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Safemental

웃고 떠들다가도 집에 오면 밀려오는 허무함에 대하여

공유하기
김민지 · · 5분 소요
웃고 떠들다가도 집에 오면 밀려오는 허무함에 대하여

현관문을 닫는 순간, 가면이 벗겨진다

친구들과의 모임. 맛있는 음식, 끊이지 않는 웃음, 적당히 들뜬 분위기. “너 오늘 진짜 웃겼어!”, “다음에 또 봐!” 밝게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어두운 방에 들어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 마치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방금 전까지의 화려한 조명은 꺼지고 칠흑 같은 적막이 감돕니다. 그리고 가슴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듯한 헛헛함이 밀려옵니다.

“나 아까 진짜 즐거웠던 거 맞나?” “내가 했던 말들이 너무 가식적이었나?” “결국 나는 혼자구나.”

분명 즐겁게 놀았는데, 왜 집에만 오면 이토록 사무치게 외롭고 허무할까요? 혹시 내가 이중인격자이거나 우울증인 걸까요?

이 글에서는 많은 현대인들이 겪는 ‘군중 속의 고독’‘관계 후 허무함’의 심리적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1. 관계의 숙취 (Social Hangover)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 날 숙취가 오듯, 사람을 많이 만나 감정 에너지를 많이 쓰면 ‘관계의 숙취’가 찾아옵니다.

도파민의 급격한 하락 (Dopamine Crash)

사람들과 웃고 떠들 때는 뇌에서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그러다 집에 와서 자극이 사라지면 도파민 수치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이 낙차(Drop)가 클수록 우리는 더 큰 우울감과 공허함을 느낍니다. 마치 축제가 끝난 뒤의 광장이 더 쓸쓸해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리적 반응입니다.

에너지 방전

특히 내향적인 사람(Introvert)에게 사회적 활동은 ‘에너지 소비’입니다. 즐거웠다고 해서 에너지가 안 드는 게 아닙니다. 즐겁게 놀기 위해서도 에너지는 듭니다. 집에 왔을 때 느끼는 허무함은 사실 마음이 보내는 “배터리 방전됐으니 얼른 충전해”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2. 페르소나(Persona)와 진짜 나의 괴리

분석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위해 쓰는 사회적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습니다.

모임에서의 나는 발랄하고, 유머러스하고, 리액션 좋은 사람을 연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무의식적으로요.) 남들을 웃기기 위해 약간의 과장 섞인 말을 하거나, 내 기분보다 더 밝은 척했을 수도 있습니다.

집에 돌아와 그 가면을 벗었을 때, ‘연기하던 나’와 ‘원래의 나’ 사이의 간극을 느끼게 됩니다. “아까 그 모습은 진짜 내가 아닌데…” 이 괴리감이 자기기만처럼 느껴져 허무함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페르소나는 위선이 아닙니다.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필요한 보호막이자 도구입니다.


3. 얕은 관계에 대한 회의감

웃고 떠들었지만, 정작 내 깊은 속내를 털어놓지는 못했을 때 허무함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나눈 대화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이 분위기가 깨지겠지?”

겉으로는 친밀해 보이지만 속은 겉도는 대화, ‘피상적인 관계(Superficial Relationship)‘에 대한 피로감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깊은 연결(Deep Connection)을 갈망하기 때문에, 얕은 만남만으로는 영혼의 허기를 채울 수 없습니다.


4. 허무함을 달래는 처방전

이 감정을 단순히 ‘우울’로 치부하고 억누르지 마세요. 허무함은 당신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혹은 더 깊은 관계가 필요하다는 신호입니다.

① 감정의 샤워 (Emotional Shower)

외출 후 몸을 씻듯이, 마음도 씻어내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샤워를 하며 물줄기에 모임에서의 들뜬 감정, 긴장감, 후회 등을 씻어내려 보내세요. 옷을 가장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이제 연극은 끝났어. 자연인으로 돌아왔다”라고 선언하세요.

② “오늘 나 진짜 애썼다” 칭찬하기

모임에서 분위기를 띄우느라, 남들 비위 맞추느라 고생한 당신입니다. 그 노력을 ‘가식’이라고 비난하지 말고 ‘수고’로 인정해 주세요. “오늘 사람들 즐겁게 해주느라 애썼어. 고생했다.”

③ 침묵의 시간 즐기기 (Solitude)

허무함을 없애려고 TV를 켜거나 유튜브를 보지 마세요. 오히려 그 고요함을 정면으로 마주하세요. 따뜻한 조명 하나만 켜두고, 차를 마시거나 일기를 쓰세요. 밖으로 향했던 에너지를 다시 내 안으로 거두어들이는(Centering) 시간입니다.

④ 진짜 내 사람 챙기기

수많은 지인보다, 내 우울한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는 한 명의 친구가 더 소중합니다. 허무함이 너무 짙을 땐, 정말 편한 사람에게 전화해서 “나 오늘 좀 헛헛하다”라고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그 한마디의 연결이 수백 마디의 농담보다 더 큰 위로가 됩니다.


5. 결론: 당신은 이중인격자가 아닙니다.

밖에서의 밝은 당신도, 집에서의 우울한 당신도 모두 소중한 당신의 일부입니다. 그림자가 짙다는 건, 그만큼 빛이 강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오늘 느낀 그 허무함은, 당신이 그만큼 오늘 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니 오늘 밤은 그 텅 빈 마음을 자책으로 채우지 말고, 따뜻한 휴식으로 채워주세요.

당신의 가면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벗어두고 쉴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Share this insight

김민지

10년 차 임상심리 전문가. 뇌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마음의 원리를 분석하고, 치유의 길을 안내합니다.

작성자의 모든 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