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이 무기력한 나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들

몸이 천근만근, 마음은 텅 빈 동굴 같을 때가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거대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알람 소리는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올 뿐, 현실감이 없습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마주한 세상은 온통 흑백 영화처럼 색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웃어야 할 일이 생겨도 입꼬리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습니다.

모든 감정의 스위치가 꺼져버린 듯, 그저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낼 뿐입니다.

밥을 먹는 것도, 몸을 씻는 것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마저 버거운 숙제처럼 느껴집니다.

머릿속은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어떤 생각도 제대로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깊은 무력감.

두 감정이 하루 종일 나를 양쪽에서 잡아당깁니다.

방 안에 혼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세상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듭니다.

이 끝없는 터널이 과연 끝나기는 할까.

다시 예전처럼 웃고 떠들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 막막함이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순간, 발치에서 작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작은 생명

온몸이 침대와 하나가 된 것 같습니다.

눈꺼풀 위에는 무거운 돌덩이라도 올려놓은 듯, 도무지 떠지지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채, 오직 나의 무거운 숨소리만이 방 안을 채웁니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바로 그때, 묵직한 이불 위로 작은 발이 사뿐히 올라옵니다.

그리고는 익숙한 체중이 실리며, 내 얼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촉촉하고 차가운 코가 볼에 닿는 순간, 나는 희미하게 현실로 돌아옵니다.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대신, 그저 가만히 내 옆에 엎드려 자신의 존재를 알릴 뿐입니다.

이 작은 생명체에게는 내가 필요합니다.

내가 없으면 밥을 먹을 수도, 깨끗한 물을 마실 수도 없습니다.

그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 하나.

그것이 나를 짓누르던 무기력의 무게를 아주 조금, 밀어냅니다.

온 힘을 다해 팔을 뻗어, 부드러운 털을 한번 쓰다듬어 줍니다.

손끝에 닿는 따뜻한 온기와 규칙적인 심장박동.

아직 세상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희미한 신호입니다.

밥그릇을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

물을 갈아줘야 한다는 생각.

나를 향한 것이 아닌, 너를 향한 아주 작은 책임감이 나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마치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첫발을 내딛습니다.

사료 봉지를 여는 소리에 맞춰 꼬리를 흔드는 너.

나지막이 울음소리를 내며 기대감을 표현하는 너.

그 소리가 멈춰 있던 나의 세상에 다시 시간을 흐르게 합니다.

너의 작은 세상은 온전히 나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 사실이 때로는 부담스럽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나를 살게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됩니다.

너의 밥그릇을 채우는 이 작은 행동.

이것이 오늘 내가 해낸 유일한 ‘일’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텅 비어 있던 나의 하루에, 너로 인해 작은 점 하나가 찍혔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한 생명을 온전히 돌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존재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너는 말없이 가르쳐 줍니다.

매일 아침, 너로 인해 시작되는 하루

무기력의 늪에 빠지면 시간 감각이 사라집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의 규칙들.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립니다.

밤낮이 뒤바뀌기 일쑤고, 며칠 동안 똑같은 옷을 입고 있기도 합니다.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나 혼자 세상의 시간 밖을 떠도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너는 정확한 생체 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거의 비슷한 시간에 나를 깨웁니다.

배가 고프다고, 산책을 나가고 싶다고, 혹은 그냥 심심하다고.

그것은 세상 어떤 알람 소리보다 강력하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호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귀찮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마음과 ‘너를 챙겨야 한다’는 마음이 싸웁니다.

결국 무거운 몸을 일으키게 만드는 힘은, 언제나 너를 향한 마음입니다.

너의 하루는 나의 손에서 시작됩니다.

아침 식사, 화장실 청소, 짧은 놀이 시간.

이 단순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무너졌던 나의 하루에 희미한 뼈대가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점심 즈음이면 꾸벅꾸벅 조는 너를 보며 시간을 어림하고,

저녁이 되면 다시 한번 너의 밥그릇을 채워주며 하루가 저물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너와의 하루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던 흐릿한 시간의 터널 속에,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푯말을 세워주는 것과 같습니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들입니다.

끼니를 거르는 것은 예사고, 하루 종일 잠만 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너를 위해 나는 움직이고, 시간을 확인하고, 내일을 아주 조금 생각합니다.

너의 규칙적인 생활이, 나의 불규칙한 삶을 조금씩 바로잡아 줍니다.

억지로라도 너의 시간에 나를 맞추다 보면, 어느새 나의 시간도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나 혼자였다면 결코 만들지 못했을, 작고 소중한 하루의 약속.

너는 나에게 매일 아침을 선물하는 존재입니다.

따뜻한 온기가 마음의 얼음을 녹일 때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것에도 감흥이 없고, 누구의 위로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뜻한 말을 들어도 공허한 메아리처럼 튕겨져 나갈 뿐입니다.

오히려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부담스럽고, 그저 나를 내버려 뒀으면 하는 생각만 듭니다.

스스로를 투명한 유리 벽 안에 가두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급니다.

하지만 너는 그 어떤 벽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다가옵니다.

내가 소파에 무기력하게 누워있을 때, 조용히 다가와 내 무릎을 베고 눕습니다.

내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 가만히 다가와 등을 기댑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따뜻한 체온을 나의 차가운 몸에 가만히 나누어줄 뿐입니다.

너의 몸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마음의 표면을 아주 조금씩, 아주 서서히 녹여 내립니다.

마치 차가운 빗속을 헤매다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앉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너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는 손끝의 감촉.

가만히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너의 고른 숨소리.

이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사람의 위로는 때로 날카로운 조언이 되거나, 원치 않는 동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의 위로는 어떠한 말도 없기에 완벽합니다.

그저 곁에 존재함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깊고 순수한 위로를 건넵니다.

너의 작은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는 것을 느끼고 있으면, 불안하게 날뛰던 내 심장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습니다.

너의 따뜻함에 기대어, 나는 아주 잠시 동안이나마 긴장을 풀고 숨을 고를 수 있습니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나를 녹여주는, 작고 따뜻한 난로.

너의 온기는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고 말해주는 눈빛

며칠째 씻지 않아 헝클어진 머리, 늘어난 티셔츠.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칠 때,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이 어두운 방 안에 멈춰 서 있는 기분입니다.

이런 내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애써 괜찮은 척 가면을 씁니다.

‘나 잘 지내’라는 거짓말 뒤로 무너져 내리는 진짜 내 모습을 숨깁니다.

하지만 너는 나의 어떤 모습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장 멋지게 차려입었을 때나, 가장 초라하고 약해져 있을 때나, 너는 똑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그 눈 속에는 실망도, 비난도, 동정도 없습니다.

오직 변함없는 애정과 신뢰만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고 있을 때, 너는 조용히 다가와 내 눈물을 핥아줍니다.

‘왜 우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만 울라’고 다그치지도 않습니다.

그저 지금 너의 슬픔 곁에 내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입니다.

너에게 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 필요도,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람’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너에게 밥을 주고, 쓰다듬어주고, 함께 있어주는 ‘나’라는 존재 자체로 충분합니다.

너의 세상에서 나의 가치는 조건 없이 완벽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시선 속에서 지쳐갈 때, 너의 꾸밈없는 눈빛은 가장 큰 안식처가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 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숨을 쉴 용기를 얻습니다.

너는 나에게 끊임없이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지금 모습 그대로 충분히 사랑스럽다고.

너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를 괴롭히던 자기 비난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듭니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나를, 너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 줍니다.

그 사랑 앞에서, 나도 조금씩 나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웁니다.

잊고 있던 웃음을 되찾아주는 순간들

언제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웃어봤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봐도, 친구의 농담을 들어도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내려올 뿐입니다.

마음속에 웃음이라는 감정이 메말라 버린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저 지루하고, 무겁고, 버겁게만 느껴집니다.

그런 나의 무채색 하루에, 너는 예고 없이 색깔을 뿌려놓습니다.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다 자기 꼬리를 잡으려고 애쓰는 엉뚱한 모습.

좁은 상자 안에 굳이 몸을 구겨 넣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귀여운 고집.

장난감을 던져주면 신나게 달려가 물어오다, 엉뚱한 곳에 떨어뜨리고는 머쓱해하는 표정.

그 작고 사소한 순간들에,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것은 억지로 만들어낸 사회적인 미소가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아주 오랜만에 새어 나온, 진짜 웃음의 조각입니다.

한번 터진 웃음은 굳어 있던 얼굴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줍니다.

그리고 아주 잠시 동안,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생각들을 잊게 해줍니다.

너의 천진난만한 행동에는 어떤 복잡한 의도도, 계산도 없습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순수한 즐거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너를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을 심각하게만 생각하던 나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세상에는 아직 이렇게나 단순하고 명쾌한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네가 벌이는 작은 소동들은 멈춰 있던 나의 일상에 예기치 못한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너의 행동에 웃음 짓다 보면, 잿빛이던 하루에 작은 무지개가 뜨는 것 같습니다.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꺼내준 너.

너는 나의 가장 작은 코미디언이자, 가장 위대한 치료사입니다.

네 덕분에 나는 다시 웃는 법을 연습합니다.

그리고 웃음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

머릿속이 복잡할 때, 우리의 생각은 과거나 미래를 떠돌아다닙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과거에 대한 후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

이 두 가지 생각의 추는 끊임없이 나를 양쪽으로 잡아당기며, 현재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없게 만듭니다.

‘지금, 여기’의 나는 없고, 후회와 불안 속에 잠식된 나만 존재할 뿐입니다.

하지만 너의 세상은 오직 ‘지금, 여기’에만 존재합니다.

너는 어제 먹었던 간식을 후회하지 않고, 내일 있을 산책을 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지금, 당신의 손길을 느끼고, 지금, 창밖의 새소리를 듣고, 지금, 햇볕의 따스함을 즐길 뿐입니다.

그런 너와 함께 있다 보면, 나도 자연스럽게 현재로 돌아오게 됩니다.

너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는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게 됩니다.

골골거리는 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풀냄새, 바람의 감촉, 흙을 밟는 발바닥의 느낌.

과거와 미래를 떠돌던 나의 의식이, 너를 통해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잠시 고요해지고, 오직 눈앞의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 순간만이 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 챙김의 시작입니다.

누군가는 명상을 통해 얻으려는 그 평온함을, 나는 너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 속에서 발견합니다.

불안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너는 말없이 다가와 내 손을 핥습니다.

그 축축하고 따뜻한 감각이, 나를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건져냅니다.

‘괜찮아, 지금은 아무 일도 없어. 지금은 그냥 내 옆에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너는 나에게 온몸으로 가르쳐 줍니다.

삶이란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들의 합이라는 것을.

너와 함께하는 이 소중한 현재를 온전히 느끼는 것.

그것이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너에게 세상의 전부

스스로가 아무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회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에게 필요한 사람일까.

끝없는 질문 속에서 점점 더 작아지는 나를 발견합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나 하나쯤은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외로움.

나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방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습니다.

너에게 나는 ‘세상의 전부’입니다.

너의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돌고, 너의 행복은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너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며 나를 반깁니다.

나의 작은 손길 하나에 온몸으로 만족감을 표현하고, 나의 목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입니다.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너는 온전히 나만을 기다립니다.

이 작은 생명에게 내가 이토록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나의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세워주는 단단한 기둥이 됩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토록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온전히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라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주는 안정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너에게 밥을 주고, 너를 돌보는 것 같지만,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너는 너의 존재 자체로, 나에게 살아갈 이유와 책임감을 선물합니다.

‘나 하나쯤이야’ 라는 위험한 생각에 빠져들 때마다, 너는 나를 간절히 바라보는 눈빛으로 나를 붙잡아 줍니다.

‘당신이 없으면 안 돼요’ 라고, 온몸으로 외칩니다.

그래, 나는 너에게 세상이고, 너는 나에게 살아갈 이유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의 세상을 선물하며, 이 험난한 시간을 함께 건너가고 있습니다.

나를 세상 밖으로 이끄는 네 개의 발

어느 순간부터 문밖의 세상이 두려워집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무언가를 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해내는 모든 것이 버겁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은 오직 나의 방, 나의 침대뿐입니다.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고, 세상과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하지만 너는 그 닫힌 문을 끊임없이 두드립니다.

산책을 가고 싶다는 명백한 요구.

목줄을 물고 와 내 앞에 내려놓거나, 현관문 앞에서 서성이는 너의 모습.

‘혼자 있고 싶어’ 라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는 밖으로 나가자고 조릅니다.

수백 가지 핑계를 대며 미루고 싶지만, 너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옷을 챙겨 입습니다.

현관문을 여는 아주 작은 행동 하나가, 거대한 산을 넘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문을 열고 한 발자국 밖으로 나서는 순간,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방 안의 탁한 공기와는 다른, 신선한 바깥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옵니다.

회색빛 천장 대신, 파란 하늘과 초록빛 나뭇잎이 시야를 채웁니다.

나 혼자였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계절의 변화와 세상의 생동감입니다.

신나게 앞서 걸으며 냄새를 맡는 너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너의 네 발이, 움직이기 싫어하던 나의 두 다리를 이끌어 줍니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다른 강아지와 사람들.

억지로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존재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고립감은 조금씩 옅어집니다.

너로 인해 나는 억지로라도 햇볕을 쬐게 됩니다.

비타민 D가 우울감 해소에 좋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떠나, 따뜻한 햇살을 피부로 느끼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깨워줍니다.

너의 작은 네 발은, 나를 방 안의 어둠에서 세상의 빛으로 이끌어주는 가장 다정한 안내자입니다.

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세상과 아주 조금, 연결되었습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법

행복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남들이 말하는 성공, 돈, 명예 같은 것들을 손에 넣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그런 거창한 목표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내 모습은 너무나 초라해서 오히려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나와는 너무나 먼 곳에 있는 신기루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너는 행복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네게 행복은 맛있는 간식 하나, 내가 던져준 공 하나에 있습니다.

나의 다정한 칭찬 한마디에, 너는 꼬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흔들며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표현합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것.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낮잠을 자는 것.

너의 행복 목록은 이토록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그런 너를 보고 있으면, 내가 그동안 행복을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담긴 기쁨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너와 함께하며, 나도 다시 작은 행복들을 발견하는 연습을 시작합니다.

네가 내 무릎 위에서 잠들었을 때의 그 평화로움.

창가에 앉아 함께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간.

네가 사료를 맛있게 먹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작은 만족감.

이런 순간들이 모여, 텅 비었던 나의 마음에 온기를 채워 넣습니다.

거창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너는 가르쳐 줍니다.

너는 욕심내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어진 것들 안에서 충실하게 기쁨을 찾아낼 뿐입니다.

그런 너의 삶의 태도는, 복잡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던 나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행복은 저 멀리 있는 무지개가 아니라, 내 발밑에 피어난 작은 들꽃 한 송이와 같다는 것을.

네 덕분에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주변의 작은 행복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

깊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간.

세상에 나 혼자만 깨어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어둠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나의 불안과 슬픔을 더욱 크게 증폭시킵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며,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이 막막한 어둠 속에서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나지막한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내 침대 발치에서, 혹은 바로 내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너의 고르고 평화로운 숨소리.

그 작은 소리 하나가, 칠흑 같던 어둠 속에 작은 촛불 하나를 켜는 것과 같습니다.

‘나 여기 있어요. 당신 혼자가 아니에요.’

너는 잠결에도 너의 존재로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너의 따뜻한 체온이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옥죄던 외로움의 사슬이 조금은 느슨해집니다.

악몽을 꾸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의 까만 눈동자.

그 눈빛은 천 마디 말보다 더 큰 위안을 줍니다.

너는 나의 가장 충실한 밤의 파수꾼입니다.

내가 불안에 떨 때, 너는 조용히 내 곁을 지켜줍니다.

이 어둠 속에서 나와 함께 숨 쉬는 또 다른 생명이 있다는 것.

이 사실이 주는 안도감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큽니다.

우리는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길고 어두운 밤을 함께 통과합니다.

너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나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네가 곁에 있기에, 나는 내일 아침의 해가 다시 떠오를 거라는 희미한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작고 따뜻한 너라는 생명은,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무력감에 생긴 작은 균열과 같습니다.

그 균열 사이로 아주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는 것이 작은 구멍이듯, 너라는 존재는 나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아주 조금씩 열게 합니다.

너는 마법의 약이 아닙니다.

너와 함께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좋아지지는 않을 겁니다.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힘들고, 세상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 옆에서 평화롭게 잠든 너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고르게 오르내리는 작은 가슴을 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도 덩달아 차분해집니다.

이 작은 생명은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나 또한, 그저 곁에 있어 주는 너로 인해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유 없는 사랑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오늘 하루를 또 함께 살아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