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었는데요. 정말이에요.
남들이 보기에도,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괜찮은 하루였어요.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커피를 내리고,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서늘한 가을바람에 잠시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죠. 가을이 왔구나, 하고 아주 잠깐 설레기도 했어요.
회사에서는 맡은 일을 큰 실수 없이 무사히 해냈고, 점심에는 동료들과 새로 생긴 식당에 가서 웃으며 밥을 먹었어요. 사소한 농담에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고요.
퇴근길, 익숙한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를 들으며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볼 때도 마음은 그저 평온했어요. 오히려 충만한 하루였다고, 오늘도 잘 살아냈다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기까지 했죠.
집에 돌아와 씻고,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으며 소파에 편하게 기댔을 때였을까요.
아니면 그냥 멍하니 TV를 보다가, 출연자들이 정말 별것 아닌 일로 웃고 떠드는 모습을 봤을 때였을까요.
갑자기, 정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이 왈칵, 하고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어요.
눈시울이 순식간에 뜨거워지면서,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눈물이 핑 돌았죠.
‘나 왜 이러지? 방금까지 멀쩡했는데. 슬픈 일도 전혀 없는데.’
애써 고개를 저어보고, 다른 생각을 해보려 하지만 한번 터지기 시작한 감정의 수문은 제멋대로 눈가를 적시고 맙니다.
꾹 참아보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북받쳐 올라요.
어깨가 나도 모르게 작게 들썩이고, 끝내 참지 못한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무릎 위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 한 방울이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립니다.
서러운 것도, 화가 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눈물이 나요.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시끄러운 세상 속에 나 혼자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 유리 상자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
분명 괜찮았는데, 정말 잘 지내고 있었는데, 왜 나는 갑자기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져버리는 걸까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은 나를 더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들어요.
마치 내 마음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고장 나 버린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혹시 나, 정말 괜찮은 게 아니었던 걸까요.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던 걸까요.
겉으로는 애써 웃고 있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울고 있었던 걸까요.
그 누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지 못했던 당신의 그 마음, 지금부터 저와 함께 아주 조심스럽게 들여다봐도 될까요.
내 마음의 작은 댐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는 저마다 자신만의 작은 댐이 하나씩 있어요.
매일매일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감정의 물줄기를 막아주고, 일상을 평온하게 유지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댐이죠.
어떤 날은 실망이라는 비가 소리 없이 밤새 내리고, 어떤 날은 서운함이라는 자욱한 안개가 하루 종일 마음을 축축하게 만들어요.
때로는 억울함이라는 소나기가 우산도 없이 걷는 나를 향해 세차게 쏟아지기도 하죠.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이라는 이슬비가 옷깃을 적시기도 하고요.
우리는 괜찮다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이 물들을 댐 뒤로 차곡차곡 가둬둡니다.
‘다들 이렇게 살아.’, ‘나만 힘든 거 아니잖아.’, ‘어른답게 행동해야지.’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이면서, 넘실거리는 감정의 물결을 애써 외면합니다.
댐에 물이 차오르는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요.
매일 아주 조금씩, 눈치채지 못할 만큼 수위가 높아질 뿐, 겉으로 보기에는 어제와 오늘의 댐은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죠. 일상은 평소처럼 흘러가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댐이 얼마나 가득 찼는지 잊고 살아요. 어쩌면 일부러 잊으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튼튼하다고, 이 정도 감정의 홍수쯤은 아직 거뜬히 막아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과신해버리죠.
그러다 어느 날, 정말이지 너무나 사소하고 평범한 일이 생겨요.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기대에 살짝 미치지 못한 작은 결과, 혹은 드라마 속 주인공의 행복한 웃음, 그냥 평범하고 아름다운 저녁 풍경 같은 것들 말이에요.
마치 가득 차서 표면장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댐 위로 떨어진 마지막 빗방울 하나처럼요.
그 작디작은 빗방울 하나가, 그 견고해 보이던 거대한 댐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요?
네, 그럴 수 있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이미 댐은 버틸 수 있는 한계 용량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서까지 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요. 더 이상 단 한 방울의 물도 담을 공간이 없었던 거예요.
마지막 빗방울은 원인이 아니라, 그저 신호였을 뿐이에요.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는, 이제는 쌓아둔 감정들을 좀 흘려보내야 한다는,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간절한 신호.
그래서 우리는 이유도 없이 울컥하는 거예요.
슬픈 영화를 본 것도, 누가 나를 직접적으로 괴롭힌 것도 아닌데 갑자기 눈물이 둑 터지듯 터져 나오는 거죠.
그 눈물은 지금 막 생긴 새로운 슬픔의 눈물이 아니에요.
그동안 괜찮다고 애써 외면하고 댐 뒤에 꾹꾹 눌러 가둬두었던 아주 오래된 감정들이, 잊고 있던 서러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거예요.
댐이 무너져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지는 모습은 무섭고 당황스러울 수 있어요.
내 마음이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가 된 것 같고, 내가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아 두려울 수도 있죠.
하지만 이건 망가지는 과정이 아니에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 크게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한 아주 자연스러운 정화 과정에 가까워요.
가둬두기만 하면 언젠가 댐은 정말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듯 부서져 버릴 테니까요.
그전에 수문을 열어 안전하게 물을 방류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야 댐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나 왜 이러지?’ 하고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기며 탓하지 마세요.
‘왜 이렇게 약해졌지?’, ‘정신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라며 자책의 말을 던지지도 마세요.
당신의 마음은 약해진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 눈물은 당신이 그동안 정말 애쓰며, 훌륭하게, 잘 버텨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예요.
그 눈물은 당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감정의 비를 묵묵히 맞으며, 위태로운 댐을 지키기 위해 꿋꿋이 서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명예로운 훈장과 같아요.
댐이 무너진 그 자리에서, 쏟아지는 감정의 홍수 속에서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요.
쏟아지는 물을 막으려 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바라봐 주세요. 이 물들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어떤 색깔을 띠고 있는지.
이 거센 물줄기가 모두 안전하게 흐르고 나면, 댐 주변은 다시 예전의 평온을 되찾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그때, 텅 비워진 댐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더 튼튼하게 보수할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거고요.
지금의 눈물은 끝이 아니라, 더 단단한 내일을 위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마음껏 울어도 괜찮아요. 아니, 지금은 우는 것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니까요.
마음에도 보이지 않는 멍이 들어요
우리가 길을 가다 모서리에 다리를 쿵, 하고 부딪히면 어떻게 되나요?
처음엔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짜릿한 아픔이 느껴지다가, 곧 그 자리에 파랗고 보랏빛의 멍이 들죠.
멍이 든 곳을 보면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아, 내가 여기에 부딪혔구나. 이 주변을 지날 땐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구나. 하고 배우게 되죠.
우리는 멍든 팔이나 다리를 다른 곳에 또 부딪히지 않게 소중하게 감싸고, 차가운 찜질을 하거나 약을 바르기도 해요. 스스로를 돌보는 거죠.
왜냐하면 눈에 똑똑히 보이니까요. 멍의 색깔과 크기를 통해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마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몸과 똑같이 멍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마음의 멍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더 위험할 수 있어요.
날카로운 말에 베이고, 차가운 무시의 눈빛에 부딪히고, 무거운 실망감에 짓눌릴 때마다, 기대가 무너져 내릴 때마다 우리 마음에는 작은 멍 자국이 하나씩 생겨요.
하지만 우리는 그 멍을 대부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가요.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깊은 상처인지 가늠하기 어려우니까요.
‘이 정도는 괜찮아.’, ‘원래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지.’, ‘내가 예민하게 구는 거야.’,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자.’
이렇게 애써 합리화하며 그냥 지나쳐 버리죠.
마치 작은 상처는 소독도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내버려 두는 것처럼요.
그렇게 우리가 돌보지 않고 방치한 보이지 않는 멍들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그대로 남아요.
하나의 멍, 그리고 또 하나의 멍.
어제 생긴 멍이 채 아물기도 전에, 오늘 생긴 새로운 멍이 그 위를 다시 덮고 겹쳐져요.
멍이 든 곳을 또 부딪히면 처음보다 훨씬 더 아픈 것처럼, 마음의 멍도 겹겹이 쌓이면 아주 작은 스침이나 충격에도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돼요.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아무것도 아닌 부드러운 바람이 살짝 스쳤을 뿐인데, 온 마음에 격통이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이 와요.
그게 바로 우리가 이유도 모른 채 울컥, 하고 무너지는 순간이에요.
드라마 속 주인공의 평범한 대사 한마디가, 길을 걷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혹은 창문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 한 줌이 겹겹이 쌓여 시퍼렇게 멍든 내 마음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린 거죠.
그 순간 터져 나오는 눈물은 그 햇살이나 웃음소리, 대사 때문이 아니에요.
그동안 아픈 줄도 모르고, 혹은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쌓아왔던 수많은 마음의 멍들이 한꺼번에 ‘나 여기 아파요!’ 하고 소리치는 거예요.
‘나 좀 돌봐주세요.’, ‘제발 나를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그동안 묵살당했던 마음의 상처들이 보내는 아주 간절하고 절박한 신호죠.
그러니 갑작스러운 자신의 눈물에 너무 당황하지 마세요.
이건 당신의 마음이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보낸 필사적인 구조 신호예요.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멍들을 하나씩 돌봐달라는 애원의 목소리죠.
이제부터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 마음의 멍을 찾아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하루, 내 마음에 멍을 남긴 사건이나 말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동료의 뾰족한 말?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혹은 무기력했던 오후의 나른함?
그 멍의 원인을 찾았다면, 가만히 들여다봐 주세요. 그리고 인정해주세요.
‘아, 그 말 때문에 내가 정말 아팠구나.’, ‘그 상황에서 정말 속상했겠네. 억울했겠다.’
그저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시퍼렇던 멍은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해요.
눈에 보이는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마음의 멍에는 ‘따뜻한 공감’과 ‘스스로를 향한 위로’라는 가장 효과적인 약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 약을 가장 먼저, 가장 잘 발라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스스로의 아픔을 인정해주고,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보듬어주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세요.
마음의 멍은 부끄러운 것이나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에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전쟁터 같은 세상을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자랑스러운 증거일 뿐이니까요.
괜찮다는 말 뒤에 숨겨둔 진짜 마음
우리는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요?
‘괜찮아’라는 말을 마치 나를 지켜주는 주문처럼, 혹은 자동응답기처럼 외우게 된 것이.
누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힘들지 않냐”고 물어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답하죠.
분명히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돌아서서 ‘괜찮아, 이럴 수도 있지’라며 스스로를 서둘러 다독여요.
‘괜찮다’는 말은 참 편리하고 안전한 방패 같아요.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들을 상대방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나 때문에 상대방을 걱정시키거나 불편하게 만들지 않아도 되니까요. 관계를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처럼 느껴지죠.
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괜찮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는지도 몰라요.
힘들다고 말하면 나약한 사람, 의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징징대는 사람, 불평만 많은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언제나 씩씩하게,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가면을요.
그 단단한 가면 뒤에서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눈물을 삼키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철저히 숨기죠.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그 가면을 너무나 오랫동안 쓰고 있던 나머지, 내 진짜 표정이 어땠는지 잊어버리기도 해요.
하지만 감정은 공기와 같아서, 덮어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요.
‘괜찮다’는 말로 억지로 덮어둔 감정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어두운 창고에 차곡차곡 쌓일 뿐이에요.
서운함, 억울함, 슬픔, 분노, 외로움.
제대로 된 이름 한번 불려보지 못하고, 햇빛 한번 보지 못한 감정들이 어둡고 축축한 창고 안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죠.
창고는 점점 비좁아지고, 더 이상 먼지 한 톨 넣을 수 없을 만큼 가득 차게 돼요.
결국 굳게 닫힌 문틈으로,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들이 비어져 나오기 시작하죠.
바로 그때,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괜찮다’는 튼튼한 방패와 가면 뒤에 꽁꽁 숨겨두었던 나의 진짜 마음이, 더는 그 좁은 창고에 숨어있을 수 없다고 소리치는 거죠.
‘나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아.’, ‘나 너무 힘들어, 지쳤어.’, ‘제발 나 좀 알아줘.’
눈물은, 차마 내 입으로 하지 못했던 내 진짜 속마음이에요.
한번 돌이켜볼까요?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괜찮다고 말하며 넘겨왔던가요.
다른 사람의 무례한 부탁도, 나를 향한 부당하고 억울한 평가도, 이미 한계에 다다른 지쳐버린 내 몸과 마음의 비명도.
모두 다 괜찮다고,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세뇌해왔던 건 아닐까요.
이제는 그 마법의 주문, ‘괜찮다’는 말을 잠시 멈춰도 좋아요.
그리고 내 마음의 어두운 창고 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어보세요.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수많은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어 따뜻한 햇볕을 쬐어주세요.
‘아, 너는 그때 그 서운함이었구나. 정말 많이 서운했지. 내가 몰라줘서 미안해.’
‘너는 외로움이었구나. 혼자 세상에 남겨진 것 같아 정말 무서웠지.’
잊혔던 감정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주고, 왜 그렇게 오랫동안 어두운 곳에 있어야만 했는지,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는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얼어붙었던 감정들은 봄눈처럼 스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할 거예요.
괜찮지 않을 때는,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정말 괜찮아요.
다른 누구에게도 아닌, 가장 먼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이에요.
‘나 오늘 좀 힘드네.’, ‘이건 좀 부당한 것 같아서 속상하다.’
이렇게 나의 진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그 순간,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다시 괜찮아질 수 있는 진짜 힘을 얻게 된답니다.
켜켜이 쌓아온 감정의 무게
아주 얇은 종이 한 장은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죠.
너무 가벼워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도 그 존재감을 느끼기 힘들고, 작은 바람에도 휙 하고 날아가 버리기도 해요.
어제 느꼈던 아주 작은 실망감, 오늘 아침 출근길의 작은 스트레스, 방금 들었던 기분 나쁜 말 한마디.
이런 사소한 감정들도 마치 이 얇은 종이 한 장과 같아요.
그 자체로는 너무 미미해서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죠.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뭘.’, ‘기분 나쁘지만 금방 잊어버리자.’ 하면서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 감정의 종이를 굳이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애쓰지 않아요. 그냥 마음 한쪽에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다음 날, 또 다른 감정의 종이 한 장이 생겨요. 어제의 종이 위에 살포시 그 종이를 올려놓죠. 어제와 마찬가지로 무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상황은 마찬가지예요.
하루에 한 장씩, 때로는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엔 여러 장씩 감정의 종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해서 쌓여갑니다.
하루 이틀은, 아니 한두 달은 그 무게를 전혀 느낄 수 없어요.
열 장, 스무 장, 오십 장이 쌓여도 아직은 가뿐하게 느껴지죠. 내가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 종이가 백 장, 이백 장, 어느새 천 장이 되면 어떨까요?
깃털처럼 가볍던 얇은 종이 뭉치는 어느새 두꺼운 백과사전보다, 길가의 단단한 돌덩이보다 더 무거워져 있을 거예요.
우리는 그 무게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요즘 따라 왜 이렇게 어깨가 무겁지?’, ‘발걸음이 왜 이렇게 힘들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에요.
이유 없이 몸이 축 처지고, 만사가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함에 빠지기도 하죠. 바로 그 감정의 무게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정체 모를 감정의 무게에 짓눌려 힘겹게 하루하루를 걸어가던 어느 날.
누군가 나의 어깨를 툭, 하고 정말 가볍게 건드려요. 혹은 아주 작은 돌부리에 발이 살짝 걸려요.
바로 그 순간, 와르르 하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거예요.
내가 그동안 위태롭게 지고 있던 그 무거운 종이 뭉치들이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며, 억눌려 있던 모든 감정들이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오는 거죠.
주변 사람들은,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의아해할 거예요.
그저 가볍게 어깨 한번 쳤을 뿐인데, 겨우 작은 돌부리에 걸렸을 뿐인데 왜 저렇게 세상이 무너진 듯 서럽게 우는 걸까.
하지만 그 눈물은 방금 전의 그 가벼운 터치 때문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내가 혼자서 묵묵히, 아무도 모르게 짊어지고 왔던 그 수천 장의 감정의 종이 무게 때문이죠.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동안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엄청난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아무렇지 않은 척 걸어오느라 얼마나 애썼을까요.
갑작스러운 눈물은 당신의 마음이 이제 더 이상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외치는 비명이에요.
‘제발 이 무거운 짐 좀 내려놓게 해줘.’ 라는 가장 간절한 외침이죠.
그러니 이제는 그만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도 괜찮아요. 아니, 내려놓아야만 해요.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감정의 종이들을 한 장씩, 아주 천천히 꺼내어 살펴봐 주세요.
이 종이에는 어떤 감정이 적혀 있는지, 언제부터 내 어깨 위에 쌓여 있었는지.
그저 바라봐 주고,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힘들었구나.’ 하고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종이는 한 장씩 마법처럼 가벼워져 바람에 날아갈 거예요.
오늘 당장 모든 짐을 다 버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건 너무 힘든 일이니까요.
오늘은 딱 한 장만, 지금 나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종이 한 장만 꺼내서 조용히 읽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내일 당신의 발걸음은 오늘보다 훨씬 더 가벼워질 거예요.
우는 건 약해서가 아니에요
어릴 적부터 우리는 이런 말을 귓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어요.
‘뚝 그쳐, 뚝! 남 앞에서 우는 건 나쁜 거야.’, ‘강한 사람은 절대 우는 게 아니야.’, ‘울면 문제가 해결되니?’
그래서 눈물이 나려고 하면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며 애써 눈물을 안으로 삼키는 법부터 배웠죠.
눈물은 나약함의 상징처럼,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 될 부끄러운 감정의 배설물처럼 여겨졌어요.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오래된 생각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어요.
그래서 눈물이 나면 당황하고, 남들 앞에서 우는 것은 큰 실례이며, 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죠.
혹시 내가 너무 약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정신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쉽게 눈물이 나는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탓하며 자책하기도 해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우는 것은 정말 약하다는 증거일까요?
아니요,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몰라요.
운다는 것은, 도망치지 않고 내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있다는 뜻이에요.
자신의 슬픔, 아픔, 억울함 같은 불편한 감정들을 외면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진심으로 울 수 있어요.
오히려 감정을 억누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는 것이 진정으로 강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한번 생각해보세요. 음식물 찌꺼기로 꽉 막힌 하수구는 어떻게 해야 뚫리나요?
강력하고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부어 그 안에 겹겹이 쌓인 찌꺼기들을 남김없이 씻어내야 하죠.
우리의 마음도 정확히 같아요.
가슴속에 꽉 막혀 있던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들은, 눈물이라는 가장 깨끗하고 시원한 물줄기로 씻어내야만 해요.
눈물은 마음의 하수구를 청소해주는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역할을 하는 거예요.
실컷 울고 나면 머리는 좀 띵하지만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죠. 마음의 독소가 빠져나간 거예요.
또한 과학적으로도 눈물은 우리 몸이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낸 놀라운 생리적 물질이기도 해요.
특히 감정적으로 힘들 때 흘리는 눈물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고 해요.
즉, 우는 행위는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우리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돕는 매우 적극적인 치유의 과정인 셈이에요.
몸이 아플 때 열이 나서 몸속의 나쁜 균과 싸우는 것처럼, 마음이 아플 때는 눈물이 나서 우리를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와 싸워주는 거죠.
그러니 눈물이 나려고 할 때,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거나 억지로 참지 마세요.
‘나는 약하지 않아. 지금 내 마음을 대청소하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을 바꿔보세요.
‘내 몸이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치료하고 있는 중이구나.’ 하고 오히려 기특하게 여겨주세요.
우는 것은 패배 선언이 아니에요.
오히려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건강하고 지혜로운 회복의 과정이에요.
혼자 있을 수 있는 조용한 공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슬픈 음악을 틀어놓고 마음껏 울어보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시간을 정해두지도 않고, 오롯이 나만의 슬픔을 위해, 내가 외면했던 감정들을 위해 진심으로 울어주는 시간.
그 시간은 당신에게 그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 더 값진 치유의 선물이 될 거예요.
실컷 울고 난 뒤, 당신은 한 뼘 더 단단해지고 맑아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기억하세요. 우리는 약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강해지기 위해 우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몸이 마음에게 보내는 다급한 신호
아직 말을 배우기 전의 아기들은 어떻게 자신의 상태와 요구를 부모에게 알리나요?
배가 고파도, 기저귀가 젖어서 불편해도, 졸려도, 어디가 아파도 그저 ‘울음’으로 표현하죠.
울음은 아기가 엄마에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한 신호예요.
‘엄마, 나 좀 봐주세요. 제가 지금 매우 불편해요. 저를 좀 도와주세요.’ 라는 의미죠.
우리 마음도 이 말 못 하는 아기와 같아요.
마음은 입이 없어서 직접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대신, 우리의 ‘몸’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죠.
마음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주인님,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제발 좀 알아주세요.’ 하고 말이에요.
병원에 가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적인 두통, 툭하면 체하고 더부룩한 소화불량,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묵직한 통증, 잠들기 어려운 불면증.
이 모든 것이 마음이 몸을 스피커 삼아 보내는 신호일 수 있어요.
그리고 갑작스럽게, 아무런 이유 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은, 그 수많은 신호들 중에서도 가장 다급하고 가장 절박한 ‘최고 수준’의 신호예요.
마치 아기가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우는 것과 같죠.
그동안 보냈던 작은 신호들을 주인이 계속 무시했더니,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보내는 마지막 비상 경고등 같은 거예요.
‘더 이상은 저 혼자 버틸 수가 없어요! 제발 제 목소리 좀 들어주세요! 이러다간 정말 다 망가져요!’
우리는 보통 이런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싶어 해요. 혹은 다른 원인을 찾으려고 하죠.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요즘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일시적으로 그런가 보다.’, ‘나이가 들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네.’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진통제 한 알로, 혹은 잠시의 휴식으로 넘어가려고 하죠.
하지만 자동차 계기판에 엔진오일 교체하라는 빨간 경고등이 켜졌는데, 그걸 무시하고 계속해서 고속도로를 달리면 어떻게 될까요?
언젠가는 차가 길 한복판에 완전히 멈춰 서 버리고 말 거예요. 그때는 수리비가 훨씬 더 많이 들겠죠.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계속해서 보내오는 경고 신호를 무시하면, 어느 날 정말로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어 침대에서 일어날 힘조차 없는 완전한 번아웃 상태에 빠질 수 있어요.
그러니 갑작스러운 눈물이라는 이 강력한 신호를 절대로 무시하지 마세요.
‘아, 내 마음이 지금 나에게 아주 중요하고 다급한 할 말이 있구나.’ 하고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주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물어봐 주는 거예요.
‘마음아, 무슨 일이니? 뭐가 그렇게 힘들어? 내가 뭘 몰라줘서 이렇게 서럽게 우는 거야?’
대답이 바로 또렷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어요.
너무나 오랫동안 외면당해서, 마음이 단단히 삐져서 입을 꾹 다물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괜찮아요. 포기하지 말고 계속 물어봐 주세요.
그저 관심을 가져주고, 알아주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안심하고 경계를 풀기 시작할 거예요.
‘아, 드디어 내 주인이 내 목소리를 들어주려고 하네.’ 하고요.
몸이 보내는 신호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더 큰 위험에 빠지기 전에 우리를 지키기 위한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경고 시스템이죠.
눈물이 날 때, ‘나 왜 이래, 짜증나게’ 하고 화를 내는 대신, ‘알았어, 신호 잘 받았어. 이제 너를 돌봐줄게.’ 하고 내 마음에게 다정하게 답해주세요.
그리고 잠시 모든 것을 멈춰서, 내 마음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정비 시간을 가져주세요.
그것이 내 마음의 엔진이 완전히 멈춰 서는 최악의 상황을 막는 가장 현명하고 유일한 방법이에요.
눈물이 흐를 땐, 잠시 멈춰도 괜찮아
우리는 늘 앞으로, 더 빨리 나아가야 한다고 배워왔어요.
멈추면 뒤처지는 것이고, 쉬면 게으르고 나태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법칙처럼요.
그래서 슬플 때도, 힘들 때도,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쳤을 때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어요.
눈물이 나도 눈가를 소매로 슬쩍 훔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죠.
마치 결승선만 보고 달려가는 마라톤 선수처럼, 오직 목표만을 향해 달려왔는지도 몰라요.
내 다리가 얼마나 아픈지, 심장이 얼마나 터질 듯이 뛰는지, 숨이 얼마나 턱까지 차올랐는지는 애써 무시하면서요.
그러다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눈물이 와르르 쏟아지는 건, 우리 몸과 마음이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강제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과 같아요.
더 이상은 단 한 걸음도 달릴 수 없으니, 제발 여기서 잠시만 멈춰달라고, 쉬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거죠.
이럴 땐, 정말로 잠시 멈춰 서도 괜찮아요. 괜찮고 말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어도 괜찮아요.
세상은 내가 잠시 멈춘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아요.
내가 하루쯤 쉰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저만치 앞질러 영원히 도망가지도 않아요. 그건 우리의 불안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에요.
오히려 잠시 멈춰 서서 가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면,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예쁜 들꽃,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무엇보다, 헉헉거리며 힘겹게 여기까지 뛰어온 기특한 내 자신을 비로소 제대로 마주하고 보듬어줄 수 있게 되죠.
눈물이 흐를 때, 억지로 그치게 하려고, 빨리 털어내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냥 흐르도록, 마음껏 흐르도록 내버려 두세요.
흐르는 눈물은 마치 마라톤 중간 급수대에 마련된 시원한 이온음료 한잔과 같아요.
목마르고 지친 나를 위로하고, 탈진하지 않도록 수분을 보충해주고, 다시 남은 길을 걸어갈 힘을 주죠.
물론 멈춰 서 있는 동안, 해야 할 일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머릿속에 떠오를 수 있어요.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하는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수도 있죠.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에요.
그럴 땐 마음속으로 이렇게 단호하게 말해주세요.
‘괜찮아, 지금은 잠시 쉬는 시간이야. KTX 같은 급행열차도 다음 역에 무사히 가려면 잠시 멈춰서 승객을 태우고 내려야 해.’
잠시 멈춰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결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앞으로 더 멀리, 더 잘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정비’의 시간이죠.
자동차 타이어에 바람이 빠졌는데, 그걸 무시하고 계속 달릴 수는 없잖아요. 사고가 날 게 뻔하니까요.
잠시 안전한 곳에 멈춰서 바람을 든든하게 채워 넣어야 더 멀리, 더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것처럼요.
지금 당신의 눈물은, 펑크 난 마음에 새로운 공기를 채워 넣는 소중한 시간이에요.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충분히 쉬어주세요. 마음껏 울어주세요.
눈물이 그치고 마음이 조금이라도 진정되면, 그때 다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어나 한 걸음만 내디뎌 보면 돼요.
분명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그리고 단단해진 발걸음으로 다시 걸어갈 수 있을 거예요.
기억하세요. 멈추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라는 것을요.
지친 마음을 위한 아주 작은 응급처치
갑자기 길에서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을 때, 우리는 보통 어떻게 하나요?
일단 흐르는 피를 깨끗한 휴지로 닦고, 약국에 가서 소독약을 바르고,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반창고나 밴드를 붙여주죠.
병원에 가는 거창한 치료는 아니지만, 상처가 덧나거나 세균에 감염되는 것을 막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응급처치예요.
마음이 울컥하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을 때도, 바로 이런 작고 즉각적인 응급처치가 반드시 필요해요.
너무 거창하고 어려운 걸 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요. 지금 당장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에요.
지금 당장,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이면 충분합니다.
첫 번째 응급처치는 ‘따뜻한 것’과 만나게 해주는 것이에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거나, 대야에 물을 받아 족욕을 하는 것도 좋아요. 따뜻한 찻잔이나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가만히 감싸 쥐고 그 온기를 느껴보세요. 포근하고 부드러운 담요로 몸을 감싸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에요.
예를 들어, 퇴근 후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딱 10분만이라도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보세요. 하루 종일 당신의 무거운 몸을 지탱해 준 발의 피로를 풀어주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의 긴장도 함께 스르르 녹아내릴 겁니다. 이는 물리적인 온기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두 번째 응급처치는 ‘숨’에 집중해보는 것이에요.
편안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천천히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하나, 둘, 셋, 넷), 잠시 멈춘 뒤, 더 천천히 입으로 내쉬어보세요(하나부터 여덟까지). 오직 코로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고, 입으로 따뜻한 공기가 나가는 그 감각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거예요.
복잡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힐 때, 이렇게 호흡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잠시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어요. 이것은 ‘지금, 여기’의 나로 돌아오는 가장 간단하고 강력한 연습입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닌, 살아있는 현재의 내 호흡을 느끼는 거죠.
세 번째 응급처치는 ‘좋아하는 향기’를 맡는 것이에요.
평소 좋아하던 향초를 켜거나, 아로마 오일 한 방울을 손수건이나 휴지에 떨어뜨려 코 가까이에서 깊게 향을 맡아보세요. 혹은 갓 내린 커피 향, 비 오는 날의 흙냄새, 뽀송하게 마른 빨래 냄새도 좋아요.
예를 들어, 라벤더 오일 한 방울을 베개에 떨어뜨리고 잠자리에 들어보세요. 후각은 다른 감각과 달리 우리 뇌의 감정 중추인 변연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좋은 향기는 즉각적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분을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마치 다정한 친구가 내 곁에서 괜찮다고 속삭여주는 것 같은 효과를 줄 거예요.
네 번째는 아주 ‘단순한 일’에 몰두해보는 것입니다.
어지러운 책상 위 물건들을 제자리에 정리하기, 콩나물이나 시금치 다듬기, 어른들을 위한 컬러링북 색칠하기, 흩어진 옷이나 양말을 차분히 개기 같은 것들이죠.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작업은, 우리를 끝없는 자기 비난이나 불안한 감정의 수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훌륭한 탈출구가 되어줍니다. 작은 결과물(깨끗해진 책상, 다듬어진 콩나물)을 통해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귀한 선물이구요.
이런 것들이 너무 사소하고 유치하게 느껴지나요?
하지만 응급처치란 원래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이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있다’는 그 마음과 행동 자체예요.
‘이렇게 지쳐버린 나를 내가 돌보고 있구나’ 하는 그 따뜻한 느낌을 받는 것이 세상 그 어떤 명약보다 좋은 치료제랍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딱 한 가지만이라도 골라서 지친 자신에게 선물해보세요.
그 작은 행동 하나가 무너진 마음에 붙이는 가장 따뜻하고 튼튼한 반창고가 되어줄 거예요.
다시 맑은 하늘을 기다리는 법
장마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는 온 세상이 잿빛으로 보이죠.
하늘은 온통 무거운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고, 늘 그 자리에 있던 태양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아요.
창문을 두드리는 거센 빗줄기를 보고 있으면, 이 비가 영원히 그치지 않고 온 세상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막막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마음이 무너져 눈물이 쏟아질 때도 꼭 그런 기분이에요.
내 마음속 하늘이 온통 슬픔이라는 먹구름으로 뒤덮여, 단 한 줄기의 희망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것 같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어둡고, 춥고, 축축한 상태로 살아가야 할 것만 같아 덜컥 두려워져요.
하지만 우리는 머리로는 모두 알고 있어요.
아무리 세차게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쳐도, 그 비는 언젠가 반드시 그친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요.
그리고 비가 그치고 나면,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짓말처럼 눈부시게 맑아진다는 것도요.
오히려 비 온 뒤의 하늘은 공기 중의 온갖 먼지가 깨끗하게 씻겨나가, 평소보다 더욱 투명하고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죠. 무지개라는 예쁜 선물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우리의 마음도 이 자연의 이치와 똑같아요.
지금 당장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내 마음이 온통 잿빛이라고 해서,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이 눈물은 내 마음의 하늘에 잔뜩 낀 먹구름이 쏟아내는 자연스러운 비와 같아요.
구름이 품고 있던 비를 모두 쏟아내고 나면, 자연스럽게 무게를 잃고 흩어지며 사라지게 될 거예요.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억지로 비를 멈추게 하려고 하늘을 향해 소리치거나 애쓰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며, 에너지만 낭비할 뿐입니다.
그저 비가 충분히 내릴 수 있도록, 안전한 처마 밑 같은 곳에서 비를 피하며 조용히 기다려주는 거예요.
예쁜 우산을 쓰고, 따뜻한 실내에 앉아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처럼요.
‘그래, 지금은 내 마음에 비가 오는 시간이지. 이 비도 곧 그치겠지.’ 하고 담담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조급하게 ‘왜 비가 안 그치지?’, ‘언제까지 올 거야?’ 하고 하늘을 원망하면 마음만 더 지치고 힘들어져요.
예를 들어, “지금 내 마음은 장마철에 들어섰구나. 한여름에 눈이 오길 바랄 수는 없지. 당장 맑아지길 바라기보다, 그냥 젖지 않게 우산을 잘 쓰고 이 비가 지나가길 기다려주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거예요. 감정과 싸우는 대신,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물론, 이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고 몇 주, 몇 달 동안 비가 그치지 않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마음의 홍수가 계속된다면, 그때는 혼자 기다리기보다 전문가라는 ‘기상 예보관’의 도움을 청해야 할 때일 수 있습니다. 이는 나약함이 아니라,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비를 기다리는 동안, 작은 창문으로 비가 그친 뒤의 맑은 하늘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아요. 분명 뜰 무지개를 기대해보는 것도 좋고요.
‘이 시간이 지나면 내 마음이 얼마나 더 깨끗해질까’, ‘이 눈물이 내 마음속의 묵은 먼지들을 얼마나 시원하게 씻어주고 있을까’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는 거예요.
이것은 막연히 희망을 가지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에요.
그저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자연의 순리를, 내 마음에도 적용하며 믿어보자는 이야기예요.
봄이 오면 기나긴 겨울이 가고, 깊은 밤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오는 것처럼, 당신의 마음에도 반드시 눈부시게 맑은 날이 찾아올 거예요.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지금, 더 맑아지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과정을 지나고 있을 뿐이니까요.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의 빗소리를 감상하듯, 지금의 눈물을 그저 묵묵히 지켜봐 주세요.
어느새 빗줄기는 가늘어지고,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햇살 한 줄기가 당신의 얼굴 위로 비치기 시작할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먼저, 나를 안아주세요
어린아이가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져 피를 흘리며 울고 있을 때,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러게, 내가 왜 조심하지 않았어!’ 라는 날카로운 꾸중일까요?
‘그만 울고 뚝 그쳐! 훌훌 털고 얼른 일어나!’ 라는 차가운 다그침일까요?
절대 아니죠.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달려와서 따뜻하게 안아주며 ‘우리 아기, 많이 아팠지. 괜찮아,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위로의 목소리예요.
그 안전한 품 안에서 아이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고, 서러운 울음을 그치고,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게 되죠.
우리 마음이 소리 내어 울고 있을 때도 정확히 똑같아요.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세상이 무너진 듯 서러울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따뜻한 포옹이에요. 스스로를 꾸짖거나 다그치는 냉정한 채찍질이 아니라요.
‘왜 이것밖에 못 참아?’, ‘정신 좀 차려, 이렇게 나약하게 굴지 마.’, ‘다들 너보다 힘들어.’
이상하게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나 엄격하고 차가운 재판관이 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지금 당신의 마음은 날카로운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엄마의 품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어요.
지금 한번, 두 팔로 당신 자신을 꼭 감싸 안아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여주는 거예요.
‘그동안 정말 애썼다.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많이 힘들었구나. 내가 너무 무심해서 너의 아픔을 몰라줘서 정말 미안해.’
‘괜찮아, 지금은 마음껏 울어도 괜찮아. 내가 네 옆에 꼭 붙어 있어 줄게.’
예를 들어,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조용히 걸터앉아 실제로 두 팔로 나를 감싸 안고 등을 토닥여보세요.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 중 가장 속상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 정말 속상했지.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최선을 다했어.’ 하고 소리 내어 말해주는 거예요.
처음에는 매우 어색하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색함을 참고 며칠만 꾸준히 해보면, 내면에서 나를 지지해주는 단단한 기둥이 생겨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이는 자기 비판이 아닌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을 훈련하는 과정이며,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해도 괜찮아요. 설령 그렇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 사람, 바로 나 자신이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의 위로는 잠시의 힘이 될 수는 있지만, 결국 나를 진흙탕 속에서 일으켜 세우는 가장 근본적인 힘은 나 자신에게서 나와요.
스스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 마음에서부터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될 수 있어요.
오늘 하루,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냈나요?
어떤 일들로 소소하게 웃고, 어떤 뾰족한 말들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나요?
당신의 마음속에는 오늘 또 어떤 감정의 종이들이 쌓였나요?
잠들기 전, 단 1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오늘 하루라는 낯선 전쟁터를 살아내느라 고생한 나 자신을 꼭 안아주세요.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당신은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라고 몇 번이고 말해주세요.
나를 가장 먼저, 가장 따뜻하게 안아주는 습관.
그것이 바로 마음의 댐을 튼튼하게 유지하고, 보이지 않는 멍들을 매일매일 치료하는 가장 강력하고 부작용 없는 약이랍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만이 당신의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위로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그 품으로, 오늘 밤은 스스로를 꼭, 그리고 오래 안아주세요.
어쩌면 당신의 눈물은 단순한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그동안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가여운 자기 자신을 향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던 단단한 겉모습과 달리, 당신의 진짜 마음은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서 너무 오랜 시간 외롭게 떨고 있었을 테니까요.
괜찮아요. 이제라도 알아차렸으니 정말 다행이에요. 그 고마운 눈물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질주를 멈춰 서서 내 마음의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게 되었잖아요.
이 눈물은 당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자랑스러운 증거입니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도 마세요.
이제부터는 아주 작은 빛 하나를 내 손으로 켜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캄캄한 방 전체를 대낮처럼 밝히려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그저 비틀거리는 내 발밑을 안전하게 비출 작은 촛불 하나면 충분해요. 그 촛불은 앞서 말한 따뜻한 차 한 잔일 수도, 위로가 되는 노래 한 곡일 수도, 나 자신을 향한 다정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습니다.
그 작지만 소중한 빛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마음에도 어둠을 밀어내는 환한 아침이 찾아와 있을 거예요. 당신의 가을이, 비록 뜻하지 않은 눈물로 시작되었을지라도 그 끝은 더없이 따뜻하고 풍요롭기를, 이 글을 통해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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