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Safemental

길을 걷다 문득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공유하기
김민지 · · 6분 소요
길을 걷다 문득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바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혹은 주말 오후 동네를 산책하던 중이었을 거예요. 신호등의 초록 불이 깜빡이는 것을 보고 뛰려다가, 갑자기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것처럼 멈춰 섭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거대한 물음표 하나가 머리 위로 쿵 하고 떨어지죠.

“근데…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화려한 가게의 간판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 방금 전까지 생생했던 세상의 모든 풍경이 순식간에 빛 바랜 낡은 사진처럼 느껴집니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내일의 회의도, 갖고 싶어 안달 냈던 물건도, 심지어 나라는 존재조차 먼지처럼 가볍고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 마치 우주 한가운데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깊고 서늘한 허무함이 찾아옵니다.

이런 감정이 들 때, 우리는 덜컥 겁이 납니다. ‘내가 우울증인가?’,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길을 걷다 문득 찾아오는 이 ‘무의미함’은 당신이 그동안 너무나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반증이자 영혼이 보내는 ‘잠시 멈춤’ 신호입니다.

1. 열심히 달린 당신, ‘영혼의 방전’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자아 고갈(Ego Depletion)‘과 연결 지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고, 감정을 통제하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막대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자동차가 연료 없이 달릴 수 없듯, 우리 마음의 에너지도 한계가 있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무의미함은, 삶의 의미가 진짜로 사라진 게 아니라 ‘의미를 느낄 힘’조차 남아있지 않을 만큼 탈진했다는 뜻입니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너무 애쓰다 보니 역설적으로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죠.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자책이 아니라, 고갈된 영혼을 위한 충전입니다.

2. ‘해야 한다(Should)‘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해야 한다’로 꽉 차 있습니다. “성공해야 한다”, “뒤처지면 안 된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돈을 모아야 한다…” 이 의무감들은 우리를 부지런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질식시킵니다. 길을 걷다 느낀 허무함은, 당신의 내면 아이가 보내는 작은 반란일지도 모릅니다. “나 이제 ‘해야 하는 일’ 말고, 그냥 ‘존재하는 일’이 하고 싶어.”

목적 없는 산책의 힘 (Flâneur)

이럴 때는 의도적으로 ‘목적 없음’을 선물해 보세요. 프랑스어에는 ‘플라뇌르(Flâneur)‘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 도시를 한가롭게 거니는 산책자를 뜻해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었나요? 잠시 그 목적지를 잊으세요. 지름길 대신 일부러 낯선 골목길로 들어서 보세요. 보도블록 틈새에 핀 이름 모를 풀꽃을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세요.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잣대를 내려놓고,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잃어버렸던 호기심과 생동감이 아주 천천히 돌아올 거예요.

3. 거대한 우주와 연결되는 순간 (Awe Experience)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질 때, 역설적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압도적인 거대함’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경외감(Awe)‘의 체험이라고 합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세요. 혹은 탁 트인 한강이나 넓은 공원을 찾아가세요. 나라는 존재가 저 거대한 하늘 아래 얼마나 작은 점인지 실감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나를 짓누르던 고민과 걱정들도 함께 작아집니다. “그래,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깟 걱정쯤이야 먼지 같은 거지.” 나의 작음을 인정할 때 찾아오는 해방감, 허무함을 평온함으로 바꾸는 열쇠가 됩니다.

4. 손 안의 작은 감각 깨우기

머릿속이 추상적인 고민(“인생이란 무엇인가”)으로 가득 찰 때는, 아주 구체적인 ‘감각’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생각은 우리를 과거와 미래로 끌고 가지만, 감각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니까요.

  • 촉각: 길가에 있는 나무의 거친 껍질을 손바닥으로 쓸어보세요. 차가운 벤치의 감촉을 느껴보세요.
  • 미각: 편의점에 들러 아주 시원한 물 한 병을 사서 벌컥벌컥 마셔보세요.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차가운 전율에 집중해보세요.
  • 후각: 빵집 앞을 지나며 갓 구운 빵 냄새를 깊이 들이마셔 보세요. 비 온 뒤 젖은 흙냄새를 맡아보세요.

“이 빵 냄새, 참 좋다.” 이 단순한 문장 하나가 무채색 세상에 다시 색을 입히는 시작점이 됩니다. 삶의 의미는 거창한 철학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갓 구운 빵 냄새와 뺨을 스치는 바람 속에 숨어 있으니까요.

5. 오늘은 그냥 ‘마침표’가 아닌 ‘쉼표’입니다

오늘 느낀 그 허무함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판결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치고 있던 것들을 돌아보라는, 삶이 건네는 ‘쉼표’입니다.

이 텅 빈 마음은, 이제 당신이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억지로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마세요. 억지로 힘을 내려고 하지도 마세요. 그냥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서 바람을 맞으세요. “아, 오늘 내가 좀 지쳤구나. 그래, 인생이 가끔은 텅 빈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길은, 끝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정거장입니다. 충분히 쉬고 나면, 당신은 다시 뚜벅뚜벅 당신만의 길을 걸어가게 될 거예요. 그때까지, 부디 당신의 발걸음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당신의 쉼표가 편안하기를 온 마음을 담아 응원합니다.


📚 심리학 연구 노트

“미국 심리학회(APA)의 최근 연구 자료에 따르면, 자신의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명명하는 ‘감정 라벨링(Affect Labeling)‘만으로도 뇌의 스트레스 반응이 즉각적으로 감소한다고 합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Share this insight

김민지

10년 차 임상심리 전문가. 뇌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마음의 원리를 분석하고, 치유의 길을 안내합니다.

작성자의 모든 글 보기 →