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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봤자 안될 거야’라는 내 안의 패배주의와 대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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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 · 6분 소요
‘그래 봤자 안될 거야’라는 내 안의 패배주의와 대화하기

“이번에 영어 학원 등록해볼까?” “새로운 프로젝트 기획안을 내볼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연락해볼까?”

마음속에서 반짝이는 의욕의 불씨가 피어오르려는 찰나, 어김없이 찬물을 확 끼얹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야, 꿈 깨. 그래 봤자 안될 거야.” “지난번에도 그러다가 망신만 당했잖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너무나 차갑고 냉소적인 이 목소리.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목소리’이기에 반박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이 목소리에 설득당하면, 우리는 결국 시작조차 하지 않은 채 주저앉고 맙니다. 그리고 씁쓸하게 되뇌죠. “그래, 나 같은 게 무슨…”

심리학에서는 이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혹은 ‘패배주의적 사고’라고 부릅니다. 이 목소리는 도대체 왜 생겨난 걸까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이 끈질긴 방해꾼과 화해하고 나아갈 수 있을까요?

1. 패배주의는 ‘상처받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내 안의 패배주의는 나를 미워해서 괴롭히는 악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겁먹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과거에 당신이 온 마음을 다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순간, 사람들에게 거절당해 비참했던 순간,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샀던 아픈 기억들이 당신의 무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그때의 고통이 너무 컸기에, 뇌는 결심합니다.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게 하지 않겠어!”

그래서 당신이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할 때마다, 뇌는 비상벨을 울리며 ‘패배주의’라는 방어막을 칩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어.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어.” 즉, ‘그래 봤자 안될 거야’라는 말은 사실 “제발 나를 보호해 줘,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라는 간절한 호소인 셈입니다.

2. 안전하지만, 갇혀버린 감옥

이 방어막은 확실히 효과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실패의 쓴맛도, 거절의 아픔도 겪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가는 큽니다. 성취의 기쁨, 성장의 설렘, 세상과 연결되는 행복까지 모두 차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안전하기 위해 만든 벽이 결국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감옥 안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습니다. 나는 늙어가지만, 내 영혼은 성장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돕니다. 실패보다 더 무서운 ‘정체(Stagnation)‘입니다.

3. 내 안의 비관론자와 ‘대화’하는 법

무조건 “아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돼!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겁에 질린 아이에게 억지로 용기를 강요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대신, 그 목소리를 인정하고 대화를 시도해보세요.

1단계: 목소리 분리하기 (Externalization)

그 목소리가 들릴 때, 그것을 ‘나의 생각’이라고 여기지 말고, 내 안에 사는 ‘걱정 인형’이 말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아, 또 우리 걱정쟁이가 나왔구나.”

2단계: 의도 읽어주기 (Validation)

그 목소리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보세요. “네가 나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 알아. 또 실패해서 상처받을까 봐 무서운 거지? 나를 지켜주려고 해서 고마워.” 비난 대신 감사를 전하면, 날이 서 있던 방어기제가 스르르 무장 해제를 합니다.

3단계: 협상하기 (Negotiation)

그리고 정중하게 제안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번엔 아주 작게 한번 해보고 싶어. 예전처럼 무모하게 덤비지는 않을게. 만약 하다가 힘들면 바로 멈꿀게. 딱 5분만 해보는 건 어때?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4. ‘결과’가 아닌 ‘실험’으로 접근하기

패배주의를 무력화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가벼움’입니다. 모든 일을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무거운 시험으로 생각하면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모든 것을 ‘데이터를 수집하는 실험’이라고 생각해보세요.

  • “영어 공부를 해서 원어민처럼 되어야지!” (X) -> 실패 확률 높음
  • “오늘 영어 단어 3개를 외우면 내 뇌가 어떻게 반응하나 볼까?” (O) -> 실험

실험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아, 이 방법은 아니네? 다른 방법으로 해봐야지”라는 데이터가 남을 뿐입니다. ‘실패’라는 단어를 내 사전에서 지우고, ‘시행착오’ 혹은 ‘베타 테스트’라고 바꿔보세요. 삶은 거창한 증명의 무대가 아니라, 수많은 가설을 검증해가는 흥미로운 실험실입니다.

5. 아주 작은 승리의 기억 쌓기 (Micro-wins)

학습된 무기력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학습된 낙관주의(Learned Optimism)‘입니다. 그리고 낙관주의는 거창한 정신 승리가 아니라, 아주 작은 성공 경험들이 쌓여서 만들어집니다.

오늘 당장, ‘그래 봤자 안될 거야’라는 목소리가 비웃을 수도 없을 만큼 사소한 성공을 만들어보세요.

  • 다 쓴 치약 짜기 대신 새 치약 꺼내기
  • 현관문 앞에 있는 신발 가지런히 놓기
  • 물 한 잔 마시기

이 하찮은 성공들이 뇌에게 새로운 신호를 보냅니다. “어? 내가 마음먹은 대로 무언가가 바뀌네? 나한테도 통제권이 있네?” 이 작은 효능감(Self-efficacy)이 모여 결국 인생의 큰 파도를 넘을 수 있는 단단한 배가 됩니다.

당신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미래는 과거의 데이터만으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내 안의 겁쟁이에게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건네며 말해주세요. “그래도 우리, 딱 한 발자국만 같이 가볼까?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모르잖아.”


🧠 뇌과학 연구 노트

“미국 매사추세츠 의과대학(UMass)의 존 카밧진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의 결과에 따르면, 하루 20분의 명상 실천만으로도 뇌의 편도체(불안 중추) 크기가 감소하고 전두엽(이성적 판단)의 활성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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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10년 차 임상심리 전문가. 뇌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마음의 원리를 분석하고, 치유의 길을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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