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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족한 점만 찾아내는 내 안의 스캐너 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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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 · 6분 소요
나의 부족한 점만 찾아내는 내 안의 스캐너 끄기

“오늘도 이불 속 하이킥을 날리셨나요?”

따뜻한 물로 씻고 개운한 기분으로 침대에 눕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는 순간, 평온했던 마음에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아까 회의 때 왜 그런 말을 했지?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야.” “친구 표정이 좀 묘하던데, 내가 실수한 건가?” “오늘 입은 옷, 너무 촌스러웠던 것 같은데…”

마치 성능 좋은 스캐너가 내 하루를 정밀 검사라도 하듯, 아주 사소한 실수, 어색했던 표정, 부족했던 대처들을 샅샅이 찾아내 눈앞에 들이밉니다. 오늘 분명 칭찬도 듣고, 맛있는 점심도 먹고, 기분 좋은 일들도 있었는데, 그 기억들은 전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습니다. 오직 ‘나의 부족함’만이 확대되어 방 안을 가득 채우죠.

스스로를 괴롭히는 이 지독한 ‘자기 검열 스캐너’. 도대체 왜 이 스캐너는 꺼지지도 않고 24시간 나를 감시하는 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스위치를 끌 수 있을까요?


1. 스캐너의 정체: 당신을 지키고 싶었던 ‘겁쟁이 경비원’

우리는 흔히 이런 자신을 미워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부정적일까?’ ‘나는 왜 자존감이 낮을까?’

하지만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스캐너는 사실 당신을 괴롭히려고 태어난 괴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을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탄생한 아주 겁 많은 경비원에 가깝습니다.

과거에 누군가에게 지적받아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 실수해서 크게 혼났던 경험, 무리에 섞이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세요. 그때 우리의 무의식은 결심했을 겁니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겠어. 그러려면 남들이 나를 지적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내 결점을 찾아내서 고쳐야 해.”

타인의 비난이라는 화살을 맞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검문검색해서 한 점의 티끌도 없게 만들려는 처절한 방어기제. 바로 ‘부정적 스캐너’의 정체입니다. 그러니 일단은 그 스캐너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방법은 서툴렀지만, 의도는 당신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니까요.


2. 스캐너가 빠지는 함정: ‘선택적 추상화’

하지만 이 과잉 충성하는 경비원에게는 치명적인 오류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심리학 용어로 ‘선택적 추상화(Selective Abstraction)‘라는 오류입니다.

전체적인 문맥은 무시한 채, 부정적인 세부 사항 하나에만 꽂혀서 전체를 엉망으로 해석하는 것이죠.

  • 상황: 1시간 동안 발표를 훌륭하게 마쳤는데, 마지막 질의응답에서 대답 한번 버벅거렸다.
  • 스캐너의 해석: “오늘 발표는 망했어. 나는 정말 바보야.”
  • 팩트: 청중들은 당신의 발표에 고개를 끄덕였고, 마지막 실수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스캐너는 99개의 성공은 ‘당연한 것’으로 우겨 빗자루로 쓸어버리고, 1개의 실수만을 핀셋으로 집어 올려 현미경으로 관찰합니다. 겸손이 아닙니다. 자기 학대이자 기억 조작입니다. 우리는 이 왜곡된 렌즈를 교정해야 합니다.


3. 스캐너의 전원을 끄는 3단계 연습

자, 이제 성능이 너무 과해서 오작동하는 이 스캐너의 코드를 뽑아봅시다.

1단계: “아, 또 시작됐네” (거리두기)

밤에 자기 비난이 시작되려 할 때, 그 생각에 휩쓸려가지 말고 딱 멈춰 서세요. 그리고 제3자가 되어 관찰하듯 말하는 겁니다. “어라? 나만의 스캐너가 또 작동하네?” “경비원 김 씨, 오늘 야근이 심하시네. 이제 그만 퇴근하세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내 생각에 이름을 붙이고 객관화(Objectification)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생각과 나를 분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가 아니라 ‘내가 지금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인식하는 것. 이 작은 차이가 마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게 해주는 튼튼한 닻이 됩니다.

2단계: ‘반박 증거’ 수집하기

스캐너가 “너는 오늘 하루를 망쳤어”라고 기소하면, 당신은 변호사가 되어 반박 증거를 제출해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오늘 내가 잘한 일, 혹은 나쁘지 않았던 순간을 3가지만 찾아보세요.

  • “아니지, 오늘 점심 메뉴 선택은 아주 훌륭했어.”
  • “부장님한테 혼났지만, 그래도 오후 보고서는 시간 맞춰 냈잖아.”
  • “집에 오는 길에 길고양이 보고 웃었어. 그럼 최소한 최악은 아니야.”

재판정에서 피고인을 변호하듯, 적극적으로 나의 무죄(괜찮음)를 증명하세요. 기록으로 남기면 더 좋습니다. ‘감사 일기’‘성취 일기’는 단순한 감성팔이가 아니라, 뇌의 부정 편향을 수정하는 가장 과학적인 훈련입니다.

3단계: “그만하면 됐다” (충분함의 주문)

스캐너는 끊임없이 “더 완벽해야 해, 더 잘해야 해”라고 채찍질합니다. 그럴 때 필요한 마법의 주문이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 오늘 나, 충분히 애썼다.”

이 말은 포기가 아닙니다. 나의 한계와 인간적인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용기 있는 수용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고, 조금 서툴러도 내일 다시 해보면 된다는 너그러움. 이 마음이 자랄 때, 날카롭던 스캐너의 빛은 비로소 따뜻한 무대 조명으로 바뀌게 됩니다.


4. 당신은 고쳐야 할 불량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검사를 받아왔습니다. 학교 성적, 인사 고과, 타인의 시선… 그래서인지 나 자신조차 나를 ‘채점 대상’으로만 바라보곤 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당신은 고쳐야 할 오답 투성이의 불량품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는 ‘진행형의 존재’일 뿐입니다.

오늘 밤은 당신의 스캐너에게 휴가를 주세요. 그리고 그 대신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며 말해주세요. “실수 좀 하면 어때. 부족하면 좀 어때. 나는 네가 참 좋아.”

나의 부족함까지 사랑해 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됩니다. 오늘도 부단히 애쓴 당신, 부디 오늘은 너그러운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 뇌과학 연구 노트

“미국 매사추세츠 의과대학(UMass)의 존 카밧진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의 결과에 따르면, 하루 20분의 명상 실천만으로도 뇌의 편도체(불안 중추) 크기가 감소하고 전두엽(이성적 판단)의 활성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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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10년 차 임상심리 전문가. 뇌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마음의 원리를 분석하고, 치유의 길을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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