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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겸손과 비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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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 · 11분 소요
나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겸손과 비하의 차이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 창밖 풍경이 제법 가을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마음에도, 어쩌면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있을지 모르겠요.

누군가 칭찬을 건네는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은 적 있나요? 애써 만든 결과물을 보여주며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쁜 마음보다 왠지 모를 불안함과 어색함이 먼저 밀려온 적은요?

그럴 때 우리 입에서는 반사적으로 이런 말들이 튀어나옵니다. “아니에요, 별거 아니에요.”, “운이 좋았어요.”, “저 말고 다른 분들이 더 고생하셨죠.”

그 말을 하는 순간, 상대방은 당신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당신의 마음속은 어떤가요. 칭찬을 온전히 받지 못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 나의 노력과 가치를 스스로 부인해 버린 것에 대한 씁쓸함이 남지는 않았나요.

마치 나에게는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듯, 날아온 선물을 다급하게 밀어내는 사람처럼. 칭찬을, 인정을, 호의를 자꾸만 밀어내는 당신의 마음. 그 마음의 정체는 정말 ‘겸손’이 맞을까요?

어쩌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두껍게 둘러싼, ‘자기비하’라는 이름의 갑옷은 아닐까요. 이건 당신의 이야기예요. 이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당신의 마음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려 해요.

칭찬 앞에서 작아지는 마음

우리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야 한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칭찬은 때로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그 자리를 피하고 싶게 만듭니다.

“이 정도는 아닌데…”, “곧 실망하게 될 텐데…”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죠. 이 칭찬이 혹시나 과장된 것은 아닐까, 내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슬그머니 고개를 듭니다.

마치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너무 환하게 비추는 것만 같요. 그래서 감추고 싶었던 작은 흠집까지 전부 들켜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서둘러 칭찬을 부정해요. “에이, 아니에요.” 이 한마디는 사실 이런 뜻일지 모릅니다. “그렇게까지 저를 주목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그 정도의 빛을 감당할 수 없어요.”

칭찬을 밀어내는 행동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미래의 나를 미리 보호하려는 마음의 방어막일 수 있어요.

그건 겸손이 아닐지도 몰라요

우리는 종종 겸손과 자기비하를 헷갈리곤 해요. 나를 낮추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예요. 하지만 두 마음의 뿌리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나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가’에 있어요.

자기비하는 나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위예요. 잘 익은 탐스러운 사과를 수확해 놓고, “이건 벌레 먹어서 맛없을 거예요.”, “이건 너무 작아서 볼품없어요.”라며 일부러 흠집을 내는 것과 같요.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형편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진짜 겸손은 다릅니다. 내 손에 들린 사과가 얼마나 탐스럽고 좋은 향기를 가졌는지, 내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 키웠는지 스스로 충분히 아는 상태예요. 그 가치를 알기에 굳이 떠들썩하게 자랑하거나 뽐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바로 겸손예요.

내 마음속의 작은 검열관

그렇다면 왜 우리는 스스로를 깎아내리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우리 마음속에는 아주 엄격한 ‘검열관’이 한 명 살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 검열관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미움을 받지는 않을까, 혹시 시기나 질투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끊임없이 감시해요.

어린 시절, 칭찬을 받았을 때 “겸손해야지.”, “나대지 마라.” 와 같은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나의 괜찮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을 만들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칭찬을 받는 바로 그 순간, 마음속 검열관은 빨간 사이렌을 울립니다. “위험해! 빨리 너 자신을 낮춰!”, “이 칭찬을 그대로 받으면 너는 거만한 사람이 되는 거야!”라고 속삭이죠. 우리는 그 목소리에 놀라 허둥지둥 나를 낮추는 말을 내뱉게 돼요. 나를 미워할지도 모를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죠.

텅 빈 칭찬 그릇

우리의 마음을 하나의 그릇이라고 상상해 볼까요? 칭찬과 인정은 다른 사람이 그 그릇에 채워주는 따뜻한 물과 같요. 그 물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는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자기 가치감’을 채워나갑니다.

자기비하에 익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물을 부어주려고 할 때마다, 그릇에 일부러 구멍을 냅니다. “아니에요, 전 부족해요.”라고 말하며 스스로 구멍을 뚫는 것이죠. 물은 그릇에 담기지 못하고 전부 흘러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칭찬을 들어도 마음은 늘 텅 비어 있고 허기집니다.

반면 겸손한 사람은 튼튼하고 깨끗한 그릇을 가진 사람예요. 다른 사람이 물을 부어주면 “감사해요.” 하고 온전히 받아냅니다. 그릇이 가득 차도 넘치게 두거나, 물이 찼다고 요란하게 자랑하지 않요. 그저 묵묵히 그 따뜻함을 느끼고, 그 힘으로 또 다른 일을 해나갈 뿐예요.

나를 지키려다 나를 잃어버리는 일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 습관이 되면, 우리는 점점 진짜 내 모습을 잃어버리게 돼요. 다른 사람의 평가에 극도로 예민해지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며,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감각은 점점 무뎌집니다. 오직 ‘다른 사람에게 거만하게 보이지 않는 나’, ‘착하고 겸손하게 보이는 나’라는 역할에만 충실하게 되는 것예요.

마치 나라는 사람의 본래 색깔 위에, 회색 물감을 계속 덧칠하는 것과 같요. 결국에는 내가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돼요. 나를 지키기 위해 시작했던 행동이, 역설적으로 나 자신을 지워버리는 결과를 낳는 것예요. 마음은 늘 불안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지치게 돼요.

겸손은 나의 가치를 아는 것에서 시작돼요

진정한 겸손은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예요. 내가 가진 강점과 내가 이룬 성취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요. 동시에, 나의 부족한 부분이나 한계 또한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이기도 해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요. 우리는 모두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함께 가지고 있는 존재예요. 나의 괜찮은 모습을 온전히 인정한다고 해서 거만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가치를 제대로 알 때, 다른 사람의 가치 또한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어요.

나의 가치를 안다는 것은, 텅 빈 수레처럼 요란하게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예요. 이미 속이 꽉 차 있기에, 고요하고 단단하게 나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 바로 진짜 겸손이 주는 편안함예요.

‘감사합니다’ 한 마디의 마법

자기비하의 습관을 바꾸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요.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마음의 길을 바꾸는 데는 의식적인 연습이 필요해요. 가장 먼저 시작해 볼 수 있는 작지만 강력한 연습은, 칭찬을 들었을 때 그저 “감사해요.”라고 말해보는 것예요.

“아니에요.”, “별말씀을요.” 같은 말들을 잠시 멈춰보세요. 어색하더라도 상대방의 눈을 보고 “감사해요.”, “그렇게 말해주시니 힘이 나네요.” 라고 말해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입이 잘 떨어지지 않고 마음이 불편할 수 있어요. 마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작은 행동은 ‘나는 좋은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신호를 뇌와 마음에 보내는 것과 같요. 칭찬이라는 선물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통해, 우리는 서서히 텅 빈 그릇을 채워나갈 수 있어요.

나의 작은 성공들을 기록해 보세요

우리는 우리가 해낸 일들보다, 실수하거나 부족했던 점들을 훨씬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어요. 마음속 검열관이 성공은 당연한 것으로, 실패는 아주 큰 사건으로 기록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돼요.

이런 마음의 습관을 바꾸기 위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당신이 해낸 일들을 기록해 보세요. 거창한 성공이 아니어도 괜찮요. ‘오늘 아침에 이불 정리하기’, ‘미루던 전화 한 통 하기’, ‘동료에게 친절한 말 건네기’ 같은 작은 성공들을 매일 밤 잠들기 전, 짧게라도 적어보는 거예요.

이 기록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펼쳐볼 수 있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거 자료’예요. 이 증거들이 하나둘 쌓이면, 당신은 더 이상 근거 없는 자기비하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될 것예요.

당신의 존재는 그 자체로 충분해요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가치가 무엇을 얼마나 잘 해내는가에 달려있다고 착각해요. 뛰어난 성과를 내야만,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죠. 하지만 당신의 가치는 성취나 능력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꽃은 그저 아름답게 피어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치가 있어요.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든 받지 않든, 그 존재 자체로 충분해요.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느껴져도, 당신이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유일하며 그 자체로 소중해요.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마음은, ‘조건 없는 자기 가치감’이 부족할 때 더 자주 찾아옵니다. 이제는 ‘무엇을 잘하는 나’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소중히 여겨주는 연습이 필요해요.

나를 위한 다정함의 씨앗을 심는 시간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습관일 수 있어요. 하루아침에 바꾸려고 너무 애쓰다 보면, 또다시 ‘이것도 제대로 못 하는 나’를 탓하게 될지 모릅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괜찮요.

넘어져도 괜찮고, 다시 예전처럼 칭찬을 밀어내도 괜찮요.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 ‘아, 내가 또 나를 지키려고 그랬구나.’ 하고 다정하게 마음을 알아주세요. 마치 어린아이가 넘어졌을 때 “왜 조심하지 않았어!”라고 혼내는 대신, “많이 아팠지?” 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처럼요.

나에게 다정해지는 것. 자기비하의 단단한 땅을 뚫고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씨앗예요. 스스로를 향한 비난을 멈추고, 따뜻한 이해와 격려를 보내줄 때, 당신의 마음속에는 진짜 겸손의 뿌리가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자리 잡기 시작할 것예요.

우리의 마음은 하나의 정원과 같요. 오랫동안 자기비하라는 이름의 차가운 돌멩이들만 가득했던 그 정원에, 이제는 새로운 씨앗을 심을 시간예요.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라는 다정함의 씨앗을 말이죠.

씨앗을 심었다고 해서 바로 다음 날 화려한 꽃이 피지는 않을 거예요. 꾸준히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며 기다려주어야 해요. 스스로의 가치를 믿어주고, 작은 성공을 칭찬해주고, 실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하루하루가 바로 정원에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는 일예요.

그렇게 당신의 마음 정원을 정성껏 가꾸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는 당신의 가치를 아는 단단한 나무가 자라나 있을 거예요. 그 나무는 굳이 자신이 얼마나 큰지 자랑하지 않아도, 묵묵히 그늘을 만들어주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낼 것예요.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당신만의 겸손예요.

당신의 마음밭에, 오늘은 어떤 다정한 씨앗 하나를 심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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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건강한 거리두기를 연구하는 관계 전문가.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심플하고 현명하게 푸는 법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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