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웃고 있는데, 왜 나만 슬플까?”
시끌벅적한 회식 자리, 오랜만에 만난 동창회, 혹은 북적이는 주말의 홍대 거리. 분명 눈앞에는 맛있는 음식이 있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나도 분위기에 맞춰 입꼬리를 올리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칩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웃음소리가 크면 클수록, 내 안의 고요한 적막은 더 커져만 갑니다. 마치 투명 유리벽 하나가 나와 세상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들은 저 유리벽 너머의 세상에서 자기들끼리 연결되어 있는데, 나만 홀로 산소 공급이 끊긴 우주 공간에 부유하고 있는 듯한 기분.
이것을 우리는 ‘군중 속의 고독(Solitude in the Crowd)‘이라고 부릅니다. 물리적으로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은 “심심하다” 정도로 끝날 수 있지만,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나는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인가?”라는 깊은 자기 부정과 수치심을 동반하기에 훨씬 더 고통스럽습니다.
오늘은 웃고 있는 가면 뒤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당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우리는 왜 ‘연결’될수록 ‘고립’되는가?
현대인은 역사상 가장 많이 연결된(Connected) 인류라고 합니다. SNS, 메신저, 24시간 울리는 알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상 가장 외로운 인류이기도 하죠. 왜 우리는 이토록 촘촘한 네트워크 속에서 ‘섬’이 되어버린 걸까요?
① ‘진짜 나(True Self)‘를 숨기는 가면무도회
우리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를 연기하는 데 너무나 익숙해졌습니다. *“나 요즘 힘들어”*라는 말 대신 *“나 이번에 승진했어”*라는 말을 선택하고, 우울한 표정 대신 ‘필터’를 씌운 화사한 셀카를 올립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사람들이 나의 ‘보여지는 모습(가면)‘을 좋아해 줄 때, 나는 기쁨이 아니라 묘한 공허함을 느낍니다. ‘저 사람들은 가면을 쓴 나를 좋아하는 거지, 진짜 못나고 우울한 나를 알면 다 떠날 거야.’ 이런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기에, 환호 속에 있으면서도 철저히 혼자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나의 진짜 모습이 수용받지 못했다는 느낌, 바로 고독의 씨앗입니다.
② 정서적 허기(Emotional Hunger)와 가짜 음식
배가 고플 때 영양가 있는 밥을 먹어야 하듯, 마음이 고플 땐 깊은 정서적 교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군중’은 종종 패스트푸드와 같습니다. 가볍고, 자극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은 주지만, 먹고 나면 더부룩하고 금세 허기가 지죠. 깊은 대화 대신 가십거리, 고민 상담 대신 “야, 술이나 마셔!”라는 가벼운 위로들. 이런 ‘영양가 없는 관계’들을 폭식하다 보니, 배는 부른데(사람은 많은데) 영양실조(정서적 결핍)에 걸리는 것입니다.
③ 비교가 만든 투명 감옥
사람들 속에 있으면 필연적으로 ‘비교’가 시작됩니다. ‘쟤는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이지?’ ‘저 사람들은 다 끼리끼리 잘 노는데, 나만 겉도는 것 같네.’ 스스로를 타인과 비교하며 깎아내리는 순간, 마음의 문이 ‘쾅’ 하고 닫힙니다. 남들이 나를 따돌리는 게 아니라, 내 열등감이 나를 스스로 고립시키는 ‘투명 감옥’을 만드는 것이죠.
2. 고립된 섬에서 ‘다리’를 놓는 법
그렇다면 이 지독한 고독감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작정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더 시끄러운 곳으로 가는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바닷물을 마시면 목이 더 마르듯, 얕은 관계는 외로움을 증폭시킬 뿐이니까요.
① ‘유리벽’의 실체를 인정하기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외롭구나. 사람들 속에 있어서 더 비참하구나.”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들키는 것을 수치스러워해 아닌 척, ‘인싸’인 척 연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 연기가 유리벽을 더 두껍게 만듭니다. “사실 나 오늘 좀 어색하네.” “다들 신나 보이는데 나만 좀 쳐지는 기분이야.” 가까운 사람에게, 혹은 일기장에라도 내 마음의 상태를 솔직하게 고백해 보세요. 외로움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유리벽에 금을 내는 첫 번째 망치질입니다.
② ‘100명의 지인’보다 ‘1명의 친구’ 찾기
휴대폰 속 500명의 연락처는 당신의 외로움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나의 어둠을 보여줘도 도망가지 않을 단 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 애쓰지 마세요. 그 많은 사람들 중 내 주파수와 맞는 딱 한 사람을 찾는 데 집중하세요. 그 한 사람과 나누는 30분의 깊은 대화가, 30명과 나누는 3시간의 수다보다 당신을 더 충만하게 채워줄 것입니다. 깊이가 얕음을 이깁니다.
③ ‘타인’에게 향한 시선을 ‘나’에게 돌리기
군중 속에서 외로운 이유는, 내 시선이 온통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상하게 보일까? 말이 너무 없나? 재미없어 보일까?’ 이 ‘자기 검열(Self-monitoring)‘의 카메라를 끄세요. 그리고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리거나, 아예 내 앞의 상대방에게 호기심을 가져보세요. “저 사람은 오늘 무슨 일로 기분이 저렇게 좋을까?” “이 음식 맛은 정확히 어떤 맛이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감각과 호기심에 집중할 때, 불안한 고립감은 옅어지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편안함이 찾아옵니다.
3.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역설적이게도,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만이 ‘함께 있을 때’도 외롭지 않습니다.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은, 아무리 사람을 만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사색을 하며 내면이 단단하게 채워진 사람은 군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타인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넘치는 사랑을 ‘나눠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죠.
지금 느끼는 그 외로움은, 어쩌면 “사람 쫓아다니느라 그만 소진되고, 이제 너 자신과 친해질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일지도 모릅니다.
4. 우리는 모두 연결된 섬들이다
시인 정현종 님은 말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모두 섬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샴쌍둥이가 아닌 이상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는 없어요. 그러니 타인에게서 100%의 이해와 공감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릅니다.
약간의 외로움은 인간의 기본값(Default)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내가 문제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인간이라서 외로운 거였어.” 이 외로움을 병으로 취급하지 말고, 나만의 깊이 있는 분위기로, 타인을 향한 따뜻한 연민으로 승화시켜 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은 이상한 섬이 아닙니다. 조금 더 섬세하고, 조금 더 깊이를 갈망하는, 아주 아름다운 섬입니다. 그리고 바다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우리 모든 섬들은 거대한 대륙으로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될 거예요.
오늘도 사람들 틈에서 버티느라 고생한 당신의 섬에, 따뜻한 위로의 파도를 보냅니다.
📚 심리학 연구 노트
“미국 심리학회(APA)의 최근 연구 자료에 따르면, 자신의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명명하는 ‘감정 라벨링(Affect Labeling)‘만으로도 뇌의 스트레스 반응이 즉각적으로 감소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