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온몸을 휘감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말입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버스 창밖을 보다가, 혹은 잠들기 위해 누웠다가… 갑자기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은 멀어집니다. 내 안에서 울리는 거대한 파도 소리만이 모든 것을 집어삼킵니다.
숨을 쉬려고 해봐도 공기 대신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목구멍을 막아서는 것 같고, 눈을 꽉 감아도 눈꺼풀 안쪽으로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의 파편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옵니다.
누군가에게 이 마음을 설명하고 싶어도 도저히 어떤 단어를 골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힘들다고 말하기엔 너무 복잡합니다. 슬프다고 하기엔 분노가 섞여 있고, 화가 난다고 하기엔 너무나 서럽습니다.
마치 온갖 색의 물감을 커다란 통에 한꺼번에 쏟아부어, 결국 무슨 색인지 알 수 없는 검은색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저 이 거대한 감정의 파도가 어서 빨리 지나가 주기만을, 이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나를 놓아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꼼짝없이 온몸으로 그 파도를 견뎌내면서 말입니다.
내 안에 거대한 파도가 일 때
감정의 파도는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맑고 잔잔하던 마음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스스로도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 당황스럽습니다.
분명히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요.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힌 듯 답답합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공기가 폐 끝까지 차오르지 않는 기분입니다.
마치 누군가 차가운 손으로 심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머릿속은 수천 개의 실타래가 뒤엉킨 것처럼 복잡합니다.
하나의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 머릿속을 헤집어 놓습니다.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보입니다.
어제는 분명 나를 웃게 했던 것들이 오늘은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봐도 입맛이 없고, 재미있는 영화를 봐도 웃음이 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나 혼자만 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입니다.
이 파도는 나를 순식간에 집어삼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조차 없습니다.
그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이 모든 것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지만, 그럴 힘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나의 이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을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먼저 포기하게 됩니다.
괜히 이야기했다가 상대방마저 힘들게 만들까 봐 두렵습니다.
결국 나는 이 거대한 파도 속에서 철저히 혼자가 됩니다.
이 감정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마치 내가 이 감정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분노가 나인지, 내가 분노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슬픔이 나인지, 내가 슬픔인지 모호해집니다.
감정의 파도 속에서 진짜 나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 갇혀 끝없이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
이 터널의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이 파도가 잠잠해지는 날이 오기는 할까.
희망을 갖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내가 고장 난 건 아닐까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감정에 휩싸일 때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에게 화살을 돌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유독 이렇게 힘들까.
내 마음 어딘가가 단단히 고장 나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SNS를 열면 보이는 친구들의 웃는 얼굴, 행복해 보이는 일상.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점점 더 깊은 무력감에 빠져듭니다.
분명 저들에게도 힘든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하고 나약할까. 끝없이 자책하게 됩니다.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 ‘이겨내야 해’.
이런 다그침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감정에 휩쓸리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깊이 실망합니다.
이 감정을 빨리 털어내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듭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감정의 파도는 더욱 거세게 나를 덮쳐올 뿐입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유난 떤다’거나 ‘정신력이 약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합니다.
밝게 웃고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지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에 에너지는 두 배로 소모됩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괜찮은 척하느라 모든 힘을 쓰고, 혼자가 되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점점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지고, 혼자만의 동굴 속으로 더 깊이 숨어 들어갑니다.
고립감은 깊어지고, ‘나는 정말로 고장 난 존재가 아닐까’ 하는 믿음은 더욱 강해집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감정의 파도가 높게 치는 것은 당신이 고장 났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마음이 살아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마음도 몸처럼 지치고, 아플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너무 많은 것을 견뎌왔기에, 이제는 좀 돌봐달라고, 잠시 멈춰달라고 보내는 당신 마음의 간절한 신호입니다.
그 누구도 항상 강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폭풍우를 품고 살아갑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이 거대한 감정은 당신이 유별나거나 나약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지금, 당신의 마음에 세찬 비가 내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밀려오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폭풍우는 사실 아주 작은 빗방울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서운함, 억누르고 참았던 작은 분노, 애써 외면했던 피로감 같은 것들 말입니다.
마음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그릇에 이 작은 감정의 빗방울들이 한 방울, 두 방울씩 계속해서 떨어집니다.
처음에는 그릇에 물이 차오르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다들 이렇게 살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립니다.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괜찮다’고 말하는 것에 점점 익숙해집니다.
내 마음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애써 무시하고, 겉으로 보이는 괜찮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그릇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차오르던 물은 어느새 그릇의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게 됩니다.
이제는 아주 작은 빗방울 하나만 더 떨어져도, 그릇 속의 물은 순식간에 전부 쏟아져 버릴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갑자기’ 터져버렸다고 느끼는 감정 폭풍의 정체입니다.
그 마지막 한 방울은 정말 별것 아닌 일일 수 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놓쳐버린 버스, 동료의 무심한 한마디, 혹은 사소한 실수 같은 것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웃어넘겼을 일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리고는 이런 사소한 일에 무너지는 자기 자신이 또다시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 사소한 일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가득 차 있던 그릇을 넘치게 한 마지막 한 방울이었을 뿐입니다.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많은 감정의 빗방울들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는지, 그 누구도, 심지어 당신 자신조차도 제대로 알아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책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당신이 터뜨린 눈물과 분노는, 그동안 애써 괜찮은 척하며 삼켜왔던 수많은 마음의 소리입니다.
‘나 좀 봐달라’고, ‘나 너무 힘들다’고,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외치는 마음의 비명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 소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당신의 마음이 왜 이렇게까지 소리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다정하게 들여다볼 시간입니다.
나를 다그치는 또 다른 나의 목소리
감정의 폭풍우 속에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종종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입니다.
‘왜 이것밖에 안 돼?’, ‘정신 차려, 나약하게 굴지 마’, ‘다들 너보다 힘들어’.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다그치는 목소리 말입니다. 이 목소리는 가장 혹독한 비평가가 되어, 가뜩이나 힘든 나를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세웁니다.
이 목소리는 마치 내 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면 게으르다고 비난하고,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느끼려고 하면 감정적이라며 흉을 봅니다.
넘어져서 아파하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기는커녕, 왜 조심하지 않았냐며 발길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목소리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쁜 것, 없애야 할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혹독한 내면의 목소리는 원래 나를 해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 목소리는 아주 오래전, 미숙하고 연약했던 시절의 내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남들에게 비난받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혹독하게 다그쳐서 완벽해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작은 실수로 크게 혼난 경험이 있다면, ‘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 해, 실수는 끔찍한 거야’라는 강력한 믿음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 후로 이 목소리는 내가 실수할 것 같은 상황이 오면 끊임없이 경고하고 채찍질하며 나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 방식이 매우 거칠고 아프게 느껴질지라도, 그 뿌리에는 ‘다시는 그때처럼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서툰 마음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 목소리와 싸우려고 하지 마세요.
‘너는 틀렸어, 닥쳐!’라고 소리치는 대신, 그 목소리의 진짜 의도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세요.
‘아, 네가 또 나를 보호하려고 이렇게 애쓰고 있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하지만 지금은 그 방식이 나를 너무 아프게 해. 이제는 내가 나를 다른 방식으로 돌볼게.’
이렇게 다정하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 자신과의 화해입니다.
나를 다그치던 목소리 역시 상처 입은 내면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과정입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적으로 만들지 마세요.
내 안의 모든 부분은, 심지어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부분조차도, 결국에는 내 편이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괜찮아, 아주 잠시만 멈춰 서도
감정의 파도가 몰아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이 감정에서 빨리 벗어나야 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해.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해.
하지만 이런 조급함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들고, 파도에 더 깊이 휘말리게 할 뿐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하는 것(doing)’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being)’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당신의 인생이 끝장나지도 않습니다.
오늘 하루쯤은 계획했던 일을 하지 않아도, 방이 좀 지저분해도, 연락에 바로 답장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에게는 잠시 멈출 권리가 있습니다.
마치 거센 비바람이 몰아칠 때, 무리해서 밖으로 나가는 대신 창문을 닫고 집 안에서 잠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에도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안전한 곳에서 잠시 멈춰 서서,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허락해주세요.
이것은 포기나 회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위한 가장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돌봄 행위입니다.
끊임없이 나를 몰아세우던 세상의 소음과 내면의 목소리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이 멈춤의 시간 동안, 당신의 지친 마음은 조금씩 숨을 고르고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기분을 좋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슬프면 슬픈 대로,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무기력하면 무기력한 대로 그냥 그 감정 안에 머물러 보세요.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 내 마음의 날씨를 알려주는 신호일 뿐입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눈이 오면 따뜻한 옷을 입는 것처럼, 지금 내 마음의 날씨에 맞는 돌봄을 제공해주면 그만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목표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입니다.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좋고, 멍하니 창밖만 바라봐도 좋습니다.
스스로에게 어떤 의무도 부과하지 마세요. 그저 당신의 몸과 마음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이 완전한 멈춤 속에서, 비로소 당신은 다시 나아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폭풍의 눈, 그 고요함 속으로
거대한 태풍의 한가운데에는 모든 것이 고요한 ‘태풍의 눈’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우에도 바로 그런 고요한 중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호흡’입니다.
호흡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우리를 현재 이 순간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가장 강력한 닻입니다.
감정에 휩쓸려 허우적거릴 때, 아주 잠시만 모든 생각을 멈추고 당신의 숨결에 집중해보세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공기가 코를 통해 들어와서 몸을 가득 채우고, 다시 빠져나가는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만히 느껴보는 것입니다.
숨을 억지로 길게 쉬거나 조절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지금 당신의 몸이 쉬고 있는 그대로의 숨을, 그저 조용한 관찰자가 되어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숨을 들이쉴 때, 마음속으로 ‘하나’ 하고 숫자를 세어봅니다.
가슴과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껴보세요. 차가운 공기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생명을 불어넣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숨을 내쉴 때, 마음속으로 ‘둘’ 하고 숫자를 세어봅니다.
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리면서, 내 안의 무겁고 답답한 감정들이 숨과 함께 빠져나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마치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어깨와 목의 힘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을 느껴봅니다.
이 과정을 몇 번만 반복해도, 미친 듯이 날뛰던 생각들이 조금씩 잠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감정의 폭풍우와 나 자신 사이에 아주 작은 공간, 아주 작은 틈이 생겨납니다.
그 틈 사이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대신, 폭풍의 눈 속으로 들어가 잠시 안전하게 머무는 것입니다.
이 고요한 중심에서 우리는 상황을 조금 더 명확하게 바라볼 힘을 얻게 됩니다.
‘아, 내가 지금 슬픔이라는 파도에 휩쓸리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알아차림만으로도 우리는 감정의 노예가 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을 ‘느끼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 몰려올 때면, 기억하세요.
당신 안에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요한 폭풍의 눈, 바로 당신의 호흡이 있다는 사실을요.
파도가 아니라, 파도를 타는 나에게 집중하기
우리는 종종 감정이라는 거대한 파도 자체에만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이 파도는 왜 이렇게 높은 걸까? 언제쯤 사라질까? 이 파도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이렇게 파도에만 집중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무력해지고 파도에 집어삼켜지기 쉽습니다.
이제는 시선을 조금 바꿔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파도가 아니라, 그 파도 위에 떠 있는 ‘나’에게로 말입니다.
당신은 파도 그 자체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 파도를 경험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 작은 관점의 변화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나는 슬프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슬픔을 느끼고 있다’라고 생각해보세요.
‘나는 분노한다’가 아니라 ‘내 안에서 분노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라고 말해보세요.
이렇게 나와 감정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정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마치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에 푹 빠져드는 것과, 객석에 앉아 스크린 속 주인공을 바라보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객석에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영화의 스토리에 공감하고 감동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그리고 나는 안전한 의자에 앉아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감정을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바라보세요.
어떤 구름은 하얗고 뭉게뭉게 예쁘지만, 어떤 구름은 시커멓고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처럼 위협적입니다.
하지만 구름은 그저 하늘을 지나갈 뿐, 하늘 그 자체는 아닙니다.
구름이 지나가고 나면, 그 자리에는 언제나처럼 푸르고 맑은 하늘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하늘입니다. 감정은 당신을 잠시 지나가는 구름일 뿐입니다.
이 연습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오히려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하지만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감정이 내 몸 어디에서 느껴지는지, 어떤 생각을 동반하는지 호기심을 갖고 관찰해보세요.
마치 처음 보는 신기한 생물을 관찰하는 과학자처럼 말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는 실체가 아니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깨닫게 됩니다.
파도는 언젠가 반드시 잠잠해지고, 먹구름은 언젠가 반드시 걷힙니다.
그러니 파도와 싸우려 하지 마세요.
그저 파도 위에 떠 있는 나 자신을 믿고, 이 파도가 자연스럽게 지나가도록 허락해주세요.
아주 작은 닻을 내리는 연습
거센 풍랑 속에서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것이 바로 ‘닻’입니다.
감정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우리 마음에도 그런 닻이 필요합니다.
이 닻은 우리를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지금, 여기’라는 안전한 항구에 잠시 머물게 해줍니다.
이 닻을 내리는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고 쉽습니다. 바로 우리의 ‘감각’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머릿속이 온갖 생각과 감정으로 터져버릴 것 같을 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 다섯 가지를 천천히, 소리 내어 말해봅니다.
예를 들면, ‘하얀색 천장’, ‘나무 무늬 책상’, ‘초록색 화분’, ‘창문 밖의 하늘’, ‘내 손에 든 컵’ 처럼요. 이름을 붙이기 어려워도 괜찮습니다. ‘벽에 걸린 그림’, ‘의자 다리’ 등 보이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당신의 몸이 느끼는 감촉 네 가지를 찾아봅니다.
의자에 닿은 엉덩이의 단단함, 발바닥에 느껴지는 바닥의 차가움, 손가락 끝으로 만져지는 옷의 부드러운 질감, 공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 같은 것들입니다.
온 신경을 지금 이 순간의 감촉에 집중해보세요.
이제, 당신의 귀에 들리는 소리 세 가지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냉장고가 돌아가는 웅- 하는 소리, 혹은 내 심장이 뛰는 소리나 숨소리도 좋습니다.
판단하지 말고, 그저 들리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어보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당신이 맡을 수 있는 냄새 두 가지를 찾아봅니다.
방 안의 공기 냄새, 내가 입고 있는 옷의 섬유유연제 냄새, 혹은 곁에 있는 커피의 향기 같은 것들입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그 냄새에 집중해보세요.
마지막으로, 당신이 맛볼 수 있는 것 한 가지를 느껴봅니다.
꼭 무언가를 먹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입안에 남아있는 미미한 맛, 혹은 그냥 내 침의 맛이라도 좋습니다. 혀의 감각에 집중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감을 이용해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연습을 ‘그라운딩(grounding)’, 즉 닻 내리기라고 합니다.
이 단순한 행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던 우리의 의식을 현실 세계로 안전하게 데려와 줍니다.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가 있습니다. 감정의 파도가 너무 거세다고 느껴질 때면, 언제든 이 작은 닻을 내리는 연습을 해보세요.
힘껏 싸우는 대신, 가만히 떠오르기
거센 파도에 휩쓸렸을 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면 칠수록 오히려 몸에 힘이 들어가 더 쉽게 물에 빠진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몸의 힘을 빼고,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가만히 떠오르는 것이라고요.
감정의 파도를 대하는 방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감정이 힘들다는 이유로 그것을 없애야 할 적처럼 여기고 힘껏 싸우려 합니다.
‘슬퍼하면 안 돼’, ‘화내면 안 돼’, ‘우울해하면 안 돼’ 라고 외치며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려고 애를 씁니다.
다른 즐거운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거나, 바쁜 일에 몰두하며 감정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감정은 억누를수록 더 강하게 반발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물속에 공을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강한 힘으로 튀어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감정과 싸우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입니다.
이미 파도에 휩쓸려 힘든데, 그 파도와 싸우느라 남아있는 힘마저 모두 써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완전히 지쳐버리고, 감정의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잠겨버립니다.
이제는 싸우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대신, 그 감정이 내 안에 존재하도록 그냥 허락해주세요.
이것은 그 감정이 옳다거나, 그 감정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아, 지금 내 안에 이런 감정이 있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불청객처럼 찾아온 손님을 억지로 내쫓으려 하지 않고, ‘왔구나. 잠시 머물다 가렴.’ 하고 자리를 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몸의 힘을 쭉 빼고, 거대한 파도 위에 그저 가만히 누워 하늘을 본다고 상상해보세요.
파도가 나를 위로 들어 올렸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놓습니다. 나는 그저 그 흐름에 몸을 맡길 뿐입니다.
두렵고 불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싸우지 않으니 더 이상 에너지가 소모되지는 않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감정과 싸우기를 멈추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감정은 우리를 통제하던 힘을 서서히 잃기 시작합니다.
억지로 내쫓으려 할 때는 문고리를 붙잡고 버티던 손님이, 그냥 있으라고 하니 오히려 뻘쭘해져서 스스로 나갈 채비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감정은 그저 잠시 우리를 찾아온 손님일 뿐입니다.
힘껏 싸우는 대신, 가만히 떠오르는 연습을 통해, 우리는 감정의 파도를 평화롭게 지나보낼 수 있는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썰물처럼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들
거대한 폭풍우가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는 다시 고요해집니다.
감정의 파도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깊은 피로감과 함께 텅 빈 듯한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 무기력하고,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거대한 파도와 씨름하느라 당신의 마음과 몸이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이 고요함 속에서 너무 빨리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이제 괜찮아졌으니 빨리 일상으로 복귀해야 해’ 라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마세요.
폭풍우가 할퀴고 간 해변을 정리하고 복구할 시간이 필요하듯, 당신의 마음에도 뒷정리와 회복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거나, 좋아하는 담요를 덮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주세요.
감정의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종종 예상치 못한 선물들이 남겨져 있기도 합니다.
썰물이 빠져나간 해변에 예쁜 조개껍데기나 반짝이는 유리 조각들이 남아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이해’라는 값진 선물입니다.
그토록 나를 힘들게 했던 감정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내 마음의 그릇을 넘치게 만들었을까?
차분해진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억누르고 있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서운함이 있었음을, 혹은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외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깨달음일 수 있지만, 동시에 당신의 삶을 더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어줄 중요한 단서이기도 합니다.
파도는 당신을 아프게 했지만, 동시에 당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중요한 메시지를 수면 위로 건져 올려준 셈입니다.
그것은 ‘이제는 나를 좀 돌봐줘’, ‘이 관계는 다시 생각해봐야 해’, ‘너의 진짜 목소리를 들어줘’ 와 같은 마음의 소리일 수 있습니다.
이 발견들을 소중히 여기세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의 그릇이 다시 위험할 정도로 가득 차기 전에, 미리 빗방울들을 비워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계기로 삼으세요.
폭풍우는 분명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모든 폭풍우는 언젠가 끝납니다.
그리고 그 폭풍우를 온몸으로 겪어낸 당신은, 이전보다 자신의 바다를 조금 더 잘 이해하는, 더 지혜로운 항해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바다가 어떤 날씨를 품고 있는지 조금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잔잔한 날도 있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도 있다는 사실을요.
그 모든 것이 당신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더 이상 갑작스러운 폭풍우에 속수무책으로 당황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어떻게 닻을 내리고, 어떻게 힘을 빼고 파도에 몸을 맡겨야 하는지, 그 방법을 이제 조금씩 배워가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부서지기 쉬운 조각배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 모든 날씨를 품을 수 있는 거대하고 깊은 바다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세요. 아무리 사나운 폭풍우가 지나간 뒤에도, 태양은 어김없이 다시 떠올라 고요해진 수면 위를 따뜻하게 비춘다는 사실을요.
그 햇살 아래, 당신은 다시 평화롭게 숨 쉴 수 있을 겁니다.
본 웹사이트의 정보는 일반적인 참고 자료이며, 전문적인 정신건강 상담, 진단, 치료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 어려움이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반드시 자격을 갖춘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면 즉시 도움을 요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