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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emental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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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 · 22분 소요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한 진짜 이유

퇴근하고 돌아온 텅 빈 방, 현관문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밤예요.

몸은 소파에 녹아내릴 듯 무거운데,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시끄럽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낮의 회의, 내일 아침까지 보내야 할 메일, 며칠째 풀리지 않는 문제로 가득 차 윙윙거립니다.

스마트폰을 들어 무심코 메일함을 새로고침해요. 혹시나 새로운 메시지가 와 있지는 않은지 단체 대화방을 들락거립니다.

친구와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도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자꾸만 일과 관련된 무언가가 경고등처럼 깜빡예요. 마치 내 머릿속에 ‘일’이라는 이름의 작은 상사가 24시간 상주하며 나를 감시하는 기분예요.

분명히 나는 쉬고 있는데, 제대로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요. 마치 충전기에 꽂아두었지만, 백그라운드에서 수십 개의 앱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는 스마트폰처럼 말이죠.

에너지는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보다 더 무거운 몸으로 다시 일터로 향해요.

이 모든 게 너무나 익숙해서, 원래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고,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주 작은 목소리가 속삭예요.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나는 언제쯤 진짜로 쉴 수 있을까?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하고요.


내 안의 스위치를 끄는 법을 잊어버렸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일 모드’와 ‘쉼 모드’를 바꿔주는 스위치가 있어요. 회사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는 순간 ‘일 모드’ 스위치가 켜지고, 퇴근하며 문을 나서는 순간 ‘쉼 모드’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어야 하죠.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이 스위치를 끄는 법을 잊어버렸요. 몸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의 스위치는 여전히 ‘일 모드’에 고정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녁을 먹으면서도 일 생각을 하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내일 할 일을 시뮬레이션해요. 심지어 꿈에서까지 일하는 악몽을 꾸다 놀라서 깨기도 해요.

‘일 모드’는 기본적으로 긴장과 각성의 상태예요. 문제를 해결하고, 효율을 높이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기 위해 최적화된 상태죠.

이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우리 몸과 마음은 어떻게 될까요? 항상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을 상상해 보세요. 언젠가는 탄성을 잃고 늘어지거나, 결국에는 끊어지고 말 거예요.

우리가 느끼는 만성적인 피로와 무기력함은 바로 이 고장 난 스위치 때문일 수 있어요. 쉬어야 할 시간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죠.

‘쉼 모드’는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긴장을 풀고, 나를 돌보고, 소모된 에너지를 다시 채우는 아주 중요한 시간예요.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과 연결될 수 있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를 가만히 들여다볼 여유를 갖게 되죠.

일과 삶의 분리는 단순히 시간을 나누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내 안의 스위치를 내 의지대로 켜고 끌 수 있는 힘을 되찾는 일예요.

나를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며, 팽팽한 고무줄을 잠시 내려놓고 느슨하게 만들어주는 일예요.

오늘 저녁, 잠들기 전 잠시만이라도 의식적으로 ‘쉼 모드’ 스위치를 켜보는 건 어떨까요?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아주 작은 행동만으로도 충분해요.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는 잊고 있던 스위치 끄는 법을 다시 기억해낼 수 있을 거예요.

나라는 사람의 색깔이 점점 옅어질 때

혹시 이런 생각해 본 적 있나요? ‘회사에서의 나’를 빼고 나면,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김대리’, ‘박팀장’, ‘이선생님’처럼 직장에서의 역할로 살아갑니다. 그 역할에 익숙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문제는 그 역할이 너무 커져서 ‘나’라는 사람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할 때 발생해요. 마치 하얀 도화지에 회색 물감을 계속 덧칠해서,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것처럼요.

예전에는 책 읽는 걸 좋아했는데, 마지막으로 책장을 넘긴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요.

친구들과 만나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며 웃는 게 낙이었는데, 요즘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약속을 미루기 일쑤예요.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어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주말에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했는지… 모든 것이 점점 희미해져만 갑니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대화의 주제는 온통 회사 이야기뿐예요. 회사의 힘든 점, 상사 이야기, 앞으로의 프로젝트 걱정…. 그 이야기를 빼고 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지기도 해요.

마치 내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나’는 조연으로 밀려나고, ‘일’이라는 주인공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듯한 기분예요.

일과 삶을 분리한다는 것은, 이처럼 옅어져 가는 나라는 사람의 색깔을 다시 되찾아오는 과정예요. ‘회사에서의 나’에게 잠시 휴가를 주고, 역할 뒤에 숨어있던 진짜 나를 무대 위로 올려주는 시간이죠.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도 좋요.

퇴근길에 일부러 다른 길로 걸어보며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것.

좋아하는 가수의 옛날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는 것.

아무 생각 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이런 무용하고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시간들이, 사실은 나라는 사람의 윤곽을 다시 뚜렷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찰나예요.

우리는 누군가의 팀원이기 이전에, 그저 나 자신예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유한 색깔과 결을 가진 소중한 존재죠.

일은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전부가 될 수는 없요. 일 때문에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색이 바래지 않도록, 오늘은 나에게 작은 여백을 선물해 주세요.

텅 빈 에너지 통장,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상쾌함보다는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버티나’하는 막막함이 먼저 밀려오지 않나요? 주말 내내 잠을 자고 쉬었는데도 월요일 아침이면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고요.

우리의 에너지를 은행 통장에 비유해 볼 수 있어요. 매일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쉬면서 우리는 에너지 통장에 잔고를 채웁니다. 그리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그 잔고를 사용하죠.

그런데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으면, 마치 통장에 구멍이 뚫린 것과 같은 상태가 돼요. 밤에도, 주말에도, 쉬는 시간에도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면서 에너지가 계속해서 야금야금 빠져나가는 거죠.

열심히 잠을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잔고를 채워 넣지만,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양이 더 많으니 통장은 언제나 바닥을 보예요. 바로 우리가 ‘쉬어도 쉰 것 같지 않다’고 느끼는 진짜 이유예요.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요. 아무리 물을 부어도 독은 결코 채워지지 않죠.

이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는 ‘번아웃’, 즉 에너지 고갈 상태에 이르게 돼요. 단순히 피곤한 것을 넘어,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깊은 무기력감에 빠지게 돼요.

예전에는 즐거웠던 일조차 귀찮게 느껴지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마저 에너지가 드는 힘든 일이 되어버립니다. 마음이 심한 감기 몸살에 걸린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거죠.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은, 우리 에너지 통장의 구멍을 막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작업예요. 퇴근 후에는 의식적으로 일과 관련된 생각과 행동을 차단함으로써, 에너지가 더 이상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댐 역할을 해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온전히 쉬는 시간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의 에너지 통장은 차곡차곡 채워지기 시작해요. 이렇게 채워진 에너지는 다음 날 더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

결국 일과 삶의 분리는 더 잘 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더 잘 일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해요.

혹시 지금 당신의 에너지 통장 잔고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나요? 그렇다면 오늘은 무엇보다 당신의 통장에 뚫린 구멍을 막는 일에 집중해 주세요.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것들로부터 당신을 지켜주세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보여주는 나의 가장 지친 얼굴

하루 종일 일터에서 시달리고 난 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문 앞에서 나를 가장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 연인, 혹은 나의 작은 반려동물.

그 소중한 존재들 앞에서,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요?

온종일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친절하고 유능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썼던 에너지는 이미 모두 방전된 상태.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짜증과 피로, 그리고 날카로움뿐예요.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말에 무심코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작은 실수에 버럭 화를 내기도 해요. 혹은 너무 지쳐서 아무런 대꾸도 할 힘조차 없이, 그저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만 들여다볼 때도 많죠.

분명히 몸은 함께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회사에 남아있는 유령과 같요. 아이의 재롱에도, 연인의 다정한 질문에도 온전히 마음으로 반응하지 못해요.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또다시 깊은 죄책감과 자괴감을 느낍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인데, 왜 나는 항상 이런 모습만 보여줄까’ 하고요.

우리는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상처를,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인 집에서,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무심결에 풀어놓는 경향이 있어요. 마치 밖에서 잔뜩 묻혀온 흙먼지를 집 안에서 털어내는 것처럼요.

일과 삶의 분리는, 바로 이 흙먼지를 집 안으로 가져오지 않기 위한 노력예요. 현관문을 열기 전, 잠시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하며 회사에서의 역할과 감정을 문밖에 내려놓는 의식과도 같요.

물론 쉽지 않은 일예요. 하루아침에 되기도 어렵죠.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일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도 해요.

나의 가장 좋은 에너지, 가장 따뜻한 미소, 가장 다정한 눈빛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직장 동료나 상사가 아닙니다.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예요.

일터에서의 갑옷을 벗고, 가장 편안하고 솔직한 나로 돌아올 수 있는 안전한 공간. 그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일과 나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만들어야만 해요.

쉼은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우리는 종종 ‘쉰다’는 것을 마치 기계를 수리하는 과정처럼 생각하곤 해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더 높은 생산성을 내기 위해, 닳아버린 부품을 잠시 교체하고 기름칠하는 시간처럼요.

‘주말 동안 푹 쉬었으니, 내일부터는 다시 열심히 달려야지.’

‘이번 휴가는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야.’

이런 생각들 밑바탕에는 ‘쉼’이 ‘일’을 위한 수단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요. 쉬는 것조차 더 나은 노동자가 되기 위한 과정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쉼의 진짜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쉼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해요.

쉼은 고장 난 나를 수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온전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예요. 생산성이나 효율성의 잣대로는 측정할 수 없는, 그냥 나로서 존재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예요.

아무런 목적 없이 뒹굴거리고,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을 읽고, 실력이 늘지 않아도 그저 즐거운 취미에 몰두하는 시간. 이런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들이 사실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가장 중요한 영양분예요.

우리는 기계의 부품이 아닙니다. 매일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만 가치가 증명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예요.

가끔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하염없이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가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예요.

일과 삶을 분리한다는 것은, 이처럼 삶의 모든 순간을 ‘일’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해요. 나의 가치가 오직 성과나 결과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예요.

당신이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고 해서, 당신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몸과 마음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준, 아주 지혜로운 선택이었을지 모릅니다.

쉼을 일의 연장선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쉼은 그 자체로 신성하고 존중받아야 할,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예요. 오늘은 그저, 당신의 존재 자체를 위해 쉬어주세요.

보이지 않는 선 하나가 나를 지켜줍니다

‘경계’ 혹은 ‘선’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어쩐지 사람들을 밀어내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차가운 단어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일과 삶 사이에서의 ‘선’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 선은 다른 사람을 향한 벽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와 같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 집을 지켜주는 담장이나 울타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누구나 쉽게 들어와 나의 공간을 어지럽히고, 나의 소중한 물건들을 함부로 만질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늘 불안에 떨며 편안하게 쉴 수 없겠죠.

일과 삶 사이의 경계도 마찬가지예요. 이 보이지 않는 선이 없을 때, 일은 시도 때도 없이 나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해요.

퇴근 후 저녁 시간, 주말, 심지어 휴가 기간까지. 나만의 시간이어야 할 소중한 순간들이 업무 연락과 생각들로 얼룩지게 돼요. 나의 집, 나의 방이라는 안전한 공간이 더 이상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죠.

건강한 선을 긋는다는 것은, “여기까지는 나의 일의 영역이고, 이 선을 넘어서부터는 온전히 나의 삶의 영역입니다”라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선언하는 것예요.

예를 들어, ‘퇴근 후에는 업무 관련 스마트폰 알림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나만의 규칙을 세우는 것.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회사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고 다짐하는 것.

동료의 저녁 시간 업무 요청에 “미안하지만, 그건 내일 오전에 처리해 줄게”라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것.

처음에는 이런 행동이 어색하고, 혹시나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작은 행동들이 모여, 나를 지켜주는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이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안전함을 느끼고, 온전히 이완하며 쉴 수 있어요. 누가 나의 시간을 침범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이 공간의 주인은 오롯이 나 자신이니까요.

나를 지키는 선을 긋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존중하고,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가장 기본적인 자기 돌봄의 시작예요. 오늘 당신의 삶 둘레에, 당신을 지켜줄 작은 울타리를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일 잘하는 나와 진짜 나를 분리할 용기

우리는 종종 ‘일 잘하는 나’와 ‘진짜 나’를 동일시하는 함정에 빠집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성과를 낼 때, 마치 나라는 사람 자체가 가치 있고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반대로, 일에서 실수를 하거나 성과가 좋지 않을 때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쓸모없고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나의 자존감이 회사의 실적 그래프처럼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 거예요.

이런 마음 때문에 우리는 일과 나를 분리하는 것을 두려워해요. 마치 일을 조금이라도 손에서 놓으면, 나의 가치 전체가 흔들릴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일을 놓지 못해요. 더 완벽하게, 더 빨리, 더 많이 해내야만 나의 존재 가치가 증명된다고 믿기 때문예요. 쉬는 시간조차 ‘혹시 내가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해요. ‘일의 성과’와 ‘나의 가치’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요.

당신은 당신이 하는 일, 당신의 직함, 당신의 연봉으로 정의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유일한 존재예요.

설령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더라도, 당신의 가치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요. 당신이 오늘 어떤 실수를 했더라도, 당신이라는 사람의 소중함은 변하지 않요.

일과 삶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용기’가 필요해요. ‘일 잘하는 나’와 ‘진짜 나’를 분리할 용기. 나의 가치를 일의 성과에 저당 잡히지 않게 할 용기 말예요.

물론, 일은 우리에게 성취감과 경제적 안정을 줍니다. 삶의 중요한 부분이죠. 하지만 나의 전부가 되도록 내어주어서는 안 돼요.

‘나는 이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이 일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오늘 실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실패한 사람은 아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되뇌며, 일과 나 사이에 건강한 심리적 거리를 만들어 보세요.

그 거리가 확보될 때, 우리는 오히려 일에 더 건강하게 몰입할 수 있어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가 생깁니다. 일의 결과에 따라 내 존재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단단한 믿음이 생기기 때문예요.

컴퓨터를 끄듯, 내 마음의 전원도 꺼주세요

우리는 매일 퇴근할 때 의식적으로 컴퓨터 전원을 끕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기계에게도 휴식을 주는 거죠.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 자신의 마음의 전원은 끄는 것을 잊고 삽니다. 몸은 퇴근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수십 개의 창을 띄워놓은 채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는 거예요.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이처럼 하루를 마무리하는 작은 습관, 작은 의식에서부터 시작돼요. 마치 컴퓨터를 끄는 것처럼, 내 마음의 ‘일 모드’ 전원을 끄는 나만의 ‘종료 의식’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어떤 것이든 좋요. 당신에게 ‘이제 일은 끝났어. 지금부터는 나의 시간이야’라는 신호를 줄 수 있는 행동이라면요.

예를 들어, 퇴근하는 지하철의 특정 역을 지나는 순간부터는 절대 회사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일터에서의 나를 벗어던지는 것.

샤워를 하면서 오늘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물에 모두 씻어 보낸다고 상상하는 것.

혹은 향초를 켜거나, 좋아하는 차를 한 잔 마시거나, 짧은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예요. 중요한 것은 이 행동을 통해 물리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일과 나를 분리하는 경계를 만드는 것예요.

처음에는 이런 행동이 어색하고 별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의식을 치르는 중에도 불쑥불쑥 일 생각이 떠오를 수 있죠.

괜찮요.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구름처럼 그냥 흘려보내고, 다시 나의 의식에 집중하면 돼요.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우리의 뇌는 이 신호를 기억하게 돼요. ‘아, 이 행동을 한다는 건 이제 정말 쉬어도 된다는 뜻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거죠.

컴퓨터도 재부팅을 해야 더 빠르고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매일매일의 ‘종료’와 ‘재시작’ 과정이 필요해요. 오늘 하루도 정말 고생한 당신 자신을 위해, 따뜻하고 다정한 손길로 마음의 전원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여백이 있어야 멋진 그림이 완성돼요

빽빽하게 채워진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어딘가 답답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요.

반면에, 적절한 여백이 있는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그림의 주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줍니다. 숨 쉴 공간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의 삶도 한 폭의 그림과 같요. 일, 약속, 자기계발, 온갖 계획들로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스케줄을 빽빽하게 채워 넣는다면, 우리는 금방 지치고 소진되고 맙니다. 삶의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볼 ‘숨 쉴 공간’이 없기 때문예요.

일과 삶을 분리한다는 것은, 내 인생이라는 그림에 의도적으로 ‘여백’을 만들어주는 일예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멍하니 보내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예요.

우리는 종종 이런 여백의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며 불안해해요. 이 시간에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죠.

하지만 이 여백의 시간이야말로, 우리 삶에 가장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다주는 선물예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때, 우리의 뇌는 비로소 흩어져 있던 정보와 경험의 조각들을 자유롭게 연결하기 시작해요.

샤워를 하다가, 혹은 산책을 하다가 그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의 해결책이 번뜩 떠오르는 경험을 해본 적 있나요? 바로 뇌가 여백의 시간을 활용해 창의력을 발휘한 순간예요.

끊임없이 무언가를 입력하기만 하면, 뇌는 그것을 처리하고 정리할 시간을 갖지 못해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시간. 이런 비어있는 시간들이 우리를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멀리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줍니다.

쉼 없이 달리기만 하면, 결국에는 지쳐 쓰러질 수밖에 없요.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의도적으로 멈추는 용기가 필요해요.

당신의 일정표에 ‘아무것도 안 하기’라는 특별한 약속을 잡아보세요. 그 고요하고 텅 빈 시간이, 당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시켜 줄 거예요.

당신의 이름 뒤에 붙는 직함, 그게 당신의 전부는 아니에요

우리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이름과 함께 소속된 회사나 직함을 말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세상에 살고 있어요. ‘OO회사의 김대리예요.’ ‘XX학교 교사 이선생예요.’

이 직함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며, 사회 속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해 주는 편리한 꼬리표가 되어 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잊어버립니다. 그 꼬리표가 나라는 사람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당신은 누군가의 대리, 팀장이기 이전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들이자 딸예요.

오랜 친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며, 어떤 날에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드는 요리사이기도 해요.

해 질 녘의 노을을 보며 감동할 줄 아는 시인이며, 서툰 솜씨로 작은 화분을 가꾸는 정원사이기도 해요.

우리 안에는 이처럼 수많은 ‘나’가 살고 있어요. 직함이라는 단 하나의 이름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다채롭고 입체적인 우주가 존재해요.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은, 이 직함이라는 꼬리표를 잠시 떼어내고,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다른 ‘나’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과 같요.

회사에서의 유능한 나도 물론 소중하지만, 조금은 서툴고 어설프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있는 나의 모습,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긴장을 풀고 아이처럼 웃는 나의 모습,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편안하게 쉬고 있는 나의 모습.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비로소 ‘온전한 나’가 돼요.

일이 내 삶의 전부가 될 때, 우리는 일의 성패에 따라 내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위험에 처하게 돼요. 하지만 내 안에 다양한 역할과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단단해질 수 있어요. 일에서 잠시 넘어지더라도, 나를 지지해 줄 다른 수많은 ‘나’들이 있기 때문예요.

오늘 저녁, 당신의 이름 뒤에 붙는 직함을 잠시 떼어내 보세요. 그리고 거울을 보며 당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세요.

“OO아, 너는 그냥 너 자체로 충분하고 소중한 사람이야.” 라고.

그 안에 당신의 진짜 이야기가 숨 쉬고 있어요.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는 것은, 단순히 칼로 무 자르듯 시간을 나누는 기술이 아닙니다. ‘나’라는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마음의 태도예요.

마치 우리 집 안에도 침실, 거실, 주방이 각각의 역할과 공간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 삶에도 일하는 공간, 쉬는 공간, 관계를 맺는 공간이 선명하게 나뉘어 있어야 해요. 일이라는 방이 너무 커져서, 쉬어야 할 침실까지 모두 차지해 버리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오늘부터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시작해 보세요.

퇴근 후 스마트폰의 업무 앱 알림을 꺼두는 용기.

저녁 식사 시간만큼은 온전히 음식의 맛과 대화에 집중하려는 노력.

잠들기 전 10분이라도 일 생각 대신 좋아하는 책을 펼치는 여유.

그 작은 문 하나를 닫는 순간, 당신의 삶에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질 수 있어요. 온전히 당신 자신만을 위한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간의 문이 열릴 거예요. 그리고 그 안에서 당신은, 잊고 있던 진짜 당신의 모습을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 관계 심리학의 지혜

“세계적인 부부 관계 전문가 존 가트맨(John Gottman) 박사의 40년 연구에 따르면, 관계의 안정성을 결정짓는 ‘매직 비율’은 5:1입니다. 긍정적 상호작용이 부정적 상호작용보다 5배 많아야 관계가 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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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건강한 거리두기를 연구하는 관계 전문가.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심플하고 현명하게 푸는 법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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