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왜 그랬을까 이불킥하게 되는 기억들 다루기

고요한 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막 잠이 들려는 순간. 혹은 멍하니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나른한 오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뇌리에 번개처럼 스칩니다.

아,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 말은 왜 했을까. 그 옷은 왜 입었을까. 왜 그렇게 바보같이 웃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얼굴은 순식간에 화끈 달아오릅니다. 심장이 멋대로 쿵쾅거리고, 나도 모르게 ‘으악’ 하는 비명과 함께 이불을 걷어차고 맙니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왜 그 순간은 어제 일처럼 생생할까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장소로 강제 소환된 기분입니다. 어설프고, 서툴고, 부끄러웠던 내 모습이 고화질 영상처럼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됩니다.

그 기억 속에서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그들도 나를 비웃었을까요? 지금도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까요?

차라리 땅속으로 꺼져 버리고 싶었던 그 순간의 감정이, 오늘 밤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다시 나를 집어삼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저 밤마다 홀로 이불을 걷어차는 당신의 마음을, 지금부터 함께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한밤중, 불쑥 찾아오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

‘이불킥’ 기억은 꼭 우리가 가장 무방비한 순간에 찾아옵니다. 하루의 소음이 모두 잦아든 고요한 시간, 다른 생각들로 마음을 방어할 틈이 없을 때를 귀신같이 알아챕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죠.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불청객처럼요. 반갑지 않은 손님은 거실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잊고 싶었던 그날의 영상을 소리까지 켜서 재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영상은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그 기억이 강렬할수록, 부끄러움이 컸을수록, 그 손님은 더 자주, 더 오래 우리 집에 머물다 갑니다.

그날의 나는 왜 그렇게 서툴렀을까요

고통스러운 영상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과거의 나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했니? 조금만 더 신중하지 그랬어. 조금만 더 눈치가 있었더라면.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다그치고 비난하는 것이죠.

지금의 지혜와 경험을 가진 내가, 모든 것이 처음이고 서툴렀던 과거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마치 어른이 된 내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왜 제대로 걷지 못하냐’고 타박하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잊지 마세요. 그날의 나는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그만큼의 경험과 그만큼의 시야를 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던 겁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비추는 듯한 착각

이불킥의 가장 큰 고통은,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는 생생한 느낌 때문입니다.

내 어색한 말투, 바보 같은 표정 하나하나를 모두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머릿속에 영원히 저장해두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죠.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요? 한번 솔직하게 생각해보세요. 혹시 어제 친구가 점심을 먹으며 했던 농담이나, 일주일 전 동료가 입었던 옷 색깔이 정확히 기억나시나요?

아마 대부분은 아닐 겁니다. 신기할 정도로 기억나지 않을 거예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 바쁘거든요.

내 기억 속에서는 수많은 관객들이 나를 향해 환한 조명을 비추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대본을 외우고, 자신의 다음 등장을 걱정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의 작은 실수는 그들의 영화에서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간 엑스트라의 한 장면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다는 건, 당신이 성장했다는 증거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라 괴로운가요? 그렇다면 오히려 축하할 일입니다. 당신이 그동안 잘 성장해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니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다섯 살 때 흙을 퍼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불을 차지는 않잖아요. 그건 지금의 우리가 ‘어린아이는 그럴 수 있지’라고 너그럽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10년 전, 5년 전의 내가 부끄러운 이유는,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 더 성숙하고, 더 현명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나를 보며 얼굴이 붉어진다는 건, 지금의 내가 그때와는 다른 기준과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퇴보가 아닌, 명백한 성장입니다.

그러니 이불킥의 순간을 ‘나의 흑역사’가 아닌, ‘나의 성장 기록’이라고 이름 붙여보는 건 어떨까요. 서툴렀던 과거의 발자국이 있었기에, 지금의 단단한 당신이 있는 거니까요.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다정하게 안아주는 시간

우리 마음속에는 과거의 상처와 부끄러움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습니다.

이불킥의 순간은, 바로 그 아이가 ‘나 여기 있어요, 나 좀 봐주세요’ 하고 외치는 소리와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끄러워, 좀 조용히 해!’라고 소리치거나, ‘너 때문에 내가 힘들어’라고 원망하면 아이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버릴 뿐입니다.

대신, 마음속으로 그 아이에게 다가가보세요. 그날, 그 장소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작은 나에게 다가가,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많이 놀랐지, 하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겁니다.

그리고는 꼭 안아주는 상상을 해보세요. 누구보다 당신의 위로가 필요했던 건, 바로 과거의 당신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기억은 사실이 아닌, 감정이 색칠한 그림이에요

우리는 과거의 기억이 마치 녹화된 비디오테이프처럼 정확한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그렇게 객관적이지 않아요.

기억은 ‘사실’ 위에 ‘감정’이라는 물감을 덧칠해 완성한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특히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아주 진하고 어두운 색의 물감이라서, 원래의 사실을 완전히 뒤덮어 버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없던 사실까지 만들어내기도 하죠.

아마 그날의 실제 상황은 당신이 기억하는 것만큼 끔찍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의 작은 실수를 사람들은 금방 잊었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그 기억을 왜곡하고 과장해서, 마치 대참사가 일어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죠. 지금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에 덧칠해진 ‘감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이불킥’이라는 안전 경보

밤마다 울리는 이불킥 경보가 너무나 괴롭겠지만, 사실 이 경보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울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위험했던 기억, 특히 사회적으로 위협을 느꼈던 순간을 더 생생하게 저장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맹수에게 쫓겼던 기억만큼이나, 무리에서 소외될 뻔했던 기억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죠.

‘아, 이런 행동을 하니 창피하구나. 다음에는 조심해야지.’ 하고 학습하는 과정인 셈입니다. 일종의 ‘사회적 생존을 위한 안전 경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경보음이 너무 크고 자주 울리는 것이 문제일 뿐이죠. 그러니 이불킥 기억이 떠오를 때, ‘아, 나의 뇌가 나를 지켜주려고 또 애쓰는구나. 고맙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 하고 신호를 보내주는 건 어떨까요. 경보의 의도를 알아주면, 소리는 조금씩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들도 모두 각자의 이불을 걷어차고 있을 거예요

당신이 부끄러웠던 그 순간, 당신을 보고 웃었던 것 같은 그 사람. 당신에게 날카로운 말을 던졌던 그 사람. 그 사람들은 완벽하고 평온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들도 역시, 당신처럼 자기 전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이불을 걷어차고 있을 겁니다.

당신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완벽한 척했지만, 그들 역시 수많은 실수와 부끄러운 기억들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당신이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시간보다, 그들이 자신의 흑역사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밤 속에서, 각자의 이불을 걷어차는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면,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생각의 파도가 밀려올 때,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기

부끄러운 기억이라는 파도가 거세게 밀려올 때, 우리는 보통 그 파도에 맞서 싸우거나, 휩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죠.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써보는 건 어떨까요? 파도에 맞서 싸우는 대신, 잠시 뭍으로 나와 가만히 그 파도를 바라보는 겁니다.

‘아, 이불킥이라는 이름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구나. 파도의 색깔은 아주 검고, 소리는 매우 시끄럽네. 내 심장을 마구 때리는구나.’

이렇게 생각과 감정을 나 자신과 분리해서, 마치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듯, 강물에 흘러가는 나뭇잎을 보듯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겁니다.

생각은 생각이요, 감정은 감정일 뿐, 그것이 당신 자신은 아닙니다. 파도는 아무리 거세도 언젠가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나에게 더 따뜻한 말을 건네주세요

과거의 나를 향해 쏟아붓던 날카로운 말들을 이제는 거두어, 지금의 나를 위해 사용해주세요. 이불킥에 쓸 에너지를,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나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데 쓰는 겁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려서 우리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죠.

과거의 부끄러움에 갇혀 오늘의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요?

밤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에게 문을 열어주는 대신, 오늘 하루 애쓴 나를 위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포근한 이불을 덮어주세요. 과거의 당신이 아닌, 현재의 당신에게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해주세요.

지나간 날들은 마치 앨범 속에 꽂힌 낡은 사진과 같습니다. 가끔 꺼내보면 촌스럽고 어색해서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분명한 나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며 ‘이땐 이랬었지’ 하고 옅게 미소 지은 다음, 앨범을 조용히 덮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됩니다. 그 사진을 찢어버리거나 불태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으니까요.

이제는 괜찮습니다. 서툴렀던 과거의 당신도, 밤마다 이불을 차는 지금의 당신도, 모두 소중한 당신입니다.

부디, 오늘 밤은 걷어차는 이불이 아닌, 당신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이불 속에서 따뜻하고 평안한 잠을 잘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