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Safemental

무기력이라는 감정도 자연스러운 신호임을 받아들이기

공유하기
정진우 · · 12분 소요
무기력이라는 감정도 자연스러운 신호임을 받아들이기

눈을 떴지만, 몸은 아직 잠의 깊은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만 같요.

천장의 무늬가 흐릿하게 보예요. 어렴풋이 정신은 돌아왔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나지 않네요.

어제 해야 했던 일, 오늘 해야 할 일들.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떠다닙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아득히 멀게만 느껴집니다.

무언가라도 봐야 할 것 같아 핸드폰을 들어보려 하지만, 그 짧은 거리에 있는 핸드폰마저 천근만근 무겁요.

간신히 손에 쥐고 화면을 켜도, 손가락은 의미 없이 화면을 위아래로 밀어 올릴 뿐예요.

어떤 정보도, 어떤 즐거움도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요. 텅 빈 눈으로 그저 빛나는 화면을 바라볼 뿐이죠.

무언가 잘못된 걸까요. 왜 나만 이렇게 뒤처지는 기분이 들까요.

창밖의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침을 시작하며 분주하게 움직예요.

그런데 나만 홀로 투명한 벽 안에 갇혀버린 것 같요. 이 벽을 깨고 나가야 한다는 건 알지만, 문을 열 방법도, 벽을 두드릴 힘도 남아있지 않은 기분예요.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푹 내쉬어 봅니다. 이 감정의 이름을 뭐라고 붙여야 할까요.

슬픔이라고 하기엔 눈물이 나지 않고, 화가 난다고 하기엔 미워할 대상도 없요. 그저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마음은 아무 색깔도 없는 텅 빈 방처럼 느껴질 뿐예요.

내 마음은 왜 텅 빈 방 같을까요

마치 모든 가구를 다 빼버린 방 안에 홀로 앉아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 나를 웃게 만들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저 멀리 놓인 낯선 물건처럼 보예요.

재미있던 드라마도, 즐겨 듣던 음악도, 친구와의 약속도 더는 마음에 아무런 파동을 일으키지 못해요.

이 텅 빈 느낌이 당황스럽고, 때로는 무섭게 느껴지기도 해요. 내 안의 모든 감정 스위치가 한꺼번에 꺼져버린 것만 같아서요.

웃고 싶지도, 울고 싶지도, 심지어는 화를 낼 에너지조차 없는 상태. 모든 것이 부질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그 마음을, 스스로 이해하기조차 버거울 수 있어요.

하지만 그 텅 빈 방은, 사실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안전한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많은 감정과 생각들로 가득 차 과열되기 직전, 잠시 모든 것을 밖으로 내보내고 텅 비워낸 것일 수 있어요.

더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더는 소모되지 않기 위해 마련한 아주 조용한 대피소 같은 곳 말이에요.

꺼져버린 핸드폰처럼

우리는 매일 아침 완충된 핸드폰을 들고 집을 나섭니다. 하루 종일 메시지를 보내고, 영상을 보고, 길을 찾다 보면 어느새 배터리는 빨간 불을 깜빡이죠.

그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충전기를 찾아 핸드폰을 꽂아둡니다. ‘왜 벌써 방전됐어!’라고 핸드폰을 나무라지는 않요. 방전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우리의 마음과 몸도 똑같요. 눈에 보이지 않는 배터리가 있어서, 매일 웃고, 일하고, 걱정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에너지를 조금씩 사용해요.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마음의 배터리에 대해서는 다릅니다. 방전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려도 자신을 자꾸만 다그치죠.

‘왜 이것밖에 못 해?’, ‘정신 차려야지’ 하면서 말예요.

무기력은 당신이 나약하거나 게을러서 찾아오는 벌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 배터리가 모두 소진되었다는, 아주 자연스럽고 정직한 알림일 뿐예요.

이제는 충전이 필요하다고, 잠시 모든 연결을 끊고 쉬어가야 한다고 몸이 당신에게 보내는 간절한 신호인 셈예요.

애써 웃지 않아도 괜찮아요

세상은 우리에게 괜찮은 척, 활기찬 척하기를 강요할 때가 많요.

기운이 없어도 주변 사람들을 위해 억지로 미소를 지어야 할 것 같고, 내 마음은 지쳐있는데도 밝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죠.

그렇게 애써 괜찮은 척하는 일은,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더 빨리 바닥나게 만들 뿐예요.

지금 당신의 마음에 웃을 힘이 없다면, 굳이 웃지 않아도 괜찮요. 누군가의 말에 억지로 맞장구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은 당신의 감정에 솔직해져도 되는 시간예요. ‘나, 지금 정말 아무런 기운이 없어’라고 스스로에게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무거운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어요.

당신의 표정이 곧 당신의 상태예요. 억지로 꾸며낸 밝은 표정 뒤에 지친 마음을 숨기지 마세요.

잠시 무표정해도, 조금은 시무룩해 보여도 괜찮요.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니까요.

스스로의 지친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일예요.

무기력은 마음의 빨간불이에요

횡단보도 앞에 서면 우리는 빨간불일 때 멈추고, 초록불일 때 건너갑니다.

빨간불이 켜졌다고 해서 ‘왜 길이 막혔지?’라며 불평하거나 억지로 건너지 않죠. 잠시 멈춰서 차들이 안전하게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시간, 내 안전을 지키는 시간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예요.

무기력이라는 감정도 우리 마음의 횡단보도에 켜진 빨간불과 같요.

지금까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혹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들을 돌보지 못하고 건너오느라 더는 나아가면 위험하다고 알려주는 신호등이죠.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사인예요.

이 빨간불을 무시하고 억지로 나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더 크게 넘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져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무기력이라는 빨간불이 켜졌을 때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예요.

이 멈춤은 후퇴가 아니라, 다음 초록불에 안전하게 길을 건너기 위한 꼭 필요한 준비 시간예요.

누구에게나 겨울은 찾아와요

화려한 꽃을 피우던 나무도, 무성한 잎을 자랑하던 숲도 가을이 지나면 앙상한 가지만 남게 돼요.

모든 것을 비워내고 겨울잠에 드는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나무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요.

오히려 다음 해 봄, 더 힘차게 새싹을 틔우기 위해 에너지를 아끼며 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죠.

우리의 삶에도 사계절이 있어요.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에너지가 넘치는 여름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휴식이 필요한 겨울도 있어요.

지금 당신이 느끼는 무기력은, 어쩌면 마음의 겨울을 맞이한 것일 수 있어요.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느라 애썼던 당신에게 찾아온 당연한 휴식의 계절인 셈이죠.

겨울의 나무가 게으른 것이 아니듯, 지금 잠시 멈춰있는 당신도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모든 활동이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앙상한 가지 안에서는 다음 봄을 위한 생명의 에너지가 아주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응축되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세요. 당신의 겨울을 충분히 누려도 괜찮요.

나를 다그치는 목소리 멈추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자체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마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자책의 목소리일 거예요.

‘남들은 다 열심히 사는데, 너는 왜 이 모양이야?’,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어떡해?’, ‘의지가 약해서 그래.’ 와 같은 날카로운 말들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힙니다.

이 목소리는 사실 당신을 돕기 위해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려고,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채찍질하던 습관이 남아있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처럼 방전된 당신에게 채찍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요. 오히려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마저 빼앗아가고, 깊은 좌절감만 남길 뿐예요.

이제는 그 목소리에게 잠시 멈춰달라고 이야기해줄 시간예요.

머릿속에서 비난의 소리가 들려올 때, 속으로 이렇게 말해보세요.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 지금 충분히 힘든 거 알아. 잠시만 조용히 있어줄래?’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나를 향한 비난을 스스로 멈춰주는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안전함을 느끼기 시작할 거예요.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온기

무기력의 늪에 깊이 빠져 있을 때는 ‘운동을 시작하자’, ‘책을 읽자’와 같은 커다란 목표가 오히려 거대한 벽처럼 느껴집니다.

그 벽 앞에서 ‘역시 나는 안 돼’라며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기 쉽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해서 실패할 수조차 없는 작은 움직임예요.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운 채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는 거예요.

혹은, 커튼을 살짝 걷어 오늘의 햇살이 어떤지 바라보는 것. 목이 마를 때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시는 것. 이 정도면 충분해요.

이 작은 행동들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 내가 아직 살아 움직이는구나’라는 감각을 되찾기 위한 것예요.

얼어붙은 강물도 가장자리부터 아주 조금씩 녹기 시작해요. 당신의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아주 사소한 움직임 하나가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에 작은 온기를 불어넣고, 아주 천천히 순환을 시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오늘은 딱 한 가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을 스스로에게 허락해주세요.

햇살 한 조각, 바람 한 모금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가 복잡할 때는, 잠시 생각의 스위치를 끄고 몸의 감각을 켜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거창한 활동이 아니어도 괜찮요. 그저 창문을 열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뺨에 스치는 느낌에 집중해보세요.

바람에 실려 오는 풀냄새나 흙냄새를 가만히 맡아보는 것도 좋요.

따뜻한 햇살이 드는 창가에 잠시 앉아 눈을 감고, 내리쬐는 햇빛이 눈꺼풀과 피부에 전하는 온기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따뜻하다’는 느낌 하나에만 마음을 모아보는 거예요. 복잡한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지금 이 순간, 내 몸이 느끼는 감각에만 머물러 보는 시간예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머리로만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정작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를 잊고 살았죠.

햇살 한 조각, 바람 한 모금,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처럼 아주 단순한 감각들이, 우리를 다시 현재로 데려와 주는 안전한 닻이 되어줄 수 있어요.

그냥 ‘있어주기’의 힘

우리는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doing)’는 압박 속에서 살아갑니다.

학생일 때는 공부를 해야 하고, 직장에서는 일을 해야 하고, 심지어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해야 할 것만 같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존재하는(being)’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불안해해요.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doing’이 아니라 ‘being’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어떤 결과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자리에 가만히 존재해주는 것예요.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든,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든, 그 어떤 것도 괜찮요. 무엇이 ‘되어야’ 하는 부담 없이, 그저 ‘있는’ 나를 허락해주는 것예요.

식물이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구름이 말없이 하늘을 흘러가듯, 당신도 잠시 그저 존재해보세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아도, 아무에게도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는 이미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 있어요.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잠시 머무를 때, 비로소 진정한 쉼이 시작될 수 있어요.

다시 채워질 시간을 믿어주세요

물을 가득 채운 컵은 언젠가 비워지기 마련예요. 그리고 비워진 컵을 다시 채우려면 시간이 필요하죠.

급한 마음에 수도꼭지를 너무 세게 틀면 물이 사방으로 튀기만 할 뿐, 컵은 제대로 채워지지 않요.

오히려 적당한 세기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채워야 넘치지 않고 가득 채울 수 있어요.

당신의 마음 에너지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바닥까지 비워졌다고 해서 너무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마세요.

비워졌다는 것은, 다시 채워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스스로를 다그치며 억지로 무언가를 해내려고 애쓰는 것은, 세게 튼 수도꼭지처럼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흩어지게 할 뿐예요.

지금은 그저 비워진 컵을 가만히 내려놓고, 다시 맑은 물이 한 방울씩 차오르기를 기다려줄 시간예요.

그 시간이 하루가 걸릴지, 한 달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충분히 기다려주고 믿어준다면 당신의 마음 컵은 이전보다 더 맑고 깨끗한 에너지로 다시 가득 채워질 거라는 사실예요.

한 해 동안 열심히 밭을 갈고 씨앗을 심어 열매를 거둔 땅은, 다음 해 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요. 아무것도 심지 않고 땅의 힘을 회복시키는 ‘휴경’의 시간이죠.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텅 빈 땅처럼 보이지만, 그 시간 동안 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다음 해의 풍요를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당신이 겪는 무기력의 시간은, 어쩌면 당신의 마음밭이 맞이한 소중한 휴경의 시간일지 모릅니다. 그동안 정말 애쓰며 살아왔기에, 잠시 쉬어가며 힘을 되찾아야 하는 당연한 과정인 셈이죠.

그러니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당신의 마음을 너무 탓하지 마세요. 그 쉼과 비워냄의 시간 끝에, 당신의 마음밭에는 분명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이 피어날 테니까요.

그날을 조용히 믿으며, 오늘의 당신을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 수면 의학 팩트 체크

“미국 수면의학회(AASM)의 전문가 권고안에 따르면, 수면의 질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기상 시간의 고정’입니다. 연구 결과, 불규칙한 수면은 만성 피로를 유발하는 사회적 시차증(Social Jetlag)의 주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Share this insight

정진우

명상과 요가를 가르치는 마인드풀니스 안내자.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고요함을 찾는 법을 전합니다.

작성자의 모든 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