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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emental

잊고 싶은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괴로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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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 · 30분 소요
잊고 싶은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괴로울 때

고요한 밤, 모두가 잠든 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나와 내 생각만이 방 안에 가득해요.

바로 그럴 때, 어김없이 그 기억이 찾아옵니다.

애써 잊으려 온종일 바쁘게 움직였던 몸이 침대에 누워 긴장을 푸는 바로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음의 문을 비집고 들어서는 그날의 풍경, 그때의 목소리, 그날의 공기.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문득 혼자가 되는 순간이 있어요.

대화의 흐름을 놓치고, 웃음소리는 멀어지고, 나만 홀로 다른 시간 속에 갇혀 버린 듯한 기분.

방금까지 즐거웠는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그 찰나의 정적을 누구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길을 걷다 스친 익숙한 향기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구절에.

혹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불쑥.

기억은 예고 없이 찾아와 나를 그 시간으로 데려가 버립니다.

‘이제 그만 좀 하고 싶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까.’

마음속으로 수천 번을 되뇌어도, 기억은 내 뜻대로 사라져 주지 않요.

머리로는 압니다. 이제는 괜찮아야 한다는 걸.

하지만 마음이 따라주질 않는 이 답답함을 어찌할 수가 없요.

그럴 때면 내가 너무 나약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이 기억의 늪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해요.

세상에 나 혼자만 이 무거운 돌멩이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만 같요.


그 기억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옵니다

원치 않는데도 자꾸만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있어요.

정중하게 돌려보내도, 화를 내며 밀어내도, 어느새 집 안에 들어와 가장 편한 자리에 앉아있곤 해요.

잊고 싶은 기억이 바로 그런 손님과 같요.

나는 그만 가주었으면 하는데, 기억은 제멋대로 찾아와 마음을 흩트려 놓요.

설거지를 하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재미있는 영화를 보다가도 문득.

일상의 가장 평범한 순간에 기억은 날카로운 파편처럼 파고듭니다.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원치 않는 방송을 계속해서 틀어주는 것과 같아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어서, 그 소음을 온몸으로 견뎌내야만 해요.

어떤 날은 희미하게, 어떤 날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기억의 농도가 매일 달라서, 오늘은 괜찮을까 기대하다가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도 하죠.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 자신에게 먼저 지치게 돼요.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 하는 자책이 시작돼요.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과거의 한 장면에 발이 묶여 있는 기분이 듭니다.

이 기억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해요.

웃다가도 죄책감이 들고, 즐거워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요.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현재의 나를 계속해서 붙잡는 끈질긴 그림자예요.

아무리 밝은 곳으로 가려 해도, 그 그림자는 내 뒤에 바싹 붙어 따라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기억이 비집고 들어올까 봐,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해요.

일부러 약속을 빽빽하게 잡요.

시끄러운 음악을 듣고,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놓지 못해요.

마음이 고요해지는 순간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예요.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루의 끝에는 결국 혼자 남게 돼요.

그 고요함 속에서 기억은 더욱 선명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옵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이기도 해요.

이미 다 끝난 일을 왜 아직도 힘들어하냐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렵기 때문예요.

혹은, 나의 아픔을 이야기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해집니다.

그래서 그냥, 괜찮은 척 웃어 보일 때가 더 많요.

하지만 괜찮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그 구멍으로 계속해서 찬 바람이 들어옵니다.

이 기억만 없다면, 내 삶은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할 텐데.

그런 생각에 깊은 무력감에 빠지기도 해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마법의 지우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픈 부분만 도려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기억은 내 몸의 일부처럼 단단히 붙어 떨어지지 않요.

잊으려 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기억의 역설 앞에서 우리는 좌절해요.

그 기억은 나쁜 기억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좋았던 순간과 얽혀 있어 더 아프기도 해요.

그래서 통째로 미워할 수도, 완전히 버릴 수도 없어 더 괴롭요.

햇살 좋은 날 함께 걸었던 거리, 같이 듣던 노래, 나누었던 웃음.

행복했던 조각들이 이제는 가시가 되어 박혀 있어요.

이런 마음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멈출 수는 없요.

그저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텨냈다는 안도감으로 잠자리에 들 뿐예요.

당신이 느끼는 그 모든 혼란과 고통은, 당신이 유난히 약해서가 아닙니다.

그만큼 그 기억이 당신에게 깊고 아픈 흔적을 남겼기 때문예요.

초대하지 않은 손님을 계속 맞아야 하는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지쳐있을지, 감히 짐작해 봅니다.

마음에도 흉터가 남기 때문이에요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면 상처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피가 나고 쓰라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딱지가 앉고, 결국에는 흉터가 남요.

마음도 똑같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픈 일을 겪고 나면 마음에도 깊은 상처가 남요.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물고 난 자리가 바로, 우리가 떨쳐내고 싶어 하는 기억의 흉터예요.

무릎의 흉터를 볼 때마다 넘어졌던 순간이 떠오르듯, 마음의 흉터도 우리를 그 시간으로 데려갑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예요.

우리 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아팠던 기억을 유독 더 선명하게 저장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시는 그런 위험에 처하지 마라’는 강력한 경고 신호인 셈이죠.

그래서 잊고 싶은 기억이 자꾸 떠오르는 건, 내 마음이 나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마치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것과 같요.

이미 불은 다 꺼졌는데도, 작은 연기만 피어올라도 요란하게 울려댑니다.

‘또 위험할지 몰라! 조심해!’ 하고 말이죠.

시끄럽고 괴롭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경보음인 셈예요.

그 기억이 떠오르는 건 내가 이상하거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나를 너무나 아끼기 때문예요.

상처가 깊을수록 흉터도 깊게 남는 법예요.

다른 사람들은 쉽게 잊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안될까, 자책할 필요가 없요.

사람마다 살성이 다르듯, 마음의 회복 속도도 저마다 다릅니다.

같은 상처라도 더 덧나고 오래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요.

당신의 마음이 유독 더 섬세하고 여려서, 그 아픔을 더 깊이 느꼈을 뿐예요.

이는 약점이 아니라, 그만큼 세상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뜻이기도 해요.

잊히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일이 당신의 삶에 큰 의미를 지녔다는 뜻이기도 해요.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에 남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왜 나는 잊지 못할까’라고 자책하는 대신, ‘아, 이 일이 나에게 정말 큰 아픔이었구나’ 하고 먼저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해요.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알아주는 것.

치유의 가장 첫 번째 단계예요.

우리는 흉터를 볼 때마다 아팠던 기억만 떠올리지만, 잊곤 해요.

그 흉터는 동시에, 그 상처를 이겨내고 살아남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예요.

그 기억은 당신의 아픔의 증거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는 생존의 증거예요.

흉터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

흐린 날이면 쑤시듯이, 마음의 흉터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면 더 아프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흉터의 색이 옅어지고, 만져도 예전만큼 아프지 않게 돼요.

기억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너무나 선명하고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희미해지고 무뎌질 거예요.

기억을 둘러싼 아픈 감정의 막이 조금씩 얇아지는 것이죠.

우리가 할 일은 흉터를 억지로 떼어내려 하거나, 안 보이게 감추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흉터가 잘 아물 수 있도록, 마음을 잘 돌봐주는 것예요.

마음의 흉터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픈 일을 겪은 당신에게 남은, 어쩌면 당연한 흔적예요.

그 흔적을 끌어안고 있는 당신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는 거예요.

잊으려는 노력은 오히려 기억을 붙잡는 힘이 돼요

지금부터 딱 10초만, ‘하얀 곰’을 절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어떠신가요? 아마 머릿속에 하얀 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을 거예요.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청개구리 같아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하고, 잊으라고 하면 더 선명하게 떠올립니다.

잊고 싶은 기억도 마찬가지예요.

‘그 생각을 하면 안 돼.’

‘제발 잊어버리자.’

이렇게 애를 쓸수록, 우리의 뇌는 그 기억에 ‘중요함’이라는 딱지를 붙예요.

‘아, 이건 내 주인이 자꾸 신경 쓰는 걸 보니 아주 중요한 정보인가 보다. 잊어버리면 안 되겠다!’ 하고 오해하는 거죠.

그래서 잊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기억을 더 꽉 붙잡아두는 족쇄가 되어버립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우리는 기억이라는 깊은 물속으로 더 빠져들게 돼요.

그 생각만 안 하면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생각을 안 하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생각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는 상태인 것이죠.

기억과 힘겨루기를 하는 셈예요.

내가 이기나, 기억이 이기나.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과 같요.

하지만 기억은 실체가 없는 상대예요.

힘을 주면 줄수록 나만 지치게 될 뿐예요.

줄을 놓아버리면 기억도 힘을 잃는데, 우리는 그 줄을 놓는 것을 두려워해요.

놓아버리면 기억이 나를 완전히 삼켜버릴 것 같아서요.

그래서 온 힘을 다해 기억과 맞서 싸우지만, 결국 지쳐 쓰러지는 건 항상 나 자신예요.

잊으려는 노력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시도와 같요.

잠깐은 가려지는 것 같지만, 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요.

기억을 억지로 누르고 외면하는 것은, 끓어 넘치는 냄비 뚜껑을 힘으로 누르고 있는 것과 같아요.

언젠가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해버리거나,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김 때문에 계속해서 신경을 써야만 해요.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힘을 빼는 것예요.

기억과 싸우는 것을 멈추는 것예요.

‘아, 또 그 생각이 나는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아팠던 일이니까.’

마치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듯, 강물에 나뭇잎이 떠내려가듯, 그저 바라봐 주는 것예요.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요.

생각이 떠오르면 또다시 고통스러운 감정이 함께 밀려올 테니까요.

하지만 그 감정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서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려 주는 연습이 필요해요.

기억을 없애야 할 ‘적’으로 여기는 순간, 전쟁은 시작돼요.

하지만 기억을 그저 마음을 스쳐 지나가는 ‘손님’으로 여기면, 우리는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요.

손님은 언젠가 떠나가기 마련이니까요.

머물다가, 제 갈 길을 갑니다.

잊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 노력 때문에 당신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힘을 빼고, 그 기억이 잠시 내 마음을 방문하도록 허락해 보세요.

생각보다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기억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을 때, 역설적이게도 기억은 서서히 우리를 놓아주기 시작해요.

줄다리기를 멈추면, 팽팽했던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처럼요.

그때 비로소 우리는 기억으로부터 아주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기억의 색깔을 바꾸는 작은 연습

우리는 기억을 통째로 지울 수는 없요.

마치 사진 앨범에서 특정 사진만 찢어버릴 수 없는 것처럼요.

하지만 사진의 색감을 보정하듯, 기억의 색깔을 조금씩 바꿀 수는 있어요.

온통 흑백이었던 기억에 아주 작은 색깔 하나를 더해보는 연습예요.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은 아마 고통, 슬픔, 분노, 후회 같은 어두운 색일 거예요.

그 감정들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을 내어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그 끔찍했던 하루에도 분명히 존재했던 다른 조각들을 찾아보는 것예요.

그날 아침에 마셨던 따뜻한 커피, 창문으로 들어오던 햇살, 친구가 보내준 응원의 메시지 같은 것들.

물론 이런 작은 조각들이 그날의 고통을 덮을 수는 없요.

하지만 기억이 온통 검은색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과정예요.

검은 도화지에 아주 작은 흰 점 하나를 찍는 것과 같요.

그 점 하나가 그림 전체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더 이상 완전한 어둠은 아니게 돼요.

또 다른 방법은, 기억 속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말을 걸어주는 것예요.

고통스러워하던 과거의 나에게 다가가,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네 잘못이 아니라고, 정말 힘들었겠다고 다독여주는 거예요.

‘그때 너는 최선을 다했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혼자서 그걸 견뎌내다니, 정말 장하다.’

마치 내가 가장 친한 친구를 위로하듯이, 과거의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기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꾸는 연습예요.

기억 속에서 나는 언제나 혼자 아파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곁에 지금의 내가 함께 있어 주는 것예요.

기억의 장면은 그대로이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는 관객이 한 명 더 늘어난 셈이죠.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 바라봐 주는 든든한 내 편 말예요.

이 연습은 기억에 새로운 의미를 덧씌우는 과정이기도 해요.

아픔과 고통의 기억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나’의 성장 서사로 바꾸어보는 것예요.

그 일을 겪었기 때문에, 나는 타인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나에게 정말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을 수도 있어요.

물론 억지로 긍정적인 의미를 찾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 기억이 나에게 남긴 것이 상처뿐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예요.

아주 작은 긍정의 실마리라도 괜찮요.

‘그 일 덕분에 지금의 소중한 사람을 만났지.’ 와 같은 연결고리도 좋요.

이런 작은 연습들이 쌓이면, 기억을 떠올릴 때의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해요.

숨이 턱 막히는 고통에서, 아련하고 씁쓸하지만 견딜 만한 아픔으로 변해갑니다.

마치 아주 뜨거워서 만질 수도 없었던 돌멩이가, 시간이 지나 서서히 식어서 손에 쥘 수 있게 되는 것처럼요.

기억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더 이상 나를 예전처럼 할퀴거나 데게 하지 않요.

오히려 나의 일부로,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단번에 이루어지는 마법이 아닙니다.

하루에 하나씩, 아주 작은 색깔을 더해가는 꾸준함이 필요해요.

그렇게 조금씩, 당신의 기억은 다른 빛을 띠게 될 거예요.

지금, 여기, 내 손에 잡히는 것들

기억이 나를 과거로 끌고 갈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것예요.

과거에 묶여 있는 마음의 닻을, 현재라는 항구로 옮겨오는 것이죠.

마음이 과거의 폭풍우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우리의 몸은 여전히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공간’에 있어요.

몸의 감각을 이용해 마음을 현재로 데려오는 연습예요.

가장 쉬운 방법은 주변에 있는 사물을 의식적으로 만져보는 것예요.

손에 쥐고 있는 찻잔의 따뜻함, 책상의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 입고 있는 옷의 부드러운 질감.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하고 그 느낌을 온전히 느껴보세요.

‘이 컵은 따뜻하구나.’

‘이 책상은 단단하구나.’

마음속으로 그 느낌을 언어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요.

복잡한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단순한 감각의 세계로 잠시 피난 오는 것예요.

귀를 기울여 보세요.

지금 내 주변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시계의 초침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 나의 숨소리.

그 소리들을 판단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들어보세요.

소리의 파동이 고막을 울리고, 뇌로 전달되는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는 거예요.

과거의 기억은 소리도, 형태도 없는 생각일 뿐예요.

하지만 지금 내 귀에 들리는 이 소리들은 분명한 ‘실재’예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어 보세요.

공기가 코를 통해 들어와 폐를 가득 채우고, 다시 빠져나가는 그 흐름에 집중해요.

숨을 쉴 때마다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오는 움직임, 배가 나왔다 들어가는 감각을 느껴봅니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예요.

과거의 기억이 아무리 나를 괴롭혀도, 나는 여전히 여기서 숨을 쉬고 있어요.

제자리에 서서 발바닥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요.

발바닥이 어떻게 땅을 딛고 있는지, 체중이 어디에 실려 있는지 느껴보세요.

단단한 땅이 나를 받쳐주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껴보는 거예요.

기억은 나를 허공에 붕 뜨게 만들지만, 나의 몸은 이렇게 굳건히 땅에 발을 딛고 있어요.

주변의 색깔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예요.

눈에 보이는 빨간색은 무엇인지, 파란색은 무엇인지, 하나씩 찾아보세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사물의 색과 모양을 찬찬히 관찰하는 거예요.

이런 감각 훈련은, 흩어져 있던 의식을 ‘지금, 여기’로 모아주는 돋보기와 같요.

과거와 미래로 끊임없이 방황하던 마음을, 현재라는 안전한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죠.

기억이 떠올라 괴로울 때마다, 이 중 하나라도 시도해 보세요.

단 1분이라도 괜찮요.

이 연습은 기억을 없애주지는 못해요.

하지만 기억의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고, 잠시 빠져나와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튜브가 되어줄 거예요.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어쩔 수 없는 일예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바로 ‘지금’예요.

지금 내 손에 잡히는 것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게 돼요.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세요

기억이 떠오를 때,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기억 그 자체보다 함께 딸려오는 감정의 소용돌이예요.

슬픔, 분노, 억울함, 외로움, 무력감…

이름 모를 감정들이 한데 뒤엉켜 안개처럼 우리를 집어삼킵니다.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났을 때 더 큰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이 복잡하고 흐릿한 감정 앞에서 속수무책이 돼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감정에 이름 붙여주기’예요.

안개처럼 뿌옇던 감정의 실체를 명확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이죠.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세요.

‘아, 지금 내가 슬프구나.’

‘가슴이 답답한 걸 보니, 억울한 감정이 올라오는구나.’

‘그때의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연민을 느끼고 있구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우리는 그 감정과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돼요.

감정에 완전히 압도당해 ‘내가 곧 감정’이 되는 상태에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나’를 분리해서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예요.

아주 큰 차이를 만듭니다.

‘나는 슬프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슬픔을 느끼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요.

슬픔은 나라는 사람의 일부일 뿐,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마치 날씨 예보관이 되어서 내 마음의 날씨를 중계해 주는 것처럼요.

‘현재 마음의 하늘에는 슬픔이라는 먹구름이 끼어 있어요.’

‘외로움이라는 찬 바람이 불고 있어요.’

날씨는 계속해서 변해요.

지금 먹구름이 끼었다고 해서, 영원히 해가 뜨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도 날씨처럼, 왔다가 머물다가 이내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돼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감정을 판단하거나 억누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감정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해 주는 행위예요.

‘슬퍼하면 안 돼’가 아니라, ‘아, 슬퍼할 만한 일이니 슬픈 게 당연하지’라고 수용하는 것예요.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찾아온 소중한 신호예요.

슬픔은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려주고, 분노는 나의 어떤 경계선이 침범당했는지 알려줍니다.

두려움은 내가 무엇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지 알려줍니다.

감정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고, 왜 찾아왔는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세요.

마치 길 잃은 아이를 만났을 때, 다그치기보다 이름이 뭐니, 어디서 왔니, 하고 다정하게 물어봐 주는 것처럼요.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돼요.

내가 언제 아파하고, 무엇에 힘들어하는지, 나만의 마음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게 돼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잘 알게 될수록, 우리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잘 다룰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돼요.

감정이라는 파도를 없앨 수는 없지만,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다음에 또다시 힘든 감정이 밀려오거든, 잠시 멈춰서 그 감정에게 다정하게 물어봐 주세요.

‘얘야, 네 이름이 뭐니?’

기억의 조각을 다시 맞춰보는 시간

잊고 싶은 기억은 마치 깨진 거울 조각과 같요.

날카롭고, 흩어져 있고, 볼 때마다 아픈 과거를 비춥니다.

우리는 그 조각들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거나, 서둘러 치워버리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 조각들은 여전히 내 마음 방 한구석에 흩어져, 불쑥불쑥 나를 찔러댑니다.

그렇다면, 흩어진 조각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맞춰보는 건 어떨까요?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전체적인 그림을 다시 한번 이해해 보는 것예요.

혼자 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안전하다고 느끼는 친구나 가족, 혹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함께 하는 것이 좋요.

혼자서 깨진 거울을 만지다가는 손을 다칠 수 있으니까요.

기억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영화를 다시 보는 것과 비슷해요.

처음에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서 함께 울고 분노하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보다 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이나 인물의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요.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 더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돼요.

아픔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다른 조각들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를 도와주려 했던 작은 손길,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버텨내려 애썼던 나 자신의 대견한 모습 같은 것들 말예요.

기억은 하나의 고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얼마든지 다시 쓰일 수 있어요.

지금까지는 ‘나는 상처받은 피해자’라는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힘든 일을 겪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새로운 이야기로 편집해 보는 것예요.

물론 과거의 아픔을 미화하거나, 없었던 일로 만들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아팠던 사실은 그대로 인정하되, 그 기억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바꾸는 것예요.

기억의 지배를 받는 수동적인 존재에서, 기억을 내 삶의 일부로 통합하고 관리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예요.

깨진 거울 조각들을 다시 붙이면, 이전과 똑같은 모습이 되지는 않요.

금이 간 흔적이 남게 되죠.

하지만 그 금이 간 거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아픔에 더 깊이 공감하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처럼요.

이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 있어요.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안전한 환경에서, 아주 조금씩 시도해야 해요.

하지만 이 용기 있는 시도를 통해, 우리는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될 수 있어요.

나를 찌르는 무기가 아니라, 나의 일부임을, 내 삶의 역사의 한 페이지임을 받아들이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기억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게 돼요.

새로운 길을 내는 마음의 산책

오랫동안 한 길로만 다니면, 그 길은 깊게 패이고 익숙해집니다.

우리 마음속의 기억도 마찬가지예요.

괴로운 기억을 자꾸 떠올리는 것은, 마음속에 난 슬픔으로 가는 오래된 길을 계속해서 걷는 것과 같요.

그 길은 너무나 익숙해서, 나도 모르게 그 길로 발걸음을 옮기게 돼요.

이 오래된 길을 없앨 수는 없요.

하지만 그 길 옆에 새로운 길을 여러 개 만들 수는 있어요.

행복과 즐거움, 평온함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오솔길을 내는 것예요.

새로운 길을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예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를 산책하거나, 새로운 취미를 배워보는 것처럼요.

새로운 경험은 우리 뇌에 새로운 신경 회로를 만듭니다.

마치 풀숲에 처음 길을 낼 때처럼,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지만 자꾸 다니다 보면 어느새 뚜렷한 길이 생기는 것과 같요.

매일 똑같은 일상, 똑같은 생각의 패턴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뇌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예요.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햇살을 쬐며 걷는 모든 순간이 마음에 새로운 길을 내는 소중한 경험이 돼요.

특히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큰 도움이 돼요.

가벼운 운동이나 춤, 요가 등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생각을 현재의 몸 감각으로 돌려주는 효과가 있어요.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잠시나마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몸의 활력은 마음의 활력으로 이어집니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도 좋요.

숲의 냄새, 새소리, 발밑에 닿는 흙의 감촉은 우리를 치유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줍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나를 짓누르던 기억의 무게가 아주 작게 느껴지기도 해요.

누군가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사랑을 주는 경험도 새로운 길을 만드는 강력한 힘이 돼요.

반려동물을 돌보거나, 작은 화분을 키우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것처럼요.

나의 보살핌으로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살아있음의 기쁨과 책임감을 느끼게 돼요.

나의 아픔에만 갇혀 있던 시선이, 세상 밖으로 향하게 되는 것예요.

새로운 길은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할 수 있어요.

자꾸만 예전의 익숙하고 편한(비록 고통스럽더라도) 길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꾸준히 새로운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에 여러 갈래의 길이 생겨납니다.

슬픔으로 가는 길만 있었던 마음에, 기쁨으로 가는 길, 감사로 가는 길, 희망으로 가는 길이 생겨나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괴로운 기억이 떠오르더라도 선택권이 생깁니다.

예전처럼 속수무책으로 슬픔의 길로 끌려가는 대신, ‘아, 저 길이 있구나. 하지만 나는 오늘 이쪽 길로 가봐야지’ 하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내 마음을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나가는 것예요.

마음이라는 도시에 새로운 길과 건물을 많이 지어서, 낡고 오래된 건물이 더 이상 도시의 중심이 아니게 만드는 것처럼요.

오늘, 당신의 마음에 어떤 새로운 길을 내어 보시겠어요?

아주 작은 산책부터 시작해 보세요.

애쓰고 있는 나를 안아주세요

잊고 싶은 기억과 싸우느라, 당신은 아마 자기 자신을 가장 혹독하게 다그쳐 왔을 거예요.

‘왜 이것도 이겨내지 못하니?’

‘언제까지 과거에 매여 살 거니?’

‘정신 차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아픈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픈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채찍질하며 더 빨리 일어나 달리라고 재촉해 온 것이죠.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세요.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친구에게,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닐 거예요.

‘괜찮아? 많이 아팠겠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일어나지 않아도 돼. 내가 옆에 있어 줄게.’

이렇게 말하며 등을 토닥여주지 않았을까요?

이제 그 다정함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줄 시간예요.

스스로에게 따뜻한 친구가 되어주는 것예요.

이것을 ‘자기 자비’ 또는 ‘자기 연민’이라고 부릅니다.

괴로운 기억이 떠올라 힘들 때,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정말 힘들었구나. 아픈 기억이 떠올라서 지금 많이 괴롭구나.’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렇게 느끼는 건 당연한 거야.’

나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판단 없이 바라봐 주는 것예요.

‘힘들면 안 돼’가 아니라, ‘힘들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예요.

나약함이나 자기 합리화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자신의 아픔을 직면하고 보살필 수 있는, 가장 큰 용기예요.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고, 살면서 고통을 겪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예요.

나만 특별히 더 고통스럽거나, 나만 유별나게 힘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보편성을 기억하는 것예요.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이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깊은 위로와 연결감을 느낄 수 있어요.

애쓰고 있는 나를 위해, 아주 작은 선물을 해주는 것도 좋요.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푹신한 담요를 덮고 잠시 쉬는 것처럼요.

몸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조금이나마 이완될 수 있어요.

‘너는 충분히 애썼으니, 잠시 쉬어도 괜찮아’라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내려주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채찍질하는 것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요.

아픔을 더 크게 만들 뿐,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해요.

반대로,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은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것과 같요.

당장 흉터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덧나지 않고 잘 아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오늘 하루, 기억과 씨름하며 얼마나 애쓰셨나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당신은 정말 최선을 다해 버텨왔요.

이제 그만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목소리를 멈추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 스스로를 안아주세요.

‘고생했어, 정말.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해.’ 라고 말이에요.

시간은 기억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립니다

오래된 벽지가 찢어지고 얼룩져 보기 싫을 때, 우리는 그 위에 새로운 벽지를 바릅니다.

기존의 벽지를 완전히 떼어내지 않아도, 새로운 벽지를 덮어 바르면 이전의 흠집은 보이지 않게 돼요.

시간이 하는 역할이 바로 이것과 같요.

시간은 아픈 기억이라는 낡은 벽지 위에, ‘오늘’과 ‘내일’이라는 새로운 벽지를 계속해서 덧바릅니다.

지금은 그 기억이 너무나 커서 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위로 수많은 경험과 새로운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갈 거예요.

웃었던 날, 행복했던 순간, 무언가를 성취했던 뿌듯함,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이 모든 새로운 그림들이 기억 위에 덧칠해지면서, 원래의 아픈 그림은 서서히 희미해집니다.

물론 덧바른 벽지를 긁어내면 옛날의 흠집이 드러나듯, 어느 날 문득 기억이 다시 떠오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예전처럼 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수많은 벽지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아주 오래된 한 겹의 무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시간은 기억을 지워주지는 않요.

다만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고, 무디게 만들어 줍니다.

날카로웠던 돌멩이가 강물에 오랫동안 씻겨 둥근 조약돌이 되는 것처럼, 시간의 강물은 기억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닳게 만듭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나를 예전처럼 아프게 찌르지 못하게 돼요.

손에 쥐어도 베이지 않는, 그저 내 과거의 일부였던 하나의 조약돌로 남게 되는 것이죠.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때로는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데, 막연히 시간을 기다리라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고, 새로운 경험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쌓아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오늘 마신 커피 한 잔, 친구와의 짧은 통화, 길에서 본 예쁜 꽃 한 송이.

이런 사소한 ‘오늘’들이 모여, 기억 위에 덧발라질 소중한 벽지가 돼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데는, 몸의 상처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해요.

아물고 있는 상처의 딱지를 자꾸 떼어내면, 회복은 더 늦어질 뿐예요.

기억도 마찬가지예요.

‘왜 아직도 이럴까’ 자책하며 조바심 내기보다, 시간이라는 가장 위대한 치유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려주세요.

계절이 바뀌듯, 우리의 마음도 변해갈 거예요.

지금이 혹독한 겨울처럼 느껴진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봄이 올 거라는 사실을 믿어주세요.

언젠가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그 아팠던 기억이 아득하게 멀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 기억을 딛고 나는 이렇게나 멀리, 단단하게 걸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예요.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그저 오늘의 그림을 충실하게 그려나가면 돼요.

시간은 언제나 당신 편에서, 묵묵히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잊고 싶은 기억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내 안에 작은 파도를 안고 살아가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날은 잔잔하지만, 어떤 날은 거세게 몰아쳐 나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만 같죠.

파도를 없앨 수는 없지만, 우리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그 위에서 서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수없이 물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분명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더 지혜로워질 거예요.

기억 때문에 아파하는 당신은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아픔을 끌어안고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예요.

당신의 오늘은, 어제의 기억보다 훨씬 더 크고 소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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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10년 차 임상심리 전문가. 뇌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마음의 원리를 분석하고, 치유의 길을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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