번에 옮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내 발 앞에 놓인 가장 작은 조약돌 하나를 옮기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지금 당장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작고 사소한 행동은 무엇일까요?
흐트러진 책상을 정리하는 것, 미뤄뒀던 설거지를 하는 것,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듣는 것,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
이런 행동들은 불안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주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성공의 경험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야. 나는 적어도 내 앞에 놓인 이 작은 일 하나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자기 효능감을 되찾아줍니다.
거대한 걱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지금, 여기’의 현실에 발을 딛게 해주는 작은 닻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불안이 온 마음을 뒤덮을 때, 세상에서 가장 작고 쉬운 조약돌 하나를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옮겨보세요.

이제 그만, 나를 안아줄 시간

우리가 그토록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사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내 가족을, 나의 안정을 지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걱정’이라는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러니 걱정하는 자신을 너무 미워하거나 자책하지 마세요.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만 할까?’라고 다그치는 대신, ‘아, 내가 이것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구나’라고 스스로의 마음을 알아주세요.

걱정은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나의 가장 깊은 마음을 알려주는 서투른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당신은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지키려고 애써왔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마음을 졸이며 안간힘을 써왔지요.

이제는 그 지친 마음을, 수고한 나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줄 시간입니다.
‘괜찮다, 애썼다, 그것까지 네가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다정하게 속삭여주세요.

우리는 강물 위에 작은 종이배를 띄워 보내는 아이와 같습니다.
일단 강물에 배를 띄우고 나면, 그 배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이의 손을 떠난 일이지요.
바람이 불어 뒤집힐 수도,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혹은 운 좋게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정성껏 배를 접어, 최선의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띄워 보내는 것까지입니다.
그 후에는 그저 강물의 흐름을 지켜보며, 배의 여정을 응원해 주는 것이지요.

당신의 걱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면, 이제 그 결과를 하늘에, 혹은 세상의 흐름에 맡겨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꽉 쥐고 있던 손을 펴고, 당신의 작은 종이배가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놓아주세요.

손을 편 그 자리에, 비로소 편안함과 자유라는 새로운 선물이 찾아올 겁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애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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