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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건강하게 해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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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 · 6분 소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건강하게 해소하기

“그냥 누가 날 좀 업고 갔으면 좋겠다”

어릴 적, 다리가 아프면 부모님이 포근한 등으로 업어주던 기억이 있나요? 그 등 뒤에서는 세상 어떤 걱정도 없었습니다. 그저 맡기면 되었으니까요.

어른이 된 지금, 문득 세상살이가 너무 고단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무겁게 느껴질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때의 등짝을 찾습니다.

“아무것도 결정하기 싫어.” “누가 대신 살아줬으면 좋겠어.” “그냥 나 좀 안아줘.”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기대고 싶은 마음. 이것은 나약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퇴행(Regression)’ 욕구라고 합니다. 현재의 스트레스가 너무 과도해서, 잠시 안전했던 유아기로 돌아가 보호받고 싶은 마음의 비상벨이 울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타인에게 유아기적 의존을 요구하면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인정하면서도, 관계를 해치지 않고 건강하게 해소하는 방법을 알아봅니다.


1. 의존(Dependency) vs 상호의존(Interdependence)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병적 의존’과 ‘건강한 상호의존’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완전히 독립적일 수는 없습니다.

① 병적 의존 (Dependency): “네가 없으면 난 살 수 없어”

상대방을 나의 생명줄(숙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상대의 기분에 따라 내 하루가 결정되고, 상대가 없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은 공포를 느낍니다. 이는 상대를 지치게 만들고, 결국 관계를 파국으로 이끕니다.

  • 특징: 상대방을 ‘구원자’로 이상화함. “이 사람만 만나면 내 우울증이 나을 거야.”

② 상호의존 (Interdependence): “함께라서 더 행복해”

두 개의 온전한 기둥이 지붕을 함께 받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지만, 너와 함께할 때 더 풍요롭고 즐겁다는 태도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안전네트가 되어주지만, 얽매이지는 않습니다.

  • 특징: 상대방을 ‘동반자’로 인식함. “힘든 일이 있는데, 이야기 좀 들어줄 수 있어?”

우리가 지양해야 할 것은 상대방을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구세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이라는 짐은 기본적으로 당신이 져야 합니다. 다만, 너무 무거울 때 잠시 “손 좀 잡아줘”라고 부탁할 수는 있습니다.


2. 내면의 아이(Inner Child) 달래기

누군가에게 미친 듯이 의지하고 싶을 때, 사실 울고 있는 것은 당신의 ‘내면아이’입니다. 어릴 적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거나, 보호받지 못한 결핍이 건드려진 것입니다.

이때 가장 먼저 의지해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어른이 된 나 자신’입니다. 타인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먼저 나를 안아주는 ‘셀프 수딩(Self-Soothing)’ 기술을 연습해 보세요.

① 나비 포옹법 (Butterfly Hug)

양팔을 교차해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으세요. 그리고 나비가 날갯짓하듯 양쪽 어깨를 번갈아 천천히 토닥여주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해줍니다. “괜찮아, 지금 많이 힘들지? 내가 있잖아. 내가 널 보호해 줄게.” 이 간단한 동작은 뇌의 양반구를 자극하여 불안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탁월합니다.

② 나를 위한 따뜻한 한 끼

배달 음식으로 대충 때우지 말고, 정성스럽게 나를 위한 식사를 차려보세요. 혹은 따뜻한 차 한 잔을 끓여서 가장 예쁜 컵에 담아 마시세요. “나는 소중하게 대접받을 자격이 있어.” 내가 나를 귀하게 대할 때, 내면의 아이는 “나는 버려지지 않았어”라는 깊은 안도감을 느낍니다. 이 안도감이 타인에 대한 과도한 갈구를 줄여줍니다.


3. 안전하게 기대는 법 (티피 텐트 전략)

인디언 텐트(티피)를 보세요. 여러 개의 기둥이 서로에게 살짝 기대어 서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무너져도 텐트는 완전히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존 대상도 이렇게 분산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연인, 배우자, 절친)에게 모든 정서적 무게를 싣지 마세요.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의 ‘의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세요.

① 역할 분담하기

  • 가벼운 수다와 웃음: 친구 A
  • 진지한 고민 상담: 친구 B나 멘토
  • 전문적인 조언: 심리상담사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무조건적인 지지: 반려동물, 종교, 신념

② 명확하게 요청하기

막연하게 칭얼거리거나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대신, 구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세요.

  • 나쁜 예: (한숨 쉬며) “하… 진짜 다 때려치우고 싶다…”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짐)
  • 좋은 예: “나 오늘 회사에서 진짜 힘든 일이 있었는데, 해결책 말고 그냥 내 편 들어주면서 욕 좀 해줄 수 있어? 30분만 시간 내줘.” (상대는 역할을 명확히 알고 편안해짐)

4. 전문가는 ‘돈 주고 사는’ 최고의 의존 대상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를 붙잡고 밤새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나 가족도 각자의 삶이 있기에 매번 받아줄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 심리상담사를 찾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가장 현명한 자원 활용입니다. 상담사는 훈련받은 전문가로서 당신의 의존 욕구를 안전하게 받아주고(Holding), 당신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것은 의지가 아니라 ‘치유’의 과정입니다. 전문가에게 기대는 것은 당신이 당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가장 적극적인 노력입니다.


5. 결론: 비틀거려도 내 발로 서기

사람 인(人) 자가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인 것처럼, 우리는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서로 기대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어야 합니다. 내가 무너져 있으면 상대를 끌어당겨 함께 넘어지게 됩니다.

오늘 하루, 너무 힘들다면 잠시 주저앉아도 좋습니다. 울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눈물을 닦고 나면, 다시 당신의 두 다리에 힘을 주세요. 비틀거리는 그 걸음조차도, 당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니까요.

당신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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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건강한 거리두기를 연구하는 관계 전문가.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심플하고 현명하게 푸는 법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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