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걱정 시간 정해두고 그 외에는 생각하지 않기

잠들기 전, 세상 모든 스위치는 다 내렸는데 머릿속 생각 스위치 하나만 고장 난 밤이 있습니다.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당겨 봐도, 몸을 수십 번 뒤척여 봐도 마음속 소란은 좀처럼 잠들지 않죠.

내일 아침에 해야 할 일, 며칠 전 누군가에게 실수로 뱉었던 말 한마디, 몇 년 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에 대한 막막함까지. 시간도 순서도 없이 밀려드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습니다.

마치 방 안에 풀어놓은 수만 마리의 벌떼처럼, 생각들은 윙윙거리며 쉴 새 없이 날아다닙니다.

숨을 쉬는 것도 잊을 만큼 생각에 깊이 빠져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본 적 있을 거예요. 그럴 때면 심장은 내려앉을 듯 쿵쾅거리고, 손바닥은 축축하게 젖어있곤 하죠.

걱정하지 말아야지, 그만 생각해야지, 다짐하면 할수록 걱정은 더 끈질기게 달라붙어 당신을 놓아주지 않았을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생각합니다. 차라리 생각이라는 걸 잠시 멈출 수 있는 스위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내 머릿속인데, 내 마음인데, 왜 이렇게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 걸까.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나 자신이 미워지기까지 했을지 모릅니다.

잠들지 않는 걱정에게

걱정은 참 부지런합니다. 우리가 잠든 새벽에도, 정신없이 무언가에 몰두하는 한낮에도,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즐거운 순간에도 불쑥,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하죠.

마치 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약속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다.

처음에는 애써 무시해보려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결국 우리는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게 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걱정은 마음 한가운데 가장 편한 자리에 눌러앉아,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씻을 때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속삭이죠.

‘너 그거 괜찮겠어?’, ‘혹시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준비는 다 된 거 맞아?’

온 신경이 그 목소리에 쏠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창밖으로 보이는 계절의 변화도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현재에 몸을 두고 있지만, 마음만은 온통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어느 시간에 가있는 셈입니다.

문 없는 방에 갇힌 마음

걱정이 가득 찬 머릿속은 마치 문도 창문도 없는 작은 방과 같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그 방 안에서, 우리는 똑같은 생각의 벽을 맴돌며 하염없이 서성입니다.

나가고 싶다고 소리쳐보지만,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 어디에도 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하고, 지난 선택들을 후회하기도 하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비관하기도 합니다.

이 생각의 방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우리는 그 방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방 밖에는 분명 햇살이 내리쬐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텐데도 말이죠.

방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우리의 에너지는 빠르게 닳아 없어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하루가 끝나면 녹초가 되어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방 안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달리기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부지런할까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까요? 왜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까지 쉬지 않고 걱정을 만들어내는 걸까요?

혹시 마음이 우리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못된 심술쟁이라서 그런 걸까요?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걱정은 우리를 지키기 위한 마음의 아주 오래된 생존 방식입니다. 마음은 우리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미리 가능한 모든 위험을 찾아내 알려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뿐이에요.

마치 궂은 날씨에 아이가 감기에 걸릴까 봐 옷을 수십 겹 껴입히는 엄마의 마음처럼 말이죠. ‘이것도 조심해야 해’, ‘저것도 대비해야 해’ 하면서, 마음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마음의 그 열정이 너무 과하다는 데 있습니다. 너무 부지런하고 성실한 나머지, 아주 사소한 위험까지 모두 찾아내 우리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는 거죠.

우리는 그저, 우리를 너무나 아끼는 마음의 과잉보호 속에서 조금 지쳐버린 것뿐입니다.

걱정을 위한 아주 작은 약속

그렇다면 우리를 지키려는 이 부지런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걱정하지 마!”라고 소리치며 억지로 쫓아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쫓아내려 할수록 걱정은 더 불안해하며 우리에게 매달릴 테니까요.

대신, 우리는 걱정과 아주 특별한 약속을 하나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걱정하는 시간’을 따로 정해두는 것입니다. 마치 중요한 사람과 만날 약속을 잡는 것처럼요.

매일 저녁 7시, 딱 20분. 이 시간은 오롯이 걱정을 위한 시간으로 당신이 선물하는 겁니다. “걱정아,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거 알아. 그런데 지금은 내가 다른 일을 해야 하니, 저녁 7시에 다시 만나서 네 이야기 전부 들어줄게.” 이렇게 다정하게 약속하는 거죠.

이것은 걱정을 무시하거나 억누르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오히려 걱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목소리를 들어주겠다고 존중해 주는 태도입니다. 걱정에게 정식으로 발언할 시간을 보장해 주는 셈이죠.

걱정에게 이름과 자리를 주는 시간

약속을 정했다면, 이제 걱정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줄 차례입니다. 늘 웅크리고 숨어 있던 걱정을 환한 곳으로 초대하는 거죠.

예쁜 공책 한 권과 마음에 드는 펜을 준비해 보세요. 그리고 그 공책에 ‘걱정 노트’ 혹은 ‘마음의 소리함’ 같은 이름을 붙여주세요. 이곳은 이제부터 당신과 걱정의 공식적인 대화 창구가 될 겁니다.

약속한 시간이 되면,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노트를 펼칩니다.

그리고 머릿속을 떠다니는 모든 걱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검열 없이, 그저 펜이 가는 대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팀장님께 보고서를 잘못 드린 것 같다’, ‘이번 달 카드값이 너무 많이 나올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 실수가 잦을까?’, ‘10년 뒤에도 나는 혼자일까?’

어떤 내용이든 괜찮습니다. 두서없어도 좋고, 유치하게 느껴져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만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눈에 보이는 글자로 꺼내놓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우리만의 약속, 그 안의 규칙들

이 ‘걱정 시간’에는 몇 가지 중요한 규칙이 있습니다. 이 규칙들은 우리가 걱정에 완전히 압도당하지 않고, 약속을 건강하게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전장치와 같습니다.

첫 번째 규칙은 ‘시간 엄수’입니다. 알람을 15분이나 20분 뒤로 맞춰두세요. 그 시간 동안에는 오직 걱정에만 집중합니다. 다른 생각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온전히 걱정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두 번째 규칙은 ‘해결책 찾지 않기’입니다. 이 시간은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저 걱정을 쏟아내고 들어주는 시간입니다.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저 ‘아, 내가 이런 것 때문에 힘들었구나’ 하고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세 번째 규칙은 ‘비판하지 않기’입니다. ‘이런 걸로 걱정하다니 한심하다’ 혹은 ‘이건 걱정할 가치도 없는 일이야’와 같은 판단의 목소리를 잠시 멈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어떤 걱정이든, 그 자리에 나타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세요.

알람이 울리면, 잠시 안녕

알람이 울립니다. 약속된 20분이 끝났다는 신호죠. 이제 걱정과의 만남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이것은 걱정 시간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펜을 내려놓고, 지금까지 써 내려간 걱정들을 한번 쭉 훑어봅니다. 그리고 노트의 마지막에 이렇게 한번 적어보세요.

“오늘도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만나자.”

그리고 단호하게 노트를 덮습니다. 마치 중요한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 문을 닫고 나오는 것처럼요. 걱정 시간 이후의 삶으로 돌아오는 작은 의식을 치르는 겁니다.

이 행동은 우리의 뇌에게 강력한 신호를 보냅니다. ‘걱정은 이제 저 노트 안에 있고, 정해진 시간에만 만나는 거야. 지금부터는 다른 일에 집중할 시간이야.’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 수 있지만, 반복할수록 뇌는 이 새로운 규칙에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할 겁니다.

정해진 시간 말고 또 찾아오면 어떡하죠?

물론, 걱정이 그렇게 순순히 약속을 지키지는 않을 겁니다. 약속된 시간이 아닌데도 불쑥, 예전처럼 당신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중요한 회의를 하다가, 혹은 친구와 즐겁게 저녁을 먹다가도 갑자기 찾아올 수 있죠.

그럴 때 당황하거나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걱정하네, 나는 역시 안 돼”라고 자책하는 대신, 찾아온 걱정을 부드럽게 알아차려 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는 겁니다. “아, 새로운 걱정이구나. 와줘서 고마워.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이야기할 시간이 아니네.”

“네 이야기는 정말 중요하니까, 이따 저녁 7시 걱정 시간에 내가 꼭 들어줄게. 잊지 않도록 여기 잠시 메모해 둘게.”

그다음 수첩이나 핸드폰 메모장에 그 걱정의 제목만 간단히 적어두세요. ‘발표 자료 오타 걱정’, ‘친구에게 할 말 걱정’ 이렇게요. 이것은 걱정을 잠시 ‘주차’해두는 것과 같습니다. 걱정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용무가 아님을 알려주는 현명한 방법입니다.

걱정이 떠난 자리, 그 빈 공간에는

걱정 시간을 꾸준히 가지다 보면, 당신의 하루에 작은 변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할 겁니다. 온종일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걱정의 안개가 조금씩 걷히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걱정이 차지하고 있던 마음의 공간이 비워지면서,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이 들어올 여유가 생기는 거죠.

아침 커피의 따뜻한 향기,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푸른 나뭇잎, 오랜만에 듣는 노래의 아름다운 가사 같은 것들 말입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미래의 위험을 찾느라 놓쳐버렸던 ‘지금, 여기’의 작은 순간들을 다시 음미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걱정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걱정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당신 하루의 주인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만 만나는 방문객이 된 것입니다.

당신은 비로소 당신 삶의 운전대를 되찾아, 원하는 곳에 집중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됩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 연습이 하루아침에 당신을 걱정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날은 걱정 노트가 몇 장씩 빼곡하게 채워질 수도 있고, 어떤 날은 약속 시간을 어기고 찾아오는 걱정들 때문에 하루 종일 씨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입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고, 규칙을 어겼다면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서툴지만 애쓰고 있는 자신을 따뜻하게 격려해 주세요.

마음에도 근육이 있어서, 꾸준히 연습하면 힘이 생깁니다. 걱정의 멱살을 잡고 끌려다니는 대신, 걱정의 손을 잡고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이끌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라나게 될 거예요.

걱정은 마치 그치지 않을 것처럼 쏟아지는 비와 같습니다. 우리는 비를 멈출 수는 없지만, 우산을 펴고 잠시 비를 피하는 법을 배울 수는 있습니다.

걱정 시간을 정해두는 것은, 쏟아지는 걱정의 비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우산을 펴는 일과 같습니다.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떨 필요는 없습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만 잠시 비를 맞아주고, 나머지 시간에는 뽀송뽀송한 마음으로 당신의 하루를 걸어가세요.

괜찮아요. 우리는 그저, 젖지 않고 빗소리를 감상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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